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더 이상 추모 말자. 조금씩 닮아가자”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지난 7월 23일 세상을 떠난 노회찬 의원만큼 한국정치사상 큰 울림을 준 정치인도 별로 없을 것이다. 노회찬 의원의 26일 추모제와 27일 국회장에서 오열하는 추모객들의 발언을 모아보았다,
“영상을 보고 나니 더 그립죠?”(추모제 사회자 김미화씨),
“낡고 닳은 구두를 신고 다닌 노회찬 대표님이 생각났다. 어떤 분이 멋지고 세련된 구두를 대표님 영정 앞에 두고 갔다. 대표님이 신으면 정말 잘 어울릴 거 같다”(상임장례위원장 맡은 이정미 정의당 대표 추도사)
“회찬이 형! 늘 형으로 여겼지만, 단 한 번도 형이라고 불러보지는 못했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불러볼게요. 형! 다음 생에는 더 좋은 곳에서 태어나세요. 더 자주 더 멋지게 첼로를 켜고, 더 아름다운 글을 더 많이 쓰고, 김지선님을 또 만나서 더 크고 더 깊은 사랑을 나누세요.”(추도식장 앞자리에서 연신 눈물 훔치던 유시민 작가)
“여러분들이 많이 사랑하시고, 정말 멋진 정치인인 우리의 지도자 노회찬을 지키지 못해서 정말 죄송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수많은 번뇌의 나날을 지새웠을 우리 대표님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그의 30년 동지 심상정 의원)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프고 울컥울컥해서 무엇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을 하늘은 왜 이렇게 빨리 데려가는지 원망스럽다. 노회찬 의원이 이 세상에 남기고 간 향기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그가 우리 가슴에 새긴 아름다운 모습은 영원히 간직될 것이다.”(창원 시민분향소 추모문화제에서 시민 대표)
“당신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누구보다 부지런했고, 무쇠처럼 단단했고, 모두에게 공손한 사람/ 눈부셨지만 있는 그대로 소박하게 아름다웠던 사람/ 노회찬의 정의는 결코 지지 않으며/ 끝나지 않은 우리들의 길/ 진보의 길, 잊지 않겠습니다.(김유철 시인 조시 ‘진보의 길,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은 항상 시대를 선구했고, 진보정치의 상징이었다. 정의를 위해서라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만류에도 거대 권력과의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다”(문희상 국회의장 추도사)
노회찬의원은 생전 인터뷰에서 자녀가 없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고 한다.
“둘 다 늦게 결혼했고, 또 제가 7년간 수배당하다가 교도소 갔다 오니까 첫 아이를 갖기엔 너무 늦은 나이가 됐습니다. 사실 그동안 아이를 갖기 위해 한약도 먹고 용하다는 병원에 다니면서 꽤 노력을 했지만, 지금은 포기했습니다.”
입양도 시도했지만 당시엔 국회의원 신분도 아니었고 수입이 일정치 않아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는 생활고를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제가 감옥에 있는 동안 집사람이 제 옥바라지를 하면서 살림을 꾸렸습니다. 집사람이 ‘여성의 전화’에서 일을 하면서 ‘다만 얼마라도 좋으니 생활비는 꾸준하게 벌어다 달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매달 30만원을 약속했는데, 결국 지키지 못했습니다. 생활고 때문에 옷은 아파트 단지 내 재활용품 모아놓은 데서 주워 입었고, 또 TV같은 것은 아예 살 생각도 못했어요. 결국 누가 쓰다 버린 걸 가져다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