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최종현 선대회장 20주기②] 인재관···”첫째도 사람, 둘째도 사람”

최종현 회장은 인재를 키우듯 나무 심는데도 최선을 다했다. 그의 노력으로 황무지였던 임야 4100ha(여의도 면적의 14배)에 자작나무·가래나무·호두나무 등 330만 그루가 들어섰다. 그는 ‘화장’을 실천함으로써 매년 여의도 면적만큼 늘어나는 등 ‘묘지대란’을 겪던 시절, ‘장묘문화’ 개선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8월 26일 별세 20주기를 맞는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은 평생 두권의 책을 남겼다.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움직여라>(1988)와 <도전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1992). 책 제목만큼 그의 평생은 下心과 挑戰의 연속이었다. 얼핏 보면 상충되는 듯한 이들 두 단어는 최종현 자신과 그가 키워낸 SK그룹 그리고 계승자 최태원의 화두이자 목표가 되고 있다. <아시아엔>은 그의 ‘어록’ ‘인재관’ 등을 통해 독자들과 그의 삶을 살펴보려 한다. 자료를 제공해주신 SK그룹 PR팀에 감사드린다.<편집자>

[아시아엔=편집국] 故 최종현 회장이 가장 중시했던 것은 첫째도 사람, 둘째도 사람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자원이 부족한 나라는 사람이 가장 큰 자원이고, 기업 경쟁력 역시 사람에서 비롯된다고 봤다. 교육과 연수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1975년 3월 최종현 회장이 워커힐호텔 부지 내에 300평 규모로 국내 기업 최초의 연수시설인 선경연수원(현 SK아카데미)을 설립한 것이 바로 그의 인재관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표적 사례다.

국가동량의 양성소 ‘한국고등교육재단’ 설립

21세기 일등국가를 꿈꿨던 최종현 회장은 인재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봤다. 최종현 회장은 1974년 세계적 학자 양성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사재를 출연해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일등 국가, 일류 국민 도약과 고도의 지식산업사회 건설’이라는 100년의 목표로 출발한 세계적 석학 양성 프로그램은 44년이 지난 지금, 740여명의 해외 명문대 박사를 비롯해 3700여명의 인재들을 키워냈다.

최종현 회장은 1960년대 미국 유학시절 이스라엘이 강소국(强小國)이 된 배경을 궁금해했다. 대한민국처럼 자원이 부족하고 인구도 적은 이스라엘이 미국 사회에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국가와 사회가 합심해 인적자원을 개발했고, 이들이 요로에 진출하면서 국가 브랜드를 키웠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재단 설립을 결심하게 됐다고 최종현 회장은 훗날 회고했다.

재단 설립 당시만 해도 SK는 국내 50대 기업에 겨우 포함될 정도의 중견기업이었기 때문에, 상당한 비용이 소요되는 장학재단 설립을 두고 회사 내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최종현 회장은 사재를 출연하며 경영진의 불만을 잠재우고 장학재단 설립을 밀어붙였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의 장학사업에는 최종현 회장 때부터 현 최태원 회장까지 이어져온 전통이 있다. 조건 없는 지원, 유학 전 사전교육, 유학생과의 토론 등이 그것이다. 거액의 유학비용을 지원하는 조건은 ‘국가와 사회를 위한 일꾼이 되어 달라는 것’ 단 한 가지다. SK로의 입사는 절대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장학생들에게 강조해 왔다.

선발된 장학생들에게 강도높게 사전교육을 시키는 것도 재단의 전통이다. 최종현 회장은 “선진국 학생들은 강의계획서와 도서목록을 미리 입수해 사전에 철저히 준비를 해 왔다”면서 “우리나라에는 아직 해외 유명대학을 졸업한 선배들이 많지 않으니 재단이 이 부분을 챙겨달라”고 당부했다.

재단은 이 때부터 미국 유명 대학을 찾아가 강의계획서를 구하고 필요한 도서를 사들였다. 또 장학생 선배들이 강의계획서와 책을 보내주기도 했다. 그동안의 정성이 쌓여 높이 5m에 이르는 재단 서고에는 세계 각국의 언어로 쓰여진 전문 원서 1만 5000여권이 빼곡히 꽂혀 있고, 지하 정보실에도 1만 9000여권의 장서가 더 보관돼 있다.

‘드림렉처’···한국고등교육재단 출신 장학생의 인재양성 선순환 활동

재단 출신 인재들은 사회적 기여를 위한 지식 나눔 사업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최종현 회장에게서 아무 조건 없이 받은 혜택을 후학들에게도 조건 없이 나누겠다는 지식나눔의 선순환인 셈이다.

