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살다간 여인 전혜린과 루이제 린저 ‘생의 한가운데’

루이제 린저, 생의 한가운데

[아시아엔=박상설 <아시아엔>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 “그는 아무 말도 안했다.” 전혜린. 기억 속에 사라진 그(녀)는 검은 머플러를 걸치고 우수에 서린 눈동자로 만추의 낙엽 길 걷기를 좋아했다. 11월에 접어드니 불현듯 그의 의식과 언어와 집요한 자유정신을 만나고 싶어진다. 그의 책을 펼쳤다.

그는 1965년 1월11일 31세 나이로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 선상에서 “현해탄 거친 파도에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이것은 뜬소문이었고, 꽃 같은 나이에 수수께끼 같은 죽음으로 요절한 건 팩트다. 자아와 시공을 넘나들며 모순과 갈등을 치열하게 번민한 그였다.

그는 왜 죽음을 택해야 했을까. 그리고 나는 왜 그(녀)를 잊지 못하는가? 그가 죽은 지 53년 지난 오늘까지 전혜린과 뮌헨 슈바빙을 잊지 못한다. 죽음의 유혹 속에서도 끊임없이 살고 싶어 했던, 그는 지극한 모성애로 딸 정화와 함께 맑게 살겠다고 한 그가 7살밖에 안 된 어린 정화를 두고 왜 죽음을 택해야 했을까. 그리고 그가 죽은 지 반세기가 넘도록 우리는 그를 왜 잊지 못하는가. 죽어도 죽을 수 없는 전혜린. 무엇이 전혜린을 살아 있게 하는 것일까.

죽어도 죽지 않는 전혜린

죽음은 엄숙한 사실이다. 더구나 그것이 의식적으로 선택 한 것이든 논리적으로 사유했던 일이든 간에 무엇이 죽음으로 몰고 갔나 하는 의미에서 우리는 극심한 괴로움에 몸부림쳤을 전혜린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싫어하는 것이 명확했다. 그는 ‘평범한 것, 게으른 것, 사소한 것에 연연하는 것, 무기력한 것, 목적 없는 것, 비굴한 것’을 무척 증오했다.

그는 자기 성장에 대해 고뇌의 사유를 하지 않는 사람을 가련히 여기며 경멸했다. “구태의연한 것, 안주하는 것은 퇴폐”라고 했다. 저열하고 속된 삶으로만 살고 거기에 만족하는 여인을 그는 천시했다. 닿을 수 없는 곳,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지 않으면 인간은 그저 동물과 같을 뿐이라고 여겼다.

불꽃처럼 살다간 여인 전혜린은 말한다. 산다는 일, 호흡하고 말하고 미소할 수 있다는 것은 귀중하다.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

불꽃같이 살다간 여인, 전혜린

“미친 듯이 살고 싶다”

지금 나는 아주 작은 것으로 만족한다. 한권의 책이 맘에 들 때, 내 맘에 드는 음악이 들려올 때, 마당에 핀 늦장미의 복잡하고도 엷은 색깔과 향기에 매혹될 때, 또 비가 조금씩 오는 거리를 혼자서 걸을 때 나는 완전히 행복하다. 맛있는 음식 진한 커피, 향기로운 포도주, 생각해 보면 나를 기쁘게 해주는 것들이 너무 많다. 햇빛이 금빛으로 사치스럽게 그러나 숭고하게 쏟아지는 길을 걷는다는 일, 살고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산다는 것은 기다림이라는 것을 더욱더 느낀다. 매일 눈을 뜨면 하루를 기다리게 된다. 무엇이 꼭 일어날 것만 같고 기적같이 눈이 환히 뜨이는 정오가 올 것만 같고 마술의 지팡이로 나의 일상생활이 전연 다른 맛···. 좀더 긴장된 풍요하고 충일하게 가득하고 뒤끓는 맛···. 이것을 지니게 되길 매일 아침 기다리고 있다. 꼭 무슨 일이 있을 것만 같고 무엇이 일어날 것만 같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날 줄은 미리부터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말이다.

