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 커피 경작지’ 예멘 난민 제주 도착 어느새 100일

[아시아엔=윤지영 나눔문화 글로벌평화나눔팀장] 한국인은 갈 수 없는 여행금지국, 멀고 낯선 나라 예멘. 그런데 피부색도 언어도 다른 5백여명의 예멘인이 ‘난민’이 되어 한국을 찾아왔다. 이에 수용 거부 여론은 56%, 청와대 청원은 70만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예멘의 상황을 안다는 사람은 응답자의 26%. 처음 맞닥뜨린 ‘집단적 난민 수용’에 대한 당혹과 불안 앞에, 예멘인들이 걸어온 여정을 바라본다. 이들은 왜 조국을 떠나야만 했을까?

모카커피 향 흐르던 ‘행복한 아라비아’

아라비아 반도 서남부에 위치한 예멘. 예멘이란 이름은 아랍어로 행운을 뜻하는 ‘윰느’에서 유래했다. 풍부한 강수량과 비옥한 땅, 활발한 교역으로 ‘행복한 아라비아’란 별칭을 가진 나라였다. 성경을 안다면 이미 예멘을 아는 것이다. 대홍수가 끝난 뒤 노아가 세운 사누아 마을, 솔로몬 왕을 방문한 스바왕국의 여왕도 예멘의 이야기다. 커피를 좋아한다면 이미 예멘을 만난 것이다.

인류 최초의 커피 경작지가 예멘이었고 16세기 오스만 제국이 운영한 세계 최대 규모의 커피 무역항 이름이 바로 ‘모카’였다. 예멘의 번성은 1960년대까지 이어져, 예멘 남부의 아덴은 뉴욕에 이어 세계 제2의 항구 도시라 불릴 정도였다.

아라비아반도 서남부에 있는 예멘은 이슬람 국가로, 전체 인구 중 수니파가 53%, 시아파가 47%이다. 북부는 시아파, 남부는 수니파가 장악하고 있다.

50년 넘게 전쟁 계속되는 비극의 땅

그러나 지금 예멘은 50년 넘게 전쟁 중인 “지구상에서 가장 비참한 곳”. 비극의 씨앗을 심은 것은 영국으로, 1918년 예멘을 분리해 남예멘만 식민지배했다. 이후 북예멘은 내전을 거쳐 1962년 공화정을 수립, 남예멘은 1967년 영국에서 독립해 공산정권을 수립했다. 다른 체제의 두 나라는 서로에게 총을 겨눴고, 1990년 통일 이후에도 내전은 계속됐다.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독재자 살레 대통령을 끌어내리며 잠시 희망이 깃들었으나, 북부 시아파 반군과 남부 수니파 정부군 간의 내전이 격화됐다. 게다가 시아파 국가인 이란과 수니파 국가인 사우디, 아랍에미리트의 용병과 이슬람 무장단체까지 참전하면서 내전은 국제전으로 비화했다. 2014년 시아파 반군이 수도를 점령하자, 이듬해 사우디는 봉쇄와 폭격을 시작했다.

예멘 인구 2800만명 중 1만1천여명이 숨졌고, 2천만명이 굶주리며, 콜레라 감염자는 1백만명. 그리고 3백만명의 난민 중 30만명이 국외로 탈출했다.

예멘은 한국이 지나온 ‘과거의 거울’

예멘 난민들은 “납치 살인 폭격의 일상이었다”, “군대에 끌려가 무기를 들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끊임없이 누구 편이냐고 물었다”고 말한다. 바로 우리가 겪어온 고통이다. 식민지배, 강제된 분단, 강대국의 대리전쟁, 냉전체제의 적대 그리고 동족상잔의 아픔까지, 예멘의 역사는 한국과 너무도 닮았다. 한국전쟁 당시 수백만명이 피난민이 되었고, 유엔 설립 이후 최초로 도움을 받은 난민도 한국인이었다. “우리도 같은 일을 겪었다”며 예멘 난민들을 각별히 챙기는 제주의 어르신들이 있는 까닭이다. 그런데 그 시간이 채 100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예멘인의 아픔에 손 내밀 수 없다면 ‘역사의 기억상실증’에 걸린 존재에 다름 아닐 것이다.

닫힌 국경을, 우리의 심장을 두드리는 이들

예멘 내전의 종식은 요원하다. 국제사회의 침묵 속에 ‘잊혀진 전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면에는 강대국의‘무기 비즈니스’가 깔려있다. 사우디는 세계 최대 무기 수입국으로 61%를 미국에서, 23%를 영국에서 사들인다. 프랑스, 스페인, 스위스, 이탈리아, 캐나다, 터키 그리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예멘의 비극에 우리도 책임이 있다. 이제 예멘의 평화는 경제적 이익 앞에 무너진 인간성을 구하는 길이기도 하다. 당장 전쟁을 멈추게 할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죽음의 폐허 속에서 살아나온 이들을 품을 수는 없을까? 그들은 오늘도 굳게 닫힌 절망의 국경을, 얼어붙은 우리의 심장을 두드리고 있다.

 The AsiaN 편집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