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의 21세기형 인재 84] “먹지마세요. 피부에 양보하세요”

흔히들 양보하면 손해 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지지와 사랑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아시아엔=김희봉 교육공학박사, 현대차인재개발원] 한번쯤 들어 봤을만한 광고 카피 중에 “먹지마세요. 피부에 양보하세요”라는 것이 있다. 수년 전 등장했던 이 카피에서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아마도 ‘양보’가 아니었을까?

‘양보’(讓步)란 타인에게 길이나 자리 등을 내어준다는 의미로 상대적으로 약한 입장에 처해 있는 타인을 배려하는 것은 물론,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이는 더불어 살아가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행위이기도 하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양보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는 경우 노약자나 임산부 등을 위한 양보 표시가 되어 있는 좌석을 곳곳에서 볼 수 있지만 이용객이 많은 시간에는 종종 무용지물이 되기도 한다. 또한 혼잡한 거리나 장소에서 서로가 마주치는 경우에는 그 자리에 선 상태로 길을 비켜주지 않기도 한다. 도로 위 운전석에서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양보하기 어려운 것은 비단 모르는 이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거나 상대방의 의견 또는 요청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상황에 처해 본 적이 있다면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사람이나 함께 일하는 사람 간에도 양보가 어렵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양보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양보가 자신 이외에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 있고 그들의 처지나 상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즉 관심이 없다면 양보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양보하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관심이 선행되어야 한다. 타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 상대방의 불편함이 보이게 되는데 이것을 해결해 나가는 행동 중 하나가 양보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타적인 마음 역시 양보를 하는데 빠질 수 없다. 이타적인 마음은 상대방에게 더 주고 자신은 덜 받거나 아예 받지 않겠다는 마음이라고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부모님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아울러 자신이 속한 사회나 조직에 대한 이상적인 모습을 그릴 수 있다면 무엇을 어떻게 양보해야 하는지에 대해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이는 양보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거시적인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만일 이런 관점이 없다면 양보는커녕 개인의 이기적인 생각, 판단, 행동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양보는 손해가 아니다. 양보하는 것을 손해를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눈앞에 보이는 작은 편의나 이익에만 연연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를 범하게 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오히려 양보를 하게 되면 얻는 것이 더 많다. 양보를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는 그동안 자신이 누군가에게 무엇인가 양보했던 기억을 되돌아보면 그다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만일 이와 같은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양보했던 사람을 떠올려보자. 그 사람이 잃었던 것이 있던가? 혹 양보해서 잃은 것이 있다손 치더라도 얻은 것에 비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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