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의원과 이해인 수녀의 ‘꽃이 향기로 말하듯’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말 한마디에도 죄와 복이 왕래한다. 그런데 어찌 말을 가려서 하지 않을 수 있겠나? 지금은 그래도 사라진 한 정치인의 막말을 더 이상 듣지 않아 행복하다. 반대로 얼마 전 열반에 든 노회찬 의원의 ‘촌철활인’(寸鐵活人)의 말 한마디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어 여간 마음이 허전한 것이 아니다.
이해인 수녀의 시 ‘꽃이 향기로 말하듯’에서 필자는 마음에 위로를 받는다.
꽃이 향기로 말하듯/ 우리도 향기로 말할 수 있었으면/ 향긋한 마음의 꽃잎으로/ 서로를 포근히 감싸 줄 수 있었으면/ 한마디의 칭찬이/ 하루의 기쁨을 줄 수 있고/ 한마디의 위로가/ 한 가슴의 행복이 될 수 있다면/ 작은 위로에서 기쁨을 얻고/ 소박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듯/ 초록의 한마디가 사랑의 싹을 틔울 때/ 그 하루의 삶도 꽃처럼 향기로울 것입니다.
실수 했을 땐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실망 했을 땐 힘 내 다음엔 잘 할거야/ 만났을 땐 잘 지냈니?/ 보고 싶었어!/ 헤어질 땐 건강해라 행복해라/ 이런 말에 화낼 사람은 없겠지요./ 잘 했다는 칭찬에서/ 새로운 용기를 얻고/ 괜찮다는 위로에서/ 또 다른 희망이 생긴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풍요로운가요. 마음이 꽃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그 말씨에도 향기가 납니다./ 마음 씀씀이가 예쁜 사람은/ 표정도 밝고 고와서/ 한 송이 꽃처럼 아름다울 테니까요.
“잘 지냈는가?” 이렇게 물어오는 안부전화는 하루 종일 분주했던 우리 마음에 커다란 기쁨을 안겨준다. “고맙소!” 가만히 어깨 감싸며 던진 말 한마디는 가슴 저 깊이 가라앉는 설움까지도 말끔히 씻어준다. 또 “수고했어!” 어깨 툭툭 치며 격려해주는 위로의 한마디는 우리의 삶에 의욕을 불러일으켜 준다.
“넌 최고야!” ‘엄지 척!’ 하고 들려주는 그 말 한 마디는 우리에게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가슴 뿌듯한 말이다. “사랑해!” 귓가에 속삭여주는 달콤한 사랑의 말 한마디는 우리의 눈물샘에서는 왈칵 눈물을 쏟아내게 한다.
위로의 말 한마디에 관한 실화 한토막. 미국 동부 펜실베이니아에서 열차 충돌사고가 크게 발생했었다. 두 열차가 서로 충돌, 수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손실이 있었다. 대형교통사고는 늘 끔찍하다. 열차의 기관사 한명은 사고현장에서 숨지고 말았고, 다른 열차의 기관사는 목숨을 건지긴 했다.
그런데 문제는 사고원인 조사 결과 살아남은 기관사의 과실이었다. 살아남은 기관사는 양심의 가책으로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회사와 경찰에서 수차례 엄격한 조사를 받는 동안 기관사는 정신이 이상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우선 말에 조리가 없고, 횡설수설, 엉뚱한 말을 혼자서 중얼거리는 때도 있었다. 정신이상 증세가 나타난 것이다.
철도회사 사장이 직접 이 기관사를 만나 보려 그를 찾았다. 그는 극도의 두려움이 가득 차서 입을 열지도 못했다. 철도회사 사장은 안절부절 못하며 서있는 기관사 앞으로 다가갔다. 황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기관사의 어깨 위에 사장이 팔을 올려놓았다.
“이번에 우린 운이 아주 나빴어요. 나는 당신이 이 한 가지를 알아주었으면 좋겠소. 우리 회사서 일하는 사람이 당하는 어려움이나 슬픔은 곧 나의 어려움이나 슬픔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요.” 사장의 따뜻한 위로의 말에 기관사는 부들부들 떨더니 이내 눈물을 쏟았다. 이윽고 사장과 기관사 두 사람은 어깨를 함께 한 채 흐느껴 울었다.
엄청나게 큰 피해를 입힌 사람에게 따뜻하게 말을 건네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장은 해내고 말았다. 위로의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대학>(大學)에 ‘일언분사 일인정국’(一言?事 一人定國)이라는 말이 나온다. 지도자의 한 마디 말이 정국을 뒤엎을 수 있고, 지도자의 말 한마디가 나라를 안정시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얼마 전 자유한국당의 정태옥 의원이란 사람이 ‘이부망천’(離富亡川)이란 해괴한 말을 하고 부천과 인천 사람들에게 고소를 당했다. “서울에서 살다가 이혼하면 부천으로 내려가고, 망하면 인천으로 간다”는 뜻이란다.
그의 한 마디 말로 인천과 부천에 사는 사람은 물론 듣는 이들의 분노가 치솟았다. 반면 말 한 마디에 나라에 평안을 주고, 약자에게 위로를 주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얼마 전에 작고한 정의당의 노회찬 의원이다. 그의 말 한마디는 무더위에 시원한 새벽바람이었고, 엄동설한에는 뜨거운 난로처럼 따스했다.
말이란 그저 기술로 나오지 않는다. 품성이 말을 만든다. 건강한 품성이 바른 말, 따뜻한 말을 만든다. 반대로 악한 품성은 명령과 갑질의 말을 만든다.
‘구시화문’(口是禍門)이라는 말이 있다. 한편 가만히 생각해 보면 ‘구시화복문’(口是禍福門)’이 아닐까 싶다. 잘못 쓰면 입이 화문이지만 잘 쓰면 얼마나 큰 복문인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