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빈살만 왕세자 퇴진 여론에 “카슈끄지 기자는 무슬림형제단 소속”

카슈끄지 기자(왼쪽)와 빈살만 왕세자

[아시아엔=김소현 기자] 자말 카슈끄지 기자의 참혹한 죽음으로 사우디 절대왕정의 최고 권력자 빈살만 왕세자가 한때 궁지로 몰렸으나 이번엔 왕세자가 자말 카슈끄지를 “무슬림 형제단 소속의 위험한 인물”이라고 비판한 것으로 전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제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과의 통화에서다. 하지만 카슈끄지의 가족들은 “지난 수년간 제기돼온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부인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일(현지시간) 백악관 관계자를 인용, “빈살만 왕세자는 통화에서 ‘카슈끄지는 무슬림 형제단 소속이었다’고 말했다”면서 “미국과 사우디의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무슬림 형제단은 볼턴 보좌관을 비롯해 트럼프 행정부 고위관리들이 위험하다고 규정한 조직이다. 왕세자와 쿠슈너 선임고문, 볼턴 보좌관의 통화는 카슈끄지가 지난달 20일 사우디 왕실이 카슈끄지의 사망을 인정하기 전에 이뤄졌다고 WP는 보도했다.

이처럼 빈살만 왕세자가 백악관과의 통화에서 카슈끄지를 ‘위험한 인물’로 묘사하며 비판한 것은 사우디 정부의 공식입장과는 상반된다. 사우디는 카슈끄지의 죽음에 대해 “끔직한 비극”이라고 애도했고, 빈살만 왕세자조차 “이번 사건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면서 “모든 사우디 국민이 비통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심지어 주미 사우디 대사는 카슈끄지를 ‘친구’로 호칭하며 “조국을 위해 일생을 헌신한 인물”이라고 치켜세웠다.

이에 대해 카슈끄지 가족은 “카슈끄지는 결코 위험한 인물도, 무슬림 형제단 소속도 아니다”라면서 “지난 수년간 반복해서 그런 주장을 부인해왔다”고 밝혔다.

한편 앞서 국제사회는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에 대해 사우디의 실질적 지배자인 무함마드 빈살만(33) 왕세자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미국 공화·민주 양당은 지난 10월 21일 일치된 목소리로 사우디에 대한 외교·경제적 제재와 왕세자 교체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공화당의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은 21일(현지시각) “나는 빈살만이 카슈끄지를 살해했다고 생각한다”며 “합당한 처벌을 내리도록 미국과 유럽이 공동 대응하자”고 말했다. 민주당 딕 더빈 상원의원은 “사건 곳곳에 왕세자의 ‘지문’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데, 사우디 왕실의 말만 믿는 사람은 지구상에 트럼프 대통령뿐”이라고 했다.

공화당 톰 틸리스 상원의원은 “독립적 수사가 필요하며, 결과에 따라 왕세자 교체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사우디라는 동맹국과 빈살만이라는 개인을 분리해 대응하자”며 “빈살만의 미국 출입금지와 미국 내 재산 동결부터 하자”고 주장했다.

사우디를 중동의 맹주로 떠받쳐온 미국이 이렇게 공개 비판에 나선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미국은 적국 이란을 제어하기 위해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를 동맹으로 묶어두고, 사우디의 중동 주변국에 대한 군사·경제적 영향력을 용인하면서 내부 인권문제는 눈감아 왔다.

중동에 영향력이 큰 유럽 주요국도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1일 “진상이 드러날 때까지 사우디에 무기를 수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독일 정부는 최근 사우디에 4억1600만유로(약 5400억원) 규모의 무기 수출을 승인했다. 메르켈은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무기시장의 큰손과 관계를 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영국·독일·프랑스 3국 외교장관은 사우디의 ‘카슈끄지 사망 인정 발표’에 대해 공동성명을 내 “우리는 보충설명의 신뢰성에 근거해 최종 판단을 할 것” 이라면서 빈살만의 책임을 뺀 발표문 수용을 거부했다.

이같은 反사우디 정서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미 대통령은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사우디의 해명에) 거짓도 있는 것 같다”면서도 “빈살만은 나라를 사랑하는 강력한 지도자”라며 제재는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AP>와 <블룸버그통신>은 “빈살만 왕세자 교체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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