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대사는 왜 닭 울음소리에 깨달음을 얻었을까?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원불교에서는 성품이란 말을 많이 사용한다. 첫째,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본래 가지고 있는 근본 성질 둘째, 누구나 부처의 인격을 이룰 수 있는 본래의 마음 셋째, 인간의 본성과 우주의 본질이 하나로 합일 되는 진리를 성품이라 한다.
성품은 불교에서 말하는 자성(自性), 본성(本性), 불성(佛性), 법성(法性) 등과 같은 말이다. 결국 성리(性理)와 성품은 같은 뜻이다. 즉, 성리 공부를 한다는 것은 성품을 찾고 깨치는 공부다. 인간은 누구나 본래부터 한 개의 보배구슬을 갖고 있다. 모든 인간은 그 보배구슬 한 개로 영겁의 세월에 끝없이 흘러가며 육도(六道) 윤회(輪廻)를 하는 것이다.
누구나 갖고 있는 한 개의 보배구슬, 그것이 곧 성품이다. 제불(諸佛), 조사(祖師), 범부(凡夫)와 중생(衆生)의 성품은 오직 하나다. 성품은 곧 일원상(一圓相)의 진리요 성리다. 이 성품의 본래 자리는 텅 비어 아무것도 없다. 일체의 사량(思量) 분별(分別)이 다 끊어진 자리다. 선악과 죄복도, 생사거래도, 행불행도, 염정미추(染淨美醜)도, 남녀노소도, 동서남북도 없는 것이 본래의 성품이다.
그러나 또한 천만경계(千萬境界)에 따라 생사고락, 선악시비, 빈부귀천, 원근친소, 남녀노소의 차별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일 따라 경계 따라 천만 분별이 일어나는 것도 성품이다.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 한 개를 던지면 천파만파가 일어나듯 본래의 성품이 경계에 흔들리면 천만번뇌가 불타듯 일어나는 것이다.
우주의 삼라만상이 꿈과 같고, 환상과 같으며,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은(夢幻泡影) 것이라, 허공 꽃처럼 어지러이 흩어졌다 다시 생기듯 그렇게 티끌먼지 자욱하게 일어났다 없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곧 세상사는 일이요 인간 세계의 차별현상이다.
이같이 성품은 텅 비어 아무것도 없지만 경계를 만나서 바르게 작용하면 선(善)이 되고 그르게 작용하면 악(惡)이 된다. 그런데 본래 성품은 고요한 마음이요, 경계에 끌려 다니지 않는 마음이고, 부처의 마음이요, 깨친 마음이며, 지혜광명이다.
우리의 성품인 한마음이 고요하면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은 사라지고 한마음이 평화로우면 시방삼세(十方三世)가 다 극락정토(極樂淨土) 아님이 없다. 한마음 텅 비면 분별시비가 잠을 자고 한마음이 한가로우면 생사고락이 모두 다 한 곡조다. 이와 같이 성품은 곧 성리의 궁극처(窮極處)다.
이렇게 성품을 깨치면 형상 있는 모든 것이 허공 꽃이라, 생로병사, 빈부귀천, 부귀공명도 풀잎의 이슬이요, 재색명리, 희로애락, 흥망성쇠도 물거품이요, 시방삼세. 삼라만상도 눈 깜짝 할 사이인 것이다. 영원보다 더 짧은 시간이 없고, 찰나(刹那)보다 더 긴 시간도 없다. 천불만성 일체생령도 스치는 바람소리요, 꽃향기 새소리도 동녘하늘의 무지개다.
또한 성품은 부처님 마음이라 보리심(菩提心)이요, 자비심이며, 청정심이요, 봉공심이며, 지혜 광명이다. 이와 같이 성품을 발견하고 깨친 사람은 걸음걸음 생각생각이 도(道)에 합하여 걸리고 막힐 것도 하나 없다. 두려움도 공포도 찾을 수 없고, 경계도 흔들리지 않아 천만번뇌가 봄눈 녹듯 사라지고 드디어 생사해탈 얻게 된다.
성품을 깨쳐서 바르고 정의롭게 육근(六根, 眼 耳 鼻 舌 身 意)을 작용하는 사람은 마음이 언제나 한가롭고 넉넉하다. 번뇌와 망상 없애려고 억지로 애쓰지도 않고, 진실을 구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삼라만상 그대로가 청정법신불이요, 성품이 곧 천진자성불(天眞自性佛)이라 주객일체(主客一體), 물심일여(物心一如), 물아구공(物我俱空)이 되어 눈 깜짝할 사이에 삼세업장(三世業障)이 녹아나고, 여래의 대자대비가 원만 구족하게 되는 것이다.
옛날 서산대사께서 수행하던 어느 날, 무슨 연유에선지 먼 길을 나서게 되었다. 산 높고 숲 깊은 험한 산길을 지척도 분간키 어려운 밤길을 부지런히 재촉해 가고 있었다. 거의 온 밤을 쉬지 않고 얼마나 먼 길을 걸었는지 헤아려 볼 틈도 없이 걸었다.
얼마를 더 걸었을까? 가쁜 숨도 고를 겸 잠시 쉰 후에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할 요량으로 걸음을 멈추었다. 멈추어 서서 살펴본 주위는 새벽이 가까워서인지 더욱 더 짙은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때였다. 두꺼운 어둠의 적막을 뚫고 저 먼 산 아래, 어느 마을에선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질듯 끊어지며 희미한 닭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닭이 홰치는 소리를 들으며 막 새벽, 곧 동이 틀 것이거니 생각하며 쉬고 있던 중, 여전히 닭 울음소리는 길게 이어지고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그 때, 그 순간, 그 찰나에 서산대사께서는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 고난 속에 오랜 수행으로 찾고 헤맸던 대오각성(大悟覺性) 견성대도(見性大道)를 이루시는 순간이었다.
서산대사는 하필 닭 울음소리에 대각의 함성을 질렀을까? 그리고 서산대사께서 깨달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견성은 이와 같이 사무쳐야 오는 것이다. 어두운 밤하늘에 빛나는 뭇별들도 새벽이 올 때쯤 더 깊어 진 어둠 속에서 더욱 더 밝은 빛을 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