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살 청춘’ 박상설의 유언장 “내 죽음 알리지 마라”···장례식 없이 해부학교실로
[아시아엔=박상설 <아시아엔>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 캠프나비 대표] 우리는 생업에 쫓겨 정신없이 도시 속에 파묻혀 살지만 가을철 강원도 홍천 오대산 자락 샘골에는 들국화, 개미취, 산 부추, 구절초 등의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난다.
나는 이 꽃 저 꽃 중에서도 들국화를 제일 좋아한다. 들국화는 아무 데서나 피지 않고, 한 발짝 물러나 한적한 양지바른 곳에 자리한다. 연보라색의 화려하지 않은 쓸쓸한 자태에 마음이 쏠린다. 그 언저리에 억새풀이 나부끼는 정경은 가을을 한층 짙게 한다.
어느 해 9월 하순 4일간 샘골 농원에서 캠핑하며 비닐하우스 보온덮개와 해가리개 차양공사를 했다. 샘골에서 고요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이제는 알려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유언장이다.
유언은 가족에게만 은밀하게 남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람은 사회와 더불어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살기 때문에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한 나의 경우는 가족에게만 매몰되어 사는 게 아니라 집의 울타리를 걷어치우고 야성의 유목민을 자처하는 노마드이기 때문이다.
가족과는 오래전에 이미 쾌히 합의했고, 사람의 몸은 자기 몸이기도 하지만 생을 끝내면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앎’은 인생을 철저히 지존(至尊)하는 다짐이다.
박상설의 유언장
1. 사망 즉시 연세대 의대 해부학교실에 의학 연구용으로 시체를 기증한다.
2. 장례의식은 일체 하지 않는다.
3. 모든 사람에게 사망 소식을 알리지 않는다.
4. 조의, 금품 등 일체를 받지 않는다.
5. 의과대학에서 해부실습 후 의대의 관례에 따라 1년 후에 유골을 화장 처리하여 분말로 산포한다. 이때 가족이나 지인이 참석하지 않는다.
6. 무덤, 유골함, 수목장 등의 흔적을 일체 남기지 않는다.
7. 제사와 위령제 등을 하지 않는다.
8. ‘죽은 자 박상설’을 기리려면 가을, 들국화 언저리에 억새풀 나부끼는 산길을 걸으며 ‘그렇게도 산을 좋아했던 산사람 깐돌이’로 기억해주길 바란다.
9. ‘망자?박상설’이 생전에 치열하게 몸을 굴려 쓴 글 모음과 행적을 대표할 등산화, 배낭, 텐트, 호미, 영정사진 각 1점만을 그가 흙과 뒹굴던 샘골농원에 보존한다.
10. 시신 기증 등록증(등록번호: 10-344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과 02-2228-16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