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오승환이 말하는 곰팡이가 남긴 아름다움 혹은 불쾌함
[아시아엔=알레산드라 보나노미 기자] 사진작가 오승환(Tonio Oh)은 미국 뉴욕의 헌터 칼리지에서 영화학을 공부하다 사진에 대한 열정을 깨달았다고 한다. 오승환은 단순히 피사체만 촬영하는 사진작가는 아니다. 그는 사회관습에 저항하는 작품들을 통해서 낙관적이기만 한 사회통념, 상업성만을 추구하는 이미지들을 비판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그의 작품들은 과학, 철학, 문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는 한국은 물론 이탈리아, 영국, 벨기에, 태국 등에서 해외에서도 여러 차례 전시회를 열었으며, 오는 10월 파리에서 개인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청와대 부근의 한 바에서 사진작가 오승환을 만났다.
사진작가로서 작품관을 설명해달라.
“2010년부터 과학적인 기법을 응용해 작업하기 시작했다.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 법칙)을 공부하면서 에너지의 흐름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석탄을 태우면 가스가 증발한다. 다 태우고 나면 재만 남고, 재는 다시 석탄이 될 수 없다. 매우 원론적이지만 큰 의미로 다가왔다. 모든 물질은 우리가 속한 시공간 차원에서 붕괴된다. 좀 더 쉽게 풀이하면 ‘생명을 포함한 모든 물질은 예외 없이 비영속적이다’라는 것이다. 이 법칙에 빠져들어 ‘붕괴된 찰나의 아름다움’을 작품에 담기로 결정했다.
어떻게 구체화 할지 고민하던 중, BBC의 필름저장소가 곰팡이균에 노출됐다는 기사를 접했다. 필름이 손상됐다는 것은 사진가들에게 재앙이나 다름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곰팡이균에 오염된 이미지들이 너무나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결심했다. 한번 해보자고.
작업 공정은 인내를 필요로 한다. 아날로그 카메라로 찍은 인물 사진 필름을 현상한 다음, 곰팡이들이 번식할 수 있는 습한 환경을 조성해 필름을 노출시켰다. 그리고 오랜 시간 기다렸다. 한 작품이 탄생될 때까지 짧으면 반년 길면 수년이 걸렸다. 환경은 조성할 수 있지만, 그 결과물까진 내 마음대로 만들진 못한다. 작품 컬렉션을 만들기 위해 백 명 이상을 촬영했는데, 한 명 당 백 번 이상은 촬영했다. 그 중 온전한 작품으로 완성된 게 15점이다.”
요샌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
“‘비영속성’(Impermanence)을 주제로 한 작품들은 마무리했고, 작년부터 사람의 나체를 이전과 동일한 기법으로 작업하고 있다. 누드 사진을 촬영하게 된 계기가 있다. 물론 내 작품관과 철학이 반영돼 있다.
이미 알겠지만, 내 작품들은 관습 따위에 전혀 얽매이지 않는다. 왜냐. 사람의 ‘일반적인 사진’이 아니니까. 작가의 의도를 반영한 ‘왜곡된 작품’들이다. 나는 긍정적인 부분만 조망하는 ‘사회의 기준’에 도전해왔다. 이 사회는 ‘우리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고, 우리가 이루고 싶은 꿈은 뭐든지 이룰 수 있다’고 달콤하게 속삭이는 듯 하다. 그러나 우리가 좌절하게 됐을 때의 그 상실감은? 삶을 긍정적으로 영위할 수 있겠나. 나는 ‘긍정의 허상’에 도전하는 예술을 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잘 바라보지 않는 부정적인 관점을 통해서.
내 사진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 불쾌감과 함께 떠오르는 감정들은 일종의 비평이며, 사람의 철학적 사유를 이끌어내는 관문(Gateway)이 된다. 인간은 비판하고 논쟁할 때, 철학적 사유에 근거해 사고하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가들은 ‘에로스’(Eros, 사랑)를 철학의 한 형태라고 여겼다. 그리고 우리는 에로스를 통해 ‘인간의 존재’를 이해한다. 그래서 나는 에로틱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나체를 통해서 에로스를 탐구하기로 결심했다.
작품을 접하며 다소 불편할 수 있는 감정을 느낀 사람들이 철학적 사고를 거쳐 이를 비평하고, 작품의 주제가 된 에로스의 철학적 의미에 대해서도 한번쯤 떠올려 본다면 좋겠다.”
한국에서 아티스트로 살아가는 건 어떤가?
“좋은 점은 하나 있다. 갤러리들이 많아서 작품 전시할 곳이 많다는 것. 그러나 갤러리 대다수가 프로페셔널 하진 않다. 게다가 아티스트들은 생계로 고통 받는다. 우리가 예술과 문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정부에 소리 높여야 하는 이유다.”
아티스트로서 가장 힘든 점은?
“생계유지가 가장 큰 도전이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겪는 공통적인 현상이라 생각한다. 아티스트들은 늘상 어떻게 집세 내고, 어떻게 작업실 임대료 낼지 고민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그보다 더 큰 골치거리가 있다. 와이프가 눈치 없다고 그만 구박했으면 좋겠다. 진짜 걱정거리다(웃음). 아티스트로 힘겹게 살아가며 곰팡이랑 작업하는 거는 그 다음 문제다(웃음).”
한국인들이 예술에 관심 갖는다고 생각하나?
“너무 난감한 질문인데(웃음). 지속적인 관심은 늘어나서 감사하지만, 지난 10년간 많은 것들이 역행했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한국인들이 예술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사회는 물질만능주의에 빠져있다. 애석하게도 한국인들은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예술작품들을 즐길 시간과 여유가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에서 사진작가 또는 예술가로 활동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당신이 생계 문제로 투쟁하길 원한다면 정말 완벽한 직업이다(웃음). 이 분야에서 활동하려면 무엇보다 독서를 많이 하길 바란다.”
외국에서 전시회를 여러 차례 가졌다.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졌나?
“밀라노 총영사 전시의 경우 사전에 계획하고 작품을 내건 것은 아니었다. 당시 함께 일하던 이탈리아의 한 갤러리(지금도 협업하고 있다)가 밀라노 아트페에어 참가했고, 그 곳을 방문한 한국 측 관계자가 내 작품을 마음에 들어 했다. 그 후, 그 관계자가 영사관 박물관에서 전시회를 열기를 제안했다. 사실 나는 작품을 스스로 홍보하는 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온라인 상의 아트 플랫폼을 발견해 작품들을 올렸고, 갤러리들로부터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내 작품을 해외에서 알릴 수 있게 된 계기다.”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은?
“많은 사람들의 영향을 받았지만 춘추시대의 사상가 노자와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 이 두 사람은 꼭 언급하고 싶다. 그 밖에 이탈리아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프랑스의 장뤼크 고다르, 스페인의 루이스 브뉘엘, 러시아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등 영화감독으로부터도 영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