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들녘 아흔살 자연인의 메아리
[아시아엔=박상설 <아시아엔>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 <잘 산다는 것에 대하여> 저자] 모든 것은 다 지나가게 마련이다. 들떴던 추석연휴도 끝났다. 나는 예년처럼 가을빛을 쐬며 고요에 든다. 추수가 끝난 광활한 철원평야에 서니 내겐 숨 쉬는 것만으로도 老心의 여정이 일렁인다.
왜 혼자여야 하나?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근원은 어디에서 왔나? 통념을 부수는 삶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반란자의 역동심리(力動心理, 행동동기의 심층원인)에 대한 설명은 안하기로 하자. 말이나 글로는 설명할 수 없는 비장한 기쁨이 있다.
사람마다 사는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허나 나의 삶의 방식은 내가 만든다. 개인주의를 비판하는 측면도 있지만 나는 그 개인주의를 초월하여 뼛속까지 ‘개별화 주의자’이다. 나를 닮으라는 게 아니라 보여줄 뿐이다. 친목을 빙자한 패거리모임, 문화를 앞세운 붕어빵 이벤트, 정치사회를 거론하며 가십으로 세월을 소진하는 이른바 지식인, 코스모스 꽃길 스냅으로 자연과 함께 했다는 박쥐둥지족, 정치경제 대세론을 내세워 대중을 현혹하는 속물근성 지도층 등을 보며 나는 코웃음 친다.
허허벌판에 스스로 버려진 노숙자
인간의 역사는 본질적으로 문명의 역사이며 그 문명을 낳게 한 것은 사상이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도덕률이나 사상도 언제나 변하고 있다. 사상은 인간이 만든 것이라고 모두들 굳게 믿고 있다. 물론 옳은 말이다. 허나 자연주의자인 나는 “사상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자연이며, 자연은 눈에 보이는 사상이다”라고 말한 하이네를 신봉하는 열정의 행동주의자다.
열정은 사상과 철학에 대한 공격무기다. 동시에 전통, 인습, 관습에 대한 미사일이다. 열정은 자연의 고난을 먹고 자란다. 행복은 고통과 고뇌를 먹고 살며 그 먹이는 흙의 생명이며, 자연에 뒹구는 열정의 보상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를 바로 보자. 나를 모르면 헛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나의 이상적 자아(ideal self)를 파헤쳐 본다. 자아(ego), 자아기능(ego function), 자의식(self-consciousness), 자유연상(free association)등의 심층심리 또는 행동의 무의식적 원인이나 동기를 알아야 자기가 바른 선택의 역동적 삶을 살 수 있다.
조금은 생소하고 어려운 듯도 하지만 열린마음의 자유인이라면 반드시 자기를 알아야 부화뇌동하지 않는다. 자기의 주견 없이 경솔하게 남 따라 사는 것은 바로 정체성이 없어서다. 이러한 물음의 깨달음은 흔들림 없는 자아존재를 우선하는 탈포퓰리즘에 있다. 남다른 행복을 원한다면 먼저 남다른 의식화된 삶을 살아야한다.
열정과 신념을 따라 제정신이 아니라는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다들 가는 길로 무작정 따라가서는 나중에 천덕꾸러기가 된다. 모두들 가는 길은 길들여진 신작로여서 쉬울 뿐 아니라 낯선 설렘도 없다. 뻔한 균질화, 비슷비슷한 생활에 저속한 놀이문화로 소일하는 무의식세계를 떠나자. 이런 분위기를 유난히 못 견뎌하는 탈주범이 되자.
산지기 노숙자의 마지막 소원
진정 가치 있는 뜻은 나만이 잘 사는 아지트를 만들자는 이기적 생각이 아니다. 자신뿐 아니라 이웃과 유관된 공동체와 세상을 바꾸는 열화의 용기 또한 내 삶이다. 이를 위해 안락함을 집어던지고 맑고 소박한 삶의 가난을 보여줄 뿐이다. 무릎 꿇고 포기할 수 없는 다 같이 잘사는 열린 생활상을 끊임없이 일깨워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