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종주국서 형-아우된 두나라 영국과 미국 “시리아 함께 갈기자”

[아시아엔=김중겸 전 경찰청 수사국장] 20세기 중반 이전 영국인에게 미국인이란 뉴욕의 마피아나 시카고의 알 카포네 혹은 영화 통해 알게 된 배우 정도의 이미지였다.

1942년 1월 미국 군인들이 영국 땅 밟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 참전을 위해 정부에서 보낸 사람(GI, Government Issue)였다.

그들은 영화배우도 갱단(gangster)도 아니었다. 사탕과 코카콜라와 담배와 나일론 스타킹과 양말을 나눠주는 산타였다.

아이들은 “Got any gum, chum?” 외쳐댔다. 어디 껌뿐이겠는가. 햄이며 베이컨, 커피와 설탕, 초콜릿···. 아낌없이 줬다.

영미문화가 처음 만났다

영국인이나 미국인은 당시만 해도 고향 떠나 본 사람 적었다. 미군도 전쟁 때문에 처음으로 바다 건너 세상 구경했다. 서로 잘 몰랐다.

같은 영어를 써 통역 필요 없었다. 억양은 달랐다. 단어와 표현법도 차이 났다. 듣거나 영화로는 인디언 사냥해 죽이고, 경찰관에게도 쌍권총 마구쏘아 대는 키 큰 사람들로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친절하고 단순했다. 수송선으로 핀볼 놀이기계(pinball machine), 요금 넣고 희망하는 곡 듣는 자동전축(jukebox), 지르박(jitterbug), 그리고 재즈를 실어왔다.

영국에는 없는 놀이와 음악을 가져왔다. 놀기도 잘 놀았다. 마시기도 잘 마셨다.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여자들은 더 난리

영국은 무기를 비롯한 군수품을 미국으로부터 대여받아 전쟁 치르고 있었다. 식량과 생활필수품은 배급제, 고기와 설탕은 금처럼 귀했다.

미군은 영국군인 급여의 5배나 받았다. 전직이 구두닦이였는지, 택시기사였는지 알 필요도, 알 방법도 없었다. 여하간 부자였다.

병사들에게 지급되는 하루치 식량(ration)엔 고기·버터·치즈·빵 등 없는 게 없었다.

유럽이나 아프리카 전쟁터로 떠나기 전에 매일 파티 열었다. 먹고 마시고 춤추고 흥청망청했다. 영국 여인들이 어울렸다. 천국이 따로 있냐!

약 7만의 영국여성이 미군의 신부가 됐다. 남편은 전쟁터로 떠나고 영국인 신부는 여권 하나 달랑 들고 시댁 찾아 갔다. 대환영 받았다.

혼외문제도 있었다. 결혼 못하고 미군과 동거하면 Yankee bag이라 불렸다. 9천명의 전쟁 사생아(war baby)가 태어났다.

영국은 각 개인에게 맡겼다

영국정부와 지도자들은 사실 처음엔 걱정 많이 했다. 영국여성들이 미군병사에게 결딴나는(spoil) 거 아니냐고 우려했다. 그러나 미군과의 교제는 개인의 선택 문제라 봤다.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었다.

사회단체와 종교단체가 절제운동 벌이는 건 별개였다. 나름 의미 있는 행동이라고 평가했다. 간섭하거나 유도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미국은 군인들을 교육했다

미군은 대서양을 건너야 했다. 곧바로 전쟁터로 나가기는 불가능해 영국에 일단 주둔한 뒤 재편성해서 갔다. 현지여성과의 관계는 당연히 예상됐다.

영국으로 가는 배 안에서 각 장병에게 매뉴얼 지급했다. 영국 문화와 습관, 지켜야 할 예절을 강의했다. 꼭 영국만이 아니었다. 가는 곳마다 그 나라에 대하여 가르쳤다. 특히 여성에 대하여는 “예의 지켜야 한다. 책임지는 행동을 하라”고 가르쳤다.

1차 세계대전 때부터 미국의 도움 받아야 했던 영국은 2차세계대전에서는 미국 돈과 물자, 그리고 장병으로 싸워야 했다.

종주국 영국과 식민지 미국의 입장이 180도 바뀌었다. 영국은 아우 되고 미국은 형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관계(special relationship)를 만들어 나갔다. 영국이 얘기하면 미국이 들어준다. 미국이 하면 영국도 한다. ‘일심동체 형제국가’.

전쟁한 지 오래 된 미국은 전쟁 기갈증 걸린 상태다. 군수업체도 좀 살리고 새로 개발한 무기 테스트도 좀 해야 할 때 됐다.

“시리아 한 방 갈기자. 같이 해!” 미국이 뜻맞는 나라들 규합해서 공격한다.

미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은 영국여왕이 기증한 책상 쓴다.

메이 영국 총리(왼쪽)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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