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혹은 종교의 독재가 억압한 표현의 자유와 만평가들의 비극
[아시아엔=아시라프 달리 아시아기자협회 회장] 나지 알-알리는 아랍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만평가 중 하나다. 그의 작품들은 거의 대부분의 아랍권 출판사들을 통해 출판됐다. 그러나 33년전, 그는 살해위협을 받고 쿠웨이트에서 런던으로 피신했다. 그리고 3년후, 알리는 런던의 거리에서 총살당했다.
수십 년 지난 현재까지 용의자는 체포되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 경찰은 수사를 재개했다. 생전 알리는 팔레스타인 독재 정권을 비판한 적이 있으며 이에 불편함을 느낀 팔레스타인 측이 그를 살해했다는 심증은 있으나, 이를 입증할 확증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팔레스타인 피난민 알리는 ‘권위의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들은 그래피티, 신문 등을 독자들과 만났다. 특히 그는 넝마를 걸친 맨발의 피난민 어린이 ‘한발라’를 통해 전세계의 비극을 독자들에 전해왔다. 일찍이 알리는 “만화 속 캐릭터는 어릴 적 도망쳐 나온 팔레스타인 나사렛 부근의 작은 마을에서 보냈던 유년기를 상징한다”고 밝힌 바 있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자 그를 포함한 수많은 팔레스타인들은 피난길에 올랐으며, 이는 ‘나크바’(대참사)라 불리는 사건으로 인류사에 남아있다.
1985년에 나지 알- 알리는 쿠웨이트 <알-아라비>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한달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달라의 나이는 내가 팔레스타인을 떠났을 때의 나이와 같다. 즉 내 시간은 그때에 멈춰있다고 할 수 있다. 한달라는 내가 나태해지거나 의무를 소홀히 할 때 내 영혼이 추락하는 것을 지켜주는 존재다. 이 아이는 내 신체의 일부에서 탄생한 존재와도 같다. 이와 동시에 한달라는 팔레스타인을 가리키는 나침반이기도 하다. 지리적인 위치가 아닌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의 팔레스타인 말이다. 이집트, 베트남, 혹은 남아프리카의 어디에 있든, 이 아이는 언제나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상징한다.”
여기 또다른 만평가가 있다. 그는 다행히 생을 마감하진 않았으나, 작가의 생명과도 같은 손가락들이 부러져는 비극을 겪었다. 사고 당시 50대 후반이었던 페르잣은 아랍에서 가장 유명한 만평가 중 하나였다. 그는 1956년 시리아 북부 하마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 거주하고 있다. 페르잣은 시리아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의 잔혹함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이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들은 시리아뿐만 아니라, 아랍, 서구의 여러 매체들을 통해 세상과 만났다. 프랑스의 <르몽드>까지 주목한 그는 시리아, 불가리아, 네덜란드 등 여러 국제대회 수상경력도 보유하고 있다.
최근 페르잣은 <알-아라비아> TV와의 인터뷰에서 “아사드가 권력을 잡기 전, 한 전시회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내게 ‘당신의 작품은 금지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거짓이었다. 아사드 정권이 들어서자 내 작품 역시 검열 대상에 올랐으며, 작품을 출판해줄 곳들이 사라져 갔다”고 밝혔다.
아사드 정권의 가장 야심 찬 프로젝트 중 하나는 2003년 폐간된 풍자 전지 <알-도마리>(빛을 밝히는 사람) 사건이었다. 폐간된 이유는 간단하다. 이 매체가 정부의 부정부패를 거침없이 다뤘기 때문이다. 이 신문은 창간 당시 5만부가 매진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페르잣도 한 인터뷰에서 이 사건에 대해 “<알-도마리>가 정부의 공갈협박으로 인해 폐간됐다”고 밝혔다.
독재자는 비단 대통령 궁에 앉아 있는 사람뿐만이 아니다. 현재 일부 종교지도자들은 (정치적)독재자들보다 위험한 인물들로 떠오르고 있다. 정치적 혹은 종교적으로 의견을 달리한다고 해서 만평가들의 생명을 앗아갈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정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를 금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광신도들은 언제든 그들에 반하는 세력을 살해할 준비가 되어 있다. AK-47 소총을 들고 <샤를리 에브도>에 쳐들어가 직원들을 살해한 두 명의 괴한이 그랬다.
당시 희생자 중 한명인 스테판 샤르보니에(샤르브)는 이 잡지의 만평가이자 편집장이었다. 그는 종교부터 페미니즘까지 그 모든 것을 과감하게 풍자했다. <샤를리 에브도>는 ‘표현의 자유’를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겼으나, 그로 인해 가장 값비싼 대가를 치른 것이다. “굴복하느니 죽는 것이 낫다.” <샤를리 에브도> 편집장이 최후의 순간에 남긴 말이다.
이는 ‘표현의 자유’가 없는 사회가 빚어낸 비극이다. 이들에겐 표현은커녕 웃을 권리조차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회의 병든 영혼들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향한 증오심을 키워가며 언제라도 반대파를 제거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정치적 또는 종교적 독재가 횡행하는 곳에선 최악의 악몽이 곧 현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