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감동시켜 사형 면한 나성룡과 이대로의 ‘아름다운 우정’

사진은 광해군이 왕이 된 이후를 재해석한 영화 <광해> 속 광해군.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어느덧 겨울이 찾아왔다. 서울에도 얼음이 얼었다는 소식이다. 찬바람이 불고 겨울이 오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친구 생각에 가슴이 시리다.

친구란 무엇인가? 기쁨과 슬픔, 어려움을 함께할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다. 좋은 일 있으면 축하해 주고, 슬플 때는 위로해 주는 사람이다. 또한 힘이 들 때 도와주고 심지어 생사고락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다.

친구에 관한 사자성어가 여러 가지가 있다. ‘수어지교(水魚之交)’ ‘막역지우(莫逆之友)’ ‘금란지교(金蘭之交)’ ‘관포지교(管鮑之交)’ ‘죽마고우(竹馬故友)’ ‘문경지교(刎頸之交)’ ‘지란지교(芝蘭之交)’ 등등.

이렇게 많은 사자성어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친구의 소중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잘 나가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 1786-1856) 선생이 제주도로 귀양살이를 가자 그 많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연락이 뚝 끊어 졌다. 찾아오는 친구는 한 사람 없었다.

그런데 예전에 중국에 사절로 함께 간 선비 이상적이 중국에서 많은 책을 구입하여 유배지인 제주도까지 부쳤다. 극도의 외로움과 어려움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어 하던 추사 김정희에게 그 책들은 엄청난 위로와 용기, 감동을 주었다.

나중에 추사는 둘 사이의 우정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았다. 그것이 저 유명한 ‘세한도(歲寒圖)’다. 세한도란 논어에서 따온 말이다. “날씨가 차가워지고 난 후에야 소나무의 푸름을 안다”(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也)는 뜻이다. 잎이 무성한 여름에는 모든 나무가 푸르지만 날씨가 차가워지는 늦가을이 되면, 상록수와 활엽수가 확연히 구분되기 마련이다.

모름지기 친구 관계 또한 자연의 이치와 같다. 신의·의리·충절·지조···. 우리들 곁에 세한도 같은 친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중에도 목을 내놓아도 좋을 우정이 있다. 참 아름다운 우정이다.

조선시대 광해군(光海君 : 1575~1641)때, 나성룡(羅星龍) 이라는 젊은이가 교수형을 당하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효자였던 그는 집에 돌아가 연로하신 부모님께 마지막 인사를 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광해군은 허락하지 않았다. 만약 나성룡에게 작별 인사를 허락할 경우 다른 사형수들에게도 공평하게 대해줘야 했기 때문이다. 집에 다녀오겠다고 했다가 멀리 도망간다면 국법(國法)과 질서가 흔들릴 수도 있었다.

광해군이 고심하고 있을 때, 나성룡의 친구 이대로(李大路)가 보증을 서겠다면서 나섰다. “전하! 제가 그의 귀환을 보증합니다. 그를 보내주십시오.” “대로야, 만일 나성룡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찌하겠느냐?” “전하! 어찌 할 방법이 있겠습니까? 친구 잘못 사귄 죄로 제가 대신 교수형(絞首刑)을 받겠습니다.” “너는 성룡이를 믿느냐?” “전하! 그는 제 친구(親舊)입니다.”

광해군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나성룡은 돌아오면 죽을 운명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돌아올 것 같은가? 만약 돌아오려 해도 그의 부모가 보내주지 않겠지. 너는 지금 만용을 부리고 있다.” “저는 나성룡의 친구가 되길 간절히 원했습니다. 제 목숨을 걸고 부탁드리오니, 부디 허락해주십시오. 전하!”

광해군은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 이대로는 기쁜 마음으로 나성룡을 대신해 감옥에 갇혔다. 드디어 교수형을 집행하는 날이 밝았다. 그러나 나성룡은 돌아오지 않았고 사람들은 바보같은 ‘이대로가 죽게 됐다’며 비웃었다. 정오가 가까워졌다. 이대로가 교수대로 끌려나왔다. 그가 목에 밧줄이 걸리자 ‘이대로’의 친척들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정을 저버린 나성룡을 욕하며 저주를 퍼부었다. 그러자 목에 밧줄을 건 이대로가 눈(目)을 부릅뜨고 화를 냈다. “나의 친구 나성룡을 욕하지 마라. 당신들이 내 친구를 어찌 알겠는가?”

광해군의 사형 집행명령이 떨어졌다. 그때 멀리서 누군가가 말을 달려오면서 고함을 쳤다. 나성룡이었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다가와 말했다. “오는 길에 배가 풍랑을 만나 겨우 살아났습니다. 그 바람에 이제야 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 이대로를 풀어주십시오. 사형수는 접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작별인사를 고했다. ‘나성룡’이 말했다. “이대로! 자네는 나의 소중한 친구일세, 저 세상에 가서도 자네를 결코 잊지 않겠네.” 두 사람의 우정을 비웃었던 사람들 사이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교수형 밧줄이 이대로의 목에서 나성룡의 목으로 바뀌어 걸렸고, 교수형이 집행되려는 순간, 광해군은 사형집행을 중지시켰다.

“부럽구나! 내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라도, 너희 두 사람 사이의 그 우정을 내가 가지고 싶구나.” 그리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왕(王)의 권위로 결정하노라, 저 두 사람을 모두 방면(放免)토록 하라. 비록 죄를 지었지만, 저 두 사람이 조선의 청년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도다.”

옛 성인이 돕는 벗 세가지가 있다고 했다. 곧고 너그럽고 앎이 많은 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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