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 가장 위대한 인물이자 미국의 영웅, 빌리 그레이엄 목사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99세를 일기로 타계한 후 노스 캐롤라이나주 애슈빌에 있는 빌리 그레이엄 연수원 내 채틀로스 채플에서 한 사람이 고인의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빌리 그레이엄(1918년 9월 7일 生) 목사가 99세를 일기로 2월 21일 노스캐롤라니아주 몬트리트 마을(인구 700명)의 자택에서 소천(召天, demise)했다.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본명 William Franklin Graham Jr.) 목사의 추도식이 2월 28일 워싱턴 연방의사당 중앙홀에서 거행되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상하원 지도부 등을 비롯한 많은 조문객들이 참석했다. 장례식은 3월 2일(음력 正月 대보름) 고향인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 있는 ‘빌리 그레이엄 도서관’에서 엄수됐다.

빌리 그레이엄은 16세 때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고 고교 시절부터 전도에 힘썼다. 1940년 플로리다 성서신학교(Florida Bible Institute)를 졸업하고 남침례교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43년 일리노이주 웨스턴 스프링 제일침례교회에서 목사로 시무했으며, 1947년에는 노스웨스턴 성서학교 교장과 대학장을 역임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1949년 로스앤젤레스(LA) 전도대회 중 할리우드 스타들이 대거 신앙을 갖게 되면서 미국 전역에 알려졌으며, 1950년 빌리 그레이엄 복음전도협회를 설립하고 세계 전도활동에 나섰다. 1954년 영국 런던 집회를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세계적 부흥집회 강사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후 성가 지휘자와 성악가를 대동하고 전도팀과 함께 여러 나라를 순회하며 복음을 전했다. 그는 6대주 185개국 이상을 다니며 2억1500만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한국 교계에도 잘 알려진 그는 1952년 북한의 6·25남침전쟁 당시 서울과 부산 집회에서 피난민들을 위로했으며, 1956에는 서울운동장에서 8만여명이 모여 집회를 가졌다. 1973년 5월 16일부터 27일까지 전국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집회를 가졌고, 5월 30일부터 6월 3일까지 여의도 광장에서 매일 집회를 가졌다. 마지막 날인 6월 3일 낮에는 115만이 여의도광장에 모였고, 이 기간 동안 연인원 334만명이 모여 4만4천명의 결신자(決信者)를 내는 등 세계 전도 사상 괄목할 만한 기록을 세웠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에 초대형 아스팔트 광장을 만들었는데, 이듬해인 1973년 전도대회가 열렸다.

1973년 교파를 초월해 100만 인파가 몰렸던 서울 여의도광장 ‘빌리 그레이엄 전도집회’에서 통역을 맡았던 당시 39세 ‘수원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였던 김장환(현 극동방송 이사장) 목사가 덩달아 유명해졌다. 김장환(별칭 빌리 킴) 목사는 1934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6·25전쟁 때 미군부대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하우스보이’로 일하던 중 칼 파워스 미군 상사의 주선으로 1951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1958년 밥존스 대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귀국 후 12명의 신도로 수원중앙침례교회를 설립했다.

한국에서 열린 전도대회 통역을 그레이엄 목사 측에서 한경직 목사께 부탁했으나 당시 70대였던 한 목사가 사양하면서 김장환 목사를 추천했다. 전도대회 이후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한국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으며, 김장환 목사는 매년 미국으로 그레이엄 목사를 방문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1992년에는 북한을 방문하여 선교집회를 열고, 김일성 당시 주석을 만나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도 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부인 루스 벨 여사는 선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1931-1937년 청소년기의 학창시절을 평양에서 보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복음 전도사’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목회자로 꼽혀 왔다. 그는 미국 대통령들의 ‘영적 멘토’로 활동했으며, 해리 트루만 대통령 이후 거의 모든 대통령은 그레이엄 목사를 찾아 영적 조언을 구했다. 또한 세계 정치 지도자들의 영적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인물 20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2005년 전도 집회를 끝으로 설교자로서의 삶을 은퇴했다. 그의 전도여행에서 가장 많은 인파를 기록한 것은 1973년 6월 3일 115만명이 모인 서울 여의도광장 집회였으며, 미국 집회에서는 91년 9월 뉴욕 센트럴파크 집회로 25만명이 모였다.

2007년 아내와 사별(死別)의 아픔을 겪기도 했으며, 자택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온라인 목회 상담 사역을 펼쳤다. 그는 20년 가까이 파킨슨병에 시달렸으며, 최근에는 기관지염, 폐렴 등으로 힘든 만년을 보냈다. 1994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 장례식에서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오고, 우리 모두를 평등하게 만든다”고 말한 것과 같이 그도 자연스러운 노쇠현상을 겪으면서 죽음을 맞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애도 성명을 통해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지난 세기 가장 위대한 인물이자 미국의 영웅이었다”며 “그가 ‘하나님의 대사’(God’s Ambassador)라는 사실은 그가 남긴 삶의 족적(足跡)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100세가 되는 올해 9월 7일 ‘백수(百壽)잔치’를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 하나님 나라에서 열기 위해 소천하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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