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전야 별세한 이용선 전 한겨레 사진기자 영전에

이용선 전 한겨레신문 사진부장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18일 저녁 73세를 일기로 별세한 이용선 한겨레신문 제2대 사진부장은 내겐 ‘자나깨나 사진만 생각하는’ 기자였다. 한겨레 창간 3년 뒤인 1991년 경향신문에서 옮겨온 이 선배와 나는 부서는 달라도 거의 매일 통화를 했던 것 같다.

이 선배가 사진부장(1991~1996)으로 재직하던 당시 필자는 사회부와 정치부·편집부에서 일했다. 출근 길 사진꺼리가 눈에 띄거나 생각나면 나는 한겨레신문 사진부장석-그때나 지금이나 02-710-0675-으로 전화했다. “이 선배 지나다 보니 사진 되겠는데요” 하면 그는 “이형 고마워. 우리 기자 그리로 보낼 게” 한다. 그렇게 하여 한겨레신문 사회면이나 다른 꺼리가 없으면 운좋게 1면에 나의 제보(?)가 사진으로 탈바꿈해 실리곤 했다.

나는 이용선 선배한테 아주 고마운 빚이 있다. 1994년 1월 19일 북한 핵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극비 방한한 제임스 울시 미국 CIA국장이 한미 정보요원들의 경호 속에 국방부청사로 들어서고 있는 장면이 한겨레신문 이정우 기자에 의해 촬영돼 한국은 물론 AP, 로이터 등 통신사에 의해 전 세계 주요매체에 ‘한겨레신문 제공’이란 바이라인을 달고 실린 것이다. 당시 이정우 기자와 동행한 이종찬 기자의 자기희생적인 협조와 이용선 사진부장의 지략과 배짱이 없었다면 이 사진은 이 땅에 나타나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 최고 정보책임자의 동선이 카메라에 잡힌 것은, 의회 출석을 제외하고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날 아침 이용선 선배는 편집회의에서 정치부 기사계획안을 보고서 나를 ‘삐삐’로 호출해 “이형 울시 국장이 몇시에 도착하냐”고 물었고 “나는 오후 3시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당시 최학래 편집국장에게 사회부 사건기자와 사진부용 차량을 최대한 동원해 국방부 헌병대와 한미 정보 및 경호 담당자들을 제치고 작전 펼치듯 ‘미 CIA국장 촬영작전’에 성공한 것이다.

겉보기엔 털털한 시골 아저씨 같은-실제 출생지도 경기도에서 가장 오지인 가평군 상면이다-이 선배는 사진취재와 데스킹에 관한 한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았다.

그가 경향신문 사진기자 시절이던 70년대 후반 레이디경향 사진부에서 일하던 고명진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장(전 한국사진기자협회장, 한국일보 사진부장 역임)은 “늘상 사진공부에 몰두하던 이 선배한테 배운 게 한둘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용선 ‘사진기자’는 고려대 임학과 시절 <고대신문> 사진기자로 활동을 시작해 70년 <한국일보> 견습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75년 <경향신문>으로 옮겨 80년 ‘광주 5·18’ 취재와 언론통폐합 사태를 겪은 뒤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이민해 <미주동아일보> 등에서 일했다. 1989년 귀국해 <민주일보>를 거쳐 <한겨레>에서 사진부장, 지역사진담당 부국장, 심의위원으로 재직했다. 고인은 92년 9월 남북 고위급회담 때 공동취재단으로 평양을 카메라에 담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현자씨와 아들 제현(자영업)씨, 딸 경혜·근혜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 21일 오전 8시. (02)3010-2235.

이용선 선배, 천국에서도 좋은 사진 많이 찍으십시오. 이 선배의 치열했던 기자정신, 존경합니다. 게으르지 않고 잇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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