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독재정권 제발등 찍은 ‘4·13 호헌조치’

<사진=뉴시스>

[아시아엔=이관우 기자] 1987년 오늘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오전 텔레비전에 등장했다. 일체의 개헌논의를 금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내용의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기 위해서다.

당시 전두환의 5공 정부는 “평화적인 정부이양과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소모적인 개헌논의를 지양한다”며 아래와 같은 조치를 발표했다. 즉 △개헌논의를 빙자해 실정법을 어기는 행위를 엄단하며 △이와 관련한 사범은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법정 최고형을 구형할 것 △이에 따라 모든 시위·농성 등 집단행동을 불허한다는 것 등이었다.

그해 1월 14일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등으로 촉발된 민주화 시위가 야당과 시민들의 직선제 개헌요구로 발전하자 전두환 정권은 위기를 느끼고 국민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며 강경책을 편 것이다.

4·13 호헌조치는 개헌 요구에 휘발유를 끼얹어 역설적으로 민주화를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 또 이를 주도한 전두환 대통령의 이후 정치인생은 파멸의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호헌 반대운동은 야당·학생·종교계 등에서 삭발·단식·서명 등 다양한 형태로 일어났다. 종교계를 시작으로 당시 야당(통일민주당)과 재야세력이 결합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결성(5.27)됐으며 4·13 조치는 6·29선언을 통해 철회되었다.

또 당시 5·18 7주기 추모미사에서 박종철군 고문치사와 관련된 경찰의 은폐 조작 사실이 폭로되고, 6월 9일 연세대생 이한열군이 경찰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면서 반정부·반독재 시위는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민정당이 노태우 당대표를 체육관선거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던 6월 10일 오후 6시를 기해 전국에선 자동차 경적시위를 신호로 학생은 물론 넥타이부대 시민들,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왔다. “독재타도, 호헌철폐” 함성은 6월 29일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는 이른바 ‘6·29선언’이 나오기까지 이어졌다.

그해 말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을 누르고 제 13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전두환 대통령은 장기집권을 꾀하며 4·13 호헌조치를 발표한 바로 이듬해(1988년) 같은 날 퇴임 후에도 上王으로 남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 차지한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과 자신이 창당한 민정당의 명예총재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리고 자신의 임기 초 유치한 88서울올림픽 폐막(10.2) 얼마 뒤인 11월 23일 자신이 후계자로 만들어 준 육사동기생이자 ‘평생동지’인 노태우 정권에 의해 백담사에 2년 넘게 유폐돼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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