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 날 민병돈 특별기고] ‘만물의 영장’의 색다른 전우들···원숭이·말·개

1990년 3월, 강원 양구에서 북한이 파놓은 제4땅굴이 발견됐다. 이때 21사단 소속으로 제4땅굴 소탕 작전에 투입된 군견 ‘헌트’는 북한이 설치해 놓은 지뢰를 탐지하고 스스로의 몸으로 터뜨려 1개 분대원의 소중한 목숨을 살렸다. 사진은 군견병이 군견과 대화하고 있는 장면.

[아시아엔=민병돈 前육사교장, <아시아엔> 대기자 역임]?자칭 ‘만물의 영장’이라는 영장목(目), 사람과(科)의 동물들은 그들의 집단살인현장(戰場)에 순진한 짐승들을 끌어들여 피를 보게 하고 그 성과에 따라 영문도 모르는 이들 짐승들에게 무공훈장도 수여하고 계급도 부여하여 인간(군인)으로 승격시켜 준다. 멋모르는 이들 짐승들이 과연 얼마나 기뻐했을까.

대영제국 육군 원숭이 ‘재키’ 상병

1900년대초 아프리카의 영국 식민지(오늘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마르라는 소년이 숲속의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주워다 기르며, 이 어린 원숭이에게 ‘재키’라는 예쁜 이름도 지어주고 한 가족으로 살고 있었다.

어느덧 소년 마르는 청년으로 성장하여 제1차 세계대전 발발 후 정부의 징집령에 따라 육군 제3연대에 입대했는데 이때에도 그는 재키(원숭이)를 데리고 함께 병영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부대원들은 재키가 전투에 방해가 될 것으로 생각하여 이를 탐탁지 않게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그것이 한낱 기우임을 알게 되었다. 그 연대가 전장에 투입되어 전투를 시작하면서 원숭이 재키가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인간보다 수십~수백배 더 발달한 원숭이의 시각·청각 및 후각으로 적의 활동을 재빨리 알아채고 부대에 경고해줌으로써 연대의 전승에 크게 기여하곤 했다.

이에 영국 육군은 재키의 공로를 평가하여 그를 상병(상등병)으로 임용하고 매월 봉급도 지급했다. 그 후 재키 상병이 적탄에 맞아 다리 하나를 잃고 고향에 돌아와서는 주민들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살다가 화재사고로 죽었다. 그의 장례식에는 옛 전우들과 주민들의 애도 속에 엄숙히 치러져 인간 못지않은 예우를 받았다.

미국 해병대 영웅마(馬) ‘모닝 썬샤인’ 하사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강원도 산악지대의 치열한 고지 쟁탈전에 투입된 미 제1해병사단은 적 포탄이 벼락치듯 작렬하는 상황에서 겁먹은 짐꾼들의 이탈로 탄약 추진보급이 거의 불가능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에 해병사단은 서울 경마장에서 말 한 필을 사다가 짐꾼들 대신에 탄약운반용으로 사용했다.

해병대원들은 이 말이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전장을 뛰어다니며 탄약을 운반하는 모습에 열광하며 그에게 ‘모닝 썬샤인’이라는 이름과 함께 ‘겁없는 녀석’(reckless)이라는 별명도 붙여 주었다. 그리고 유명해진 이 말에게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는 대통령 표창장을 수여했다. 그 후 이렇게 해병대원들의 사랑을 받는 ‘모닝 썬샤인‘은 미 합중국 무공훈장(Perple Heart)을 받았다.

휴전 후 해병사단이 본국으로 돌아갈 때 UN종군기장까지 받은 ‘모닝 썬샤인’도 함께 가서 부대원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으며 생활하던 중 1959년 미 합중국 해병 하사로 임용되었다. 그 후 1960년 ‘모닝 썬샤인’의 전역식은 미 해병대 사령관과 참전 전우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거행되었다. 1968년 ‘모닝 썬샤인’이 죽었을 때도 그의 장례식이 해병대 사령관과 전우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버지니아 미국 국립해병대박물관 옆 공원에 실물 크기의 영웅마 ‘모닝 썬샤인’의 동상이 서있다.

대한민국 육군 군견 ‘헌트’ 소위

개는 사람의 반려동물이며 (군에서는) 장병들의 전우이다. 고도로 발달한 시?청각 및 후각 등을 활용하여 경비, 수색, 정찰, 폭발물 탐지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국군은 한국전쟁 정전 후 미군의 군견 10마리를 인수하여 활용한 이래 점차 그 수가 증가하는 가운데 1968년 북한 특수부대(124군부대)의 ‘1.21 청와대 습격미수사건’ 때 군 부대가 적 1명(김신조)을 생포하고 30명을 사살한 전과를 올렸는데, 이 때 군견 ‘린틴’이 작전에 기여한 공로로 인헌무공훈장을 받았다.

또 1990년 3월 강원도에서 우리 군이 새로 발견한 제4땅굴 수색작전에 군견 ‘헌트’가 적이 땅굴 안에 매설한 지뢰를 몸으로 터뜨려 자신을 희생하고 뒤따르던 1개 분대 병력의 생명을 구해준 공로로 육군 소위 계급이 추서되고 그 땅굴 입구에 ‘충견지묘’라고 쓴 비석과 함께 ‘헌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지금도 군은 계속하여 군견교육대에서 군견을 양성하고 있다.

앞으로 인간들의 싸움터에 또 어느 科의 동물들이 동원될 지 자못 궁금하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