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혁명 두돌④] 누군가 손해보지 않으면 혁명이 아니다
10월 29일은 2016년 ‘촛불혁명’이 타오르기 시작한 날이다. 촛불혁명은 최순실씨의 국정농단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권력사유화 및 무능 등에 대해 시민들이 매주 토요일 자발적으로 모여 2017년 4월 29일까지 23차례에 걸쳐 열려 마침내 불의의 세력을 내모는 데 성공했다. 전국적으로 연인원 1700만명이 참여했으며,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등 관련자 대부분 사법처리됐다. <아시아엔>은 촛불혁명 2주년을 맞아 비영리사회단체 나눔문화와 함께 ‘촛불혁명’의 의미와 주요장면을 되돌아본다. 지난해 1주년 즈음 나온 <촛불혁명>(김예슬 지음 김재현 외 사진 박노해 감수, 느린걸음 펴냄)을 바탕으로 이뤄졌음을 밝혀둔다.(편집자)
거리와 광장에서 혁명을 호흡한 아이들
[아시아엔=박노해 시인] 지난 10여 년 나에겐 가슴에 돌이 얹힌 듯
깊은 근심이 하나 있었다. ‘일베 현상’과 ‘일진 현상’이다.
초등학생부터 청년들까지, 양극화의 좌절감을
약자에 대한 폭력, ‘여혐’과 성폭행, 민주 진보에 대한
냉소로 쏟아내며 원초적 폭력성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말랑한 감각과 의식에 길이 나는 ‘결정적 시기’에 새겨진
감정과 언어와 행위의 습성은 나중엔 어찌할 수가 없다.
이번 촛불혁명이 내게 준 희망은 이것이다.
거리와 광장에서 혁명을 호흡한 아이들!
혁명은 최고의 학교가 아닌가.
좁은 교실에 갇혀 서로 경쟁하던 아이들이
이 역사의 현장에서 함께 혁명을 경험하고
공동선의 연대와 정치적 올바름을 실천하고
두고두고 이야기할 공동 체험을 갖게 된 것이다.
어떤 역사적 사건을 함께 겪었는지,
어떤 공동의 꿈과 상처를 가졌는지,
어떤 공동의 적에 맞서 싸웠는지가
그 세대의 미래 좌표를 결정한다.
그 기억과 체험의 ‘빛의 연대’가 위기의 순간에
그들을 다시 한몸으로 엮어 세우기 때문이다.
혁명이 위대한 것은 혁명의 과정 속에서
다음 혁명의 주체를 잉태한다는 것이다.
촛불혁명은 한국 사회의 향후 30년을 이끌어갈
건강하고 정의로운 새로운 주체를 탄생시켰다.
그러니 촛불을 든 아이들아, 이 혁명의 승리로 만든
오늘의 상식과 합리 이하로 물러나지 말아라.
아니, 오늘의 상식과 오늘의 합리를 넘어서라.
너희의 새로운 상식과 합리를 창출하거라.
오늘의 상식은 어제의 혁명이었으니,
새로운 혁명으로 너희의 상식을 드높여라.
누군가 손해보지 않으면 혁명이 아니다
1,700만 촛불혁명으로 적폐의 수장首長들이 체포됐다.
독재권력 박근혜, 재벌삼성 이재용, 공작정치 김기춘.
아직 살아남은 자들은 무장해제되어 떨거나 숨거나
임박한 심판을 피하고자 발악 중이다.
전율이 흐르지 않는 것은 위대함이 아니다.
누군가 손해보지 않으면 혁명이 아니다.
무언가 타파되지 않으면 혁명이 아니다.
주체가 뒤바뀌지 않으면 혁명이 아니다.
우리가 탄핵한 것은 단지 박근혜 정권 하나가 아니다.
그 뒤에 숨은 더 큰 범죄의 이명박 정권만이 아니다.
박근혜를 통해서 마침내 한국인의 심연에 악령처럼
도사린 ‘박정희 신화’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죽어서 산 박정희를 살아서 죽은 박근혜가 청산한 것이다.
촛불혁명으로 저 70년 현대사의 악의 꽃을 꺾고,
그 뿌리까지 청산할 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저들의 힘은 강력하기만 하다.
오랜 세월 축적해온 악의 힘, 그걸 ‘적폐’라 한다.
길게는 수백 년, 짧게는 70년 동안 이 나라를 지배해온
부와 권력의 동맹체, “우리가 남이가”라는 운명 공동체.
재벌, 관료, 정치, 군부, 공안, 사법, 언론, 학계, 종교,
문화, TK 지역의 질긴 기득권 동맹체가 적폐의 실체다.
단 한번도 제대로 된 적발과 심판을 받지 않고
‘이렇게 해도 된다’고 특권과 범법의 용기를 물려준 자들.
적폐의 과거를 남겨둔다면 미래는 패배한다.
그들은 반드시 돌아온다. 더 사악한 칼을 들고.
적폐 청산 없이 희망은 없다.
과거 청산 없이 미래는 없다.
국가기구와 사회 각 영역에 강력한 세력을 구축한
기득권 세력의 적폐 청산, 이것만 확실히 해낸다면
그 어떤 성장정책과 혁신보다 국부가 늘어나고
생산성이 높아지고 분배 복지가 향상될 것이다.
적폐의 산물인 좌절과 냉소는 줄어들고
신뢰와 희망이 생기차게 살아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