에이브람스 연합사령관, 해리스 대사 그리고 ‘2019 한반도’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에이브람스(사진 가운데) 장군이 한미연합군 사령관으로 왔다. 해리스(오른쪽) 대사는 직전 태평양군 사령관이었다. 미국 CIA는 2019년을 한국 안보의 고비로 보고 있다. 이들의 부임은 든든한 최적의 인선이다. 미국의 정책 및 군사 요직에 있던 사람들의 족적을 돌이켜 보자.
미국은 1917년, 1차대전에 뒤늦게 참전했다. 전쟁이 끝나 윌슨 대통령은 국제연맹을 제창했으나 막상 미국은 빠졌다. 그러다보니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켰을 때 국제연맹은 이를 제어하지 못하고 일본은 국제연맹에서 탈퇴해버렸다.
1939년 9월 시작된 2차대전에 미국이 참전하기까지 상당히 시간이 걸렸다. 1944년 6월에야 노르망디 작전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루즈벨트는 태평양에서 일본을 ABCD 석유 봉쇄로 고사시키고 일본이 공격해오기를 기다렸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게 되는 일본은 진주만 기습을 일으키게 된다. 진주만 기습을 받기까지 미군의 대비 태세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허점투성이였다.
심지어 루즈벨트 음모설까지도 나왔다. 그렇다고 태평양 함대가 치명적 타격을 받고 수천의 장병이 전사한 진주만 피습을 루즈벨트가 유도한 것이라고 하기는 상상이 지나치다. 영화 <도라 도라 도라>는 이를 그려내고 있다.
6·25 돌발은 국무성의 판단 잘못이 컸다. 2차대전에서 국무성 내의 친소파에 이끌려 미국은 소련에 과도한 원조를 했다. 1991년 소련 해체 후 밝혀진 것이지만, 스탈린은 1945년 9월 20일 이미 한반도 적화를 결정했다. 미국은 이런 소련을 상대로 미소공동위원회를 계속했는데, 그동안 북한 공산화가 착착 진행되고 북한군이 1948년 2월 상당한 규모로 창설되었다.
1949년 6월 미군은 한국에서 철수했다. 1950년의 6·25 전쟁은 미국의 정책 실패가 가져온 결과였다. 트루먼이 북한군 공격이 소련의 대규모 공격의 전조라는 것을 직감하고 한국전 참전을 결심했기 때문에 한국이 구원된 것이다.
월남전은 케네디, 맥나마라, 키신저 등 수재들의 잘못이었다. 월남전은 미국이 빠져들어서는 안 되는 전쟁이었다. 맥나마라의 회고는 이 교훈을 생생히 그려내고 있다. 웨스트모어랜드는 월남전의 특성을 인식하지 못해 에이브람스로 교체되었다. 이번에 부임한 에이브람스 장군의 부친으로 M-1 에이브람스 전차는 그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월남전에서 치욕을 당한 미군은 절치부심(切齒腐心) 새로운 군대로 태어나는데 이것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이 걸프전이다. 1991년 걸프전은 레이건에 의해 34개 동맹군의 외교와 군사가 일치되었지만, 작전술 측면에서 러시아, 중국은 생각지도 못할 만큼 새로운 전쟁양상을 선보였다.
1970년대 소련군의 OMG 전법에 머물러 있을 북한으로서는 상상도 못한다. 한국군은 한미연합사를 통해 이 경험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해리스 대사는 총체적으로 한국을 지원한다. 에이브람스 장군은 1951년 중공군으로부터 8군을 구한 릿지웨이 장군과 같은 역할을 수행할 용장이다. 해리스 대사와 에이브람스 장군은 미국이 세계에 가지고 있는 외교, 정보 역량을 총동원하여 한국을 지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