이를 위해 학위를 취득한 재단 출신의 각 분야 석학들은 전국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영학, 경제학, 물리학 등 청소년들에게 어렵거나 생소한 전공을 소개하기도 하고, 철학과 비전 등을 나누기도 하는 ‘드림렉처(Dream Lecture)’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드림렉처’는 석학들이 직접 학교로 방문해 전공별 이슈들을 10대들의 눈높이에 맞게 소개해 학생들이 진로를 모색하는데 도움을 주는 ‘너만의 꿈을 키워라’ 프로그램과 학생들을 재단으로 초청해 인문학에서부터 자연과학과 문화?예술까지 다루는 ‘더 넓은 세상으로’ 프로그램의 두 가지로 운영되고 있다.

2013년 시작된 ‘너만의 꿈을 키워라’ 프로그램에는 지금까지 재단 학자들이 500개에 달하는 학교를 직접 방문해 10만명이 넘는 학생들을 만났다. ‘더 넓은 세상으로’ 프로그램은 올 7월말까지 36회에 걸쳐 진행돼, 전국에서 총 1만 2000여명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황무지 충주 인등산이 울창한 숲으로···인재 키우듯 나무 키우다

최종현 회장은 장학사업을 위해 나무를 심었다. 1972년 서해개발(現 SK임업)을 세운 뒤 충남 천안 광덕산(500ha)을 시작으로 충북 충주 인등산(1200ha), 영동 시항산(2340ha), 경기도 오산(60ha) 등 4100ha 황무지 임야를 사들여 꾸준히 나무를 심어 울창한 숲으로 키워낸 것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로 세계 경제가 어수선하고 SK가 석유사업 진출을 위해 정신 없이 바쁠 때도 최종현 회장은 투자기간이 너무 길어 사업화가 어렵다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산을 개간하고 나무 심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좋은 의도로 장학사업을 시작하더라도 회사 경영의 부침에 따라 중도에 흐지부지 되는 일은 없을까 우려했던 최종현 회장은 나무의 한결같음에서 해답을 찾았다. 3000만평의 임야에 수익성 좋은 나무를 심은 뒤 30년 후부터 1년에 100만평씩 벌목하면 회사 경영과 무관하게 장학기금을 만들 수 있다는 선순환식 수목경영(樹木經營)을 창안한 것이다.

최종현 회장의 노력으로 황무지였던 4100ha의 임야에는 현재 자작나무, 가래나무, 호두나무, 루브라참나무 등 고부가가치 조림수 40여종, 조경수 80여종 등 330만 그루가 들어섰다. 여의도 면적(290ha)의 14배에 달한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조림 및 산림자원화에 노력한 공로가 인정돼 2010년 경기도 포천시 국립수목원 내 ‘숲의 명예전당’에 헌정됐다.

인재양성의 본격 출발,MBC 장학퀴즈···CCTV서 중국 전역 방송?

최종현 회장의 ‘인재보국(人才報國)’ 기치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확산됐다. MBC가 청소년 대상 교양 프로그램으로 시작한 장학퀴즈가 광고주를 찾지 못해 폐지 위기에 처하자 SK가 백기사로 등장한 것이다. SK는 1973년 2월18일 방영 프로그램부터 단독 광고주로 나섰다. 당시 TV 프로그램 중 단독 광고주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청소년 지식 경연 프로그램의 원조 격인 ‘장학퀴즈’는 지난해 기록 인증기관인 KRI 한국기록원에 의해 국내 최장수TV 프로그램으로 인증 받았다. 70년이 채 되지 않은 국내 TV 방송 역사를 감안할 때 장학퀴즈 46년 방송은 유례가 없는 대기록이다. 이후 장학퀴즈는 1996년 MBC에서 EBS로 무대를 옮겼고, 올해 7월말까지 총 2200회 이상 방영됐다. 1980년 11월 첫 방송을 시작한 ‘전국노래자랑’보다 7년이 더 긴 기간이다.

2만명이 넘는 장학퀴즈 출신들은 학계, 재계, 법조계, 의료계, 언론계 등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해 오피니언 리더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장학퀴즈는 한국을 넘어 중국에서도 방영 중이다. 매주 일요일 오후 5시 중국 CCTV 채널14번(청소년?아동 채널)을 켜면 SK극지소년강(SK?智少年强)이라는 청소년 퀴즈 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다. CCTV 프로그램 중 기업체 이름이 붙은 유일한 프로그램으로, 지난 2000년 중국 베이징TV(BTV)에서 시작한 SK장웬방(壯元榜)이 2016년 중국 전역에 방송되는 CCTV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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