헤르만 헤세의 편지를 받아들고

전혜린은 여러 사람의 영향을 받았다. 그가 번역한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의 주인공 니나 붓슈만, 루살로메, 니체 그리고 헤르만 헤세다. 별 이야기는 <데미안>의 엄마 에바가 싱클레어에게 이야기한 별을 사랑한 청년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그(녀)가 소설가가 되려고 했던 것은 아마도 루 살로메가 소설가였기 때문이 아니었을 가 싶다. 전혜린이 한국어로 번역한 <생의 한가운데>의 주인공 니나의 독백이 떠오른다.

“생이란 아는 것, 무섭게 많이 아는 것과 생각하는 것과 모든 것에 파고드는 것이었어. 그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었어.”본질적 자아를 찾으려는 전혜린의 노력은 헤르만 헤세, 루이제 린저의 작품을 번역하면서 더욱 깊어진다. 헤르만 헤세에게 편지를 보내고, 그로부터 답신을 받기도 했다. “오늘 아침 헤르만 헤세의 편지를 받고 즐겁게 놀랐다. 그 속에는 석 장의 그림엽서와 헤세의 축하인사가 들어 있었다. 난 그것을 무조건 1959년 새해의 길조로 여기고 싶다. 그것은 틀림없이 커다란 기쁨을 내 일에 가져올 것이다.”

격정적으로 뜨겁게 산다는 것

지치도록 일하고, 공력을 들이고, 열기 있게 생활하고, 격정적으로 사는 것, 아무튼 뜨겁게 산다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산다는 일은 그렇게도 끔찍한 일이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전혜린은 그만큼 더 인생을 사랑하고 더 치열하게 파고들었다. 전혜린 그녀를 따라다닌 명제는 ‘절대 평범해서는 안 된다’였다. 주제가 있는 삶, 그녀는 에로스보다 타나토스와 가까웠다.

그는 어떻게 죽느냐에 고뇌하며 감탄했다. 또한 어떻게 사느냐에 고민했고 파우스트처럼 세상 모든 것을 알고 싶어 존재와 인식에 몰입했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삶, 자유로운 영혼 니나와 루를 따르고 싶었던 그녀는 그 무엇보다 자신에게만 관심을 가졌다. 검은 외투에 검은 머플러. 그녀는 세계나 국가나 민족에 관심이 적었다. 또한 자신의 생물학적인 분야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영혼에 관심을 쏟았다.

영원에의 영가(靈歌)

소녀 시절부터 ‘평범해서는 절대 안 된다’라고 다짐했던 그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순간을 생명처럼 여기며 삶의 의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끝내 꿈을 이르지 못한 그의 죽음은 자신의 존재론적 삶에 대한 저항이었을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 생을 사랑했다. 살아있음에 행복해 했다. 그는 수면제를 자주 복용하며 세상일에 잠들고 싶어 했다. 그러나 깨어나지 못했다. 그는 누구보다 생에 애착이 깊었던 그가···. 지금도 앞으로도 꿈 없이는 살 수 없다. 눈에 보이고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현실만이 전부가 아니다. 꿈이 있고 그것을 향해 질주할 수 있는 유년기는 희망의 낙원이다. 그리고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라는 것은 성숙된 보람이다. 결혼을 하고 서른이 되고 그렇게 경계했던 꿈 없는 평범한 삶을 살까봐 그녀는 무척 노력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살았던 그녀는 죽음 속으로 비틀거리며 들어가 버린 것이다. 가을이면 앓는 병처럼 존재와 허무를 넘실됐다.

한시인들 잊으랴. 전혜린은 또 이런 편지를 썼다

장 아제베도! 내가 원소로 환원하지 않도록 도와줘. 정말 너의 도움이 필요해. 나도 생명 있는 뜨거운 몸이고 싶어. 가능하면 생명을 지속하고 싶어. 그런데 가끔가끔 그 줄이 끊어지려고 하는 때가 있어. 그럴 때면 나는 미치고 말아. 내 속에 있는 이 악마를 나도 싫어하고 두려워하고 있어. 악마를 쫓아 줄 사람은 너야. 나를 살게 해줘.젊은 연인 장 아제베도는 참새처럼 떠나버린 청년이었을까. 끝내 부치지 못한 편지는 그가 죽은 뒤에 발견되었다.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거듭 밝혔던 동생 채린과 모든 것을 초월한 가장 순수한 사랑을 나눈 친구 주혜, 그리고 딸 정화조차도 그의 죽음을 막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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