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진 세상 비판한 예술가들: 뱅크시와 아이 웨이웨이의 이야기
[아시아엔=알레산드라 보나노미 기자] 영국의 그래피티 작가이자 영화감독 뱅크시는 사회정치적인 사안에서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는 예술가다. 이러한 모습은 콜린 데이의 다큐멘터리 ‘세이빙 뱅크시’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뱅크시는 전쟁과 파시즘, 소비지상주의를 경계했으며 위선과 탐욕, 빈곤으로 얼룩진 세상을 바라봤다.
그는 가자 지구에서 촬영한 ‘올해는 당신이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세요’라는 영상에서 이스라엘의 폭탄이 떨어진 가자 지구의 처참한 모습을 담기도 했다. “힘 있는 자와 힘 없는 자 사이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힘 있는 자의 편을 드는 것과 다름 없다. 우리는 중립을 지켜선 안 된다.” 지금도 가자 지구의 벽 한 켠을 장식하는 뱅크시의 목소리다.
2015년, 뱅크시는 디즈니랜드를 패러디한 ‘디스말랜드’를 열어 자본주의와 기득권, 권력의 남용을 비판했다. 디스말랜드 속 신데렐라 성. 이 곳에선 자포자기한 난민들로 가득한 배와 호박마차가 충돌하는데, 이는 다이애나 비의 비극적인 교통사고를 연상시킨다. 경찰기동대 차량의 형상을 띤 워터슬라이드는 삐뚤어진 권력을 암시한다.
뱅크시가 삐뚤어진 세상을 거리낌 없이 비판하는 예술가라는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지만, 예술가들의 정치, 사회 비판은 오랜 세월 행해져 왔다. 신고전주의 시대, 자크 루이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은 프랑스 혁명을 이끌던 장 폴 마라가 살해당한 사건을 그렸다. 미술사가 클라크는 이 작품을 ‘정치적인 요소를 담은 최초의 모더니즘 작품’이라 평했다.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비판한 작가들도 있었다. 낭만주의 시대, ‘군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그린 들라크루아와 ‘메두사의 뗏목’을 그린 테오도르 제리는 사회계급간의 불평등을 그림으로 묘사했다. 1950년대 오노레 도미에도 돈이 없어 비좁고 지저분한 열차 칸에 타야만 했던 승객들의 표정을 작품에 담았다. 도미에의 명작은 1950년대 사실주의 예술사조에 의해 재조명 받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주의 사조는 이탈리아에서 영화로 구현됐다. 이탈리아의 사실주의 영화들은 노동자층과 빈곤한 이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뤘고, 비토리오 데 시카, 페데리코 펠리니, 알베르토 라투아다 등의 감독들은 그 황금기를 이끌었다. 이들은 2차대전 이후 가난했던 이탈리아와 도덕의 상실을 직시했다. 당시엔 극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전문 배우가 아닌 아마추어 배우들을 기용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은 한번쯤 곱씹어볼 만한 영화다. 이탈리아가 경제난으로 허덕이던 시대, 주인공 안토니오는 직업을 찾아 전전한다. 운 좋게도 그는 포스터를 붙이는 직업을 구했지만 일하는데 필요한 자전거를 도둑맞는다. 안토니오 부자는 잃어버린 자전거를 찾지만 도둑맞았단 것을 입증할 증거가 없었다. 결국 안토니오 역시 타인의 자전거를 훔쳐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탈리아 사실주의 영화들은 이러한 모순이 평범하기 그지 없었던 시절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위와 같이 예술의 사회비판이 그 역할을 다하며 가치를 인정받는 경우도 많지만, 반대로 예술가 당사자에게 불행을 가져다 준 경우도 있다. 중국의 예술가 아이 웨이웨이의 사례가 그렇다. 세계적으로 명망 높은 아이 웨이웨이는 체제에 반한다는 이유로 모국인 중국으로부터 탄압받아 왔다. 2010년 그는 영국 테이트 모던의 터빈 홀 바닥을 1억여 개의 모조 해바라기 씨앗으로 뒤덮었다. 웨이웨이는 이 작품에 대해 “해바라기 씨앗은 중국의 사회, 정치, 경제의 단면을 나타난다. 중국은 서구를 따라 세계화와 대량생산에 나섰지만 그 바닥에는 저임금 노동자, 거대한 공장의 쓸데 없이 길고 복잡한 생산공정이 깔려있다”라고 밝혔다.
인류의 역사 동안 예술은 수많은 역할을 수행해 왔다. 때론 종교적인 믿음을 뒷받침했고, 때론 흥미로운 오락거리가 되기도 했으며, 순수예술로 남은 적도 있다. 여러 역할들 가운데서도 예술은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할 때 가장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