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가볼만한 곳 ‘강추’···‘법화경-평화와 공생 메시지전’ 찍고 부산영화제도 보고
“경전이 기뻐하고 있습니다. 빛나고 있습니다”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경전이 기뻐하고 있습니다. 빛나고 있습니다. 웃고 있습니다.” 전시회에 출품돼 관람객을 기다리는 작품들 내면을 이보다 더 깊이 들여다 볼 수 있을까? 문장 그대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다.
부산 한국SGI 수영문화회관에서 10월 14일까지 열리는 ‘법화경-평화와 공생 메시지 전시회’를 소개하며 이케다 SGI회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둘도 없는 무이(無二)의 보배를 흔쾌히 빌려주셨습니다. 경문(經文)은 문자이지만 혼입니다.”
기독교문화에 익숙한 기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불경에 대해 거의 문외한이다. 화엄경, 법화경, 천수경 정도를 떠올릴 뿐이다. 지난 8월 초순 구로구 소재 한국SGI 본부를 13년만에 방문했을 때 법화경 전시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귀가 번쩍 뜨였다. ‘이참에 뭔가 배울 게 있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특히 중국 둔황의 막고굴 벽화에 기록된 법화경 희귀유물을 만날 수 있다니 더욱 그랬다. 재작년 매거진N에 실린, 홍사성 시인이 둔황 막고굴로 가던 길에 발견했다는 난주 병령사(炳靈寺)의 ‘덜 된 부처’도 동시에 떠올랐다.
“눈도 코도 입도 귀도 없는 겨우 형체만 갖춘 만들다만 덜된 불상이 있습니다. 다된 부처는 더 될 게 없지만 덜된 부처는 덜돼서 될 게 더 많아 보였습니다. 그 앞에 서니 나도 덩달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법화경 사본, 둔황 막고굴벽화 패널 등 유물 150여점 전시
눈부시게 푸르른 9월 마지막 금요일, 기자는 KTX로 부산역에 내려 지하철 1호선(~서면)과 2호선(광안)을 타고 오후 4시반 전시장에 들어섰다. 오전 10시~오후 8시 관람시간 중 단체관람객이 다녀간 뒤여서인지 여유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가이드의 꼼꼼한 설명도 괜찮지만, 불교와 특히 법화경에 대해 기본지식이 있다면 ‘셀프 관람’도 호젓하여 좋을 듯하다. 물론 2층 동영상실에 들러 사전설명을 들으면 훨씬 좋다.
전시회는 2000년 이상 아시아와 서구에 인간의 존엄과 공생을 호소해 온 불교철학을 담은 법화경 사본을 비롯해 둔황 막고굴벽화 소개 패널 등 유물 150여점이 소개됐다. 이름도 ‘법화경 전시회’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불교역사 또는 불교경전을 통해 본 ‘고대언어’를 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불교경전이 그토록 다양한 언어로 번역됐다는 점도 새삼스럽다. 즉 불경은 △간다라어 △토하라어 △팔리어 △소그드어 △산스크리트어 △오이라트어 △만주어 △고대 위구르어 △티벳어 △허톈·사카어 △서하어 △몽골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등등···.
이들 언어로 쓰인 법화경을 감상하며 또하나 얻은 지식이 있다. “세로쓰기는 (한자처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만이 아니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몽골어·산스크리트어·티벳어 등)이다.
이번 전시의 중심은 입구에 도해(圖解)로 소개한 것처럼 둔황 막고굴 벽화다. 막고굴은 둔황시 동남쪽 25km 지점 명사산(鳴沙山)의 15~30m 절벽 위에 1680m에 걸쳐 492개 석굴과 2400여 소상(塑像, 찰흙으로 빚은 형상)이 있다.
벽 전체에 총면적 45000m², 세로 폭 1m의 그림이 그려져 있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이 가운데 막고굴 61굴 남벽의 ‘의리주 비유’ ‘계중명주 비유’ ‘양의병자 비유’ ‘화성보처 비유’ 등과 98굴 남벽 ‘삼거화택 비유’, 231굴 남벽 ‘불경보살의 실천’ 등이 이번에 전시됐다.
이번 전시작품 중 판싱뤼 화백이 증정한 막고굴 벽화의 ‘비천 모사화’(飛天 模寫畵)는 화려한 가운데 오묘한 느낌으로 관객들 시선을 붙잡는다. 판싱뤼(范興儒)는 둔황 벽화의 발굴과 보존에 생을 바치며 ‘둔황의 수호신’ ‘둔황연구의 태두’ 등으로 불리는 창수홍(常書鴻)에게 사사해 ‘판비천’이란 독창적인 화풍을 완성한 작가다.
전시회는 (재)한국SGI(이사장 김인수)와 공익법인 동양철학연구소(소장 아키라 기리가야)가 1000년에 걸친 둔황석굴벽화로 유명한 중국 둔황연구원, 세계최고 동양학 연구기관으로 평가받는 인도문화국제아카데미(이사장 로케시 찬드라 박사) 등 6개국 12개 연구기관의 협력을 받다 공동 주최했다.
‘법화경-평화와 공생의 메시지’는 파리 유네스코 본부를 비롯해 현재까지 16개국에서 80만명이 관람했으며 국내에서는 2016년 서울에서 처음 개최돼 14만명이 관람했다고 한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는 삼박자 관람
이번 전시회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몇 개 더 있다. 불교와 거리가 멀 것 같은 러시아가 불교 희귀 유물 10만점을 소장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과학아카데미 동양고문서연구소의 전신인 ‘아시아박물관’은 이미 200년 전인 1818년 설립돼 중앙아시아와 실크로드 등 각지에서 불교 유물을 수집·보존하고 있다.
20세기 초 폐허가 된 고비사막의 카라호토성에서 6000여점의 서하 문헌을 발견한 사람은 다름 아닌 러시아의 표트르 코즐로프 대령(1863~1935년)이었다고 한다. 중국 신장의 캬슈카르 주재 니콜라이 페트로프스키(1837~1908년) 총영사는 <범문 법화경 사본> 등 1000점의 산스크리트어 고사본을 수집해 당시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보냈다.
이름하여 ‘페트로프스키 컬렉션’이다. 러시아와 법화경의 인연은 이렇게도 이어진다. 2차대전 중 나치 독일군에 포위된 900일간 동양고문서연구소 직원 2명이 법화경 사본(서하어 금광명최승왕경)을 온몸으로 지켰다. 당시 살아남은 법화경 사본 47점이 1998년 도쿄에서 개최된 ‘법화경과 실크로드전’에 전시됐다.
이번 전시회의 뿌리가 되는 두 인물이 있다. 구마라습(344~413년과 350~409년 두가지 설이 있음)과 니치렌이다. 구마라습은 실크로드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에서 태어나 9살 때 인도에 유학해 스승 수리야소마를 만나 대승불교의 진리를 깨닫고 묘법연화경을 한역(漢譯)하여 중국에 전한 인물이다. 니치렌(日蓮)은 여러 경전 중에서 법화경을 최고의 가르침으로 정하고, 이의 진수를 ‘남묘호렌게교’(南無妙法蓮華經)라고 나타냄으로써 모든이가 성불할 수 있는 길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