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국가 형성부터 ‘아랍의 봄’까지···중동을 휩쓴 네 번의 도미노효과

중동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상처를 받은 곳 중 하나다. 서구의 식민지배를 받던 국가들은 2차대전 이후 독립을 이뤘지만 민중들의 삶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또한 일부 국가들은 최근 몇 년간 의 전쟁과 민주화 과정에서 많은 피 흘리기도 했다. 이 모든 문제는 어디서 시작됐는가? 중동에서 나고 자란 아시라프 달리 아시아기자협회장이 중동을 휩쓴 네 차례의 도미노효과들을 짚어본다. -편집자

[아시아엔=아시라프 달리 아시아기자협회 회장] 20세기 초중반까지 영국, 프랑스, 소비에트 연방 등은 아라비아 반도의 일부 국가들을 제외한 대다수 중동 국가들을 점거하며 지역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그러나 2차대전을 전후로 강대국들이 철수하며 1943년 레바논, 1946년 시리아, 1947년 요르단과 이라크, 이집트가 자주권을 얻거나 독립했다. 이 과정을 중동 정세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최초의 도미노효과라 볼 수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물결도 밀려왔다. 북아프리카 아랍국가들이 유럽 강대국들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났고, 이스라엘이 건국했다. 또한 석유산업의 중요성이 확대되며 중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2차대전 이후 새롭게 떠오른 강대국 미국은 1950년대 들어 석유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중동에서의 영향력도 확대해 나갔다. 미국은 중동의 정세 안정에 기여한 측면도 있지만, 반발세력도 적지 않았다. 결국 1954년 이집트, 1963년 시리아, 1968년 이라크, 1969년 리비아에서 차례로 반미 정권이 들어섰는데, 이를 세 번째 도미노효과라 할 수 있다. 이때 형성된 중동국가들의 체제는 약 반세기 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민주화와 인권신장은 중동과는 다른 세상의 얘기였다.

50여년이 흐른 2010년 말,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은 중동의 정치지형도를 바꿨다. 당시 퍼지기 시작했던 소셜미디어를 매개로 더욱 확산된 아랍의 봄은 특히 이집트, 예멘, 시리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민주주의가 중동 전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아랍의 봄이 진행되는 동안 종교 집단의 지배력이 확대됐고, 이는 오히려 역내 민주주의 발전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오늘날의 중동은 도미노 블록들이 쓰러지며 파생된 결과들과 직면하고 있다. 지금도 중동 각지에선 크고 작은 분쟁들이 일어 나고 있다. 이러한 국가들이 독립 주권, 인권, 정의, 민주주의, 경제적인 안정을 바라긴 힘들다. 첫 단추는 어디서부터 잘못 꿰였으며,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발견하기 위해선 수십 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중동국가들은 2차대대전 이후 서구 열강들로부터 독립했지만 국력 기반이 약했다. 또한 외세가 차지하고 있던 권력을 되찾아 온 것은 맞지만 이를 새로운 군부집단이 대체해 오랜 세월 특권을 누려왔다. 일반 국민들의 권리는 뒷전이었다.

민주주의의 발전 만이 국민들의 권리와 의무를 균등하게 재분배할 수 있지만, 종교세력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종교의 논리가 아닌 인류의 윤리에 따라 접근해야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종교는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 아니라 이들이 탄생한 모스크와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오직 이해관계에 따라 중동에 개입하려는 서방도 문제다. 리비아, 예만, 이라크, 시리아 등 중동국가들이 붕괴되고 있지만 서방국가들은 스위스 제네바 협상테이블에서 중동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수많은 생명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고, 죽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이들로 난민캠프가 붐비고 있다. 하지만 국제기구들은 여전히 탁상공론을 벌이고 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며 아랍권은 또 한차례 폭풍우를 맞이했다. 이는 중동에 거센 피바람을 일으킬 극단주의 세력에 명분을 주는 행동에 불과하다. 지역의 판도를 흔드는 도미노효과에 중동이 신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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