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진가’ 박상현 비바터치담 대표 “사진가의 경험은 사진으로 기억된다”
[아시아엔=박호경 기자·사진 비바터치담 제공] 웨딩사진 업계의 명품 ‘샤넬’이라 불리는 ‘비바터치담’의 박상현 대표.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샤넬’과는 거리가 멀다. ‘동네사진가’ ‘동네이장’으로 불리는 사진작가 박상현. 회사는 샤넬인데 대표는 동네이장이라니. 묘한 의문이 풀리지 않은 채 인터뷰를 시작했다.
덥수룩한 수염에 반바지의 편한 차림으로 나타난 박상현 대표는 동네형 포스를 뽐내며 이야기를 풀어갔다.
웨딩사진 업계 독보적 존재
비바터치담은 한국 웨딩사진 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그만큼 타업체보다 가격이 비싼 편인데도 박 대표의 스케줄은 사진 촬영으로 가득 차있다.
“365일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겠어요. 보통 하루는 촬영 준비를 하고, 하루는 사진촬영을 하는 식으로 일정을 소화합니다. 이렇게 계속 반복이죠. 당연한 말이지만 사진 찍을 때가 제일 행복합니다.”
박상현 대표는 바쁜 와중에 상명대에서 사진 강의도 하고 있다. 그리고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뉴욕은 사진가들에게 선망의 장소이자 활동하기 가장 좋은 환경을 가진 곳이에요. 그래서 유명 사진가들이 주로 활동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죠.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정보를 얻고 교감을 하면서 회사와 제 사진을 업그레이드할 시간을 가집니다.”
스튜디오 사진 촬영이 주류였던 웨딩사진 시장에 예식 현장촬영을 도입하고 발전시킨 것이 박상현 대표다. 현재 국내 웨딩사진 시장은 예식 현장촬영 시장이 스튜디오 시장을 앞서나가고 있다.
“타 업체와 차별화 된 부분이 있다면 관계성입니다. 비바터치담은 클라이언트 당사자가 직접 사진 작가와 미팅하지 않으면 계약을 하지 않아요. 중간 에이전시도 없습니다. 연예인이든 정재계 인사든 직접 오셔야 하는건 똑같아요. 일생에 단 한번뿐인 결혼식 사진인데 클라이언트와 사진작가의 교감이 없으면 좋은 사진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부 아버지의 손
그도 한때는 스튜디오 촬영 위주로 돈 벌기 위한 사진만을 찍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 2011년 한커플의 결혼식 사진을 찍던 중 잊지 못할 일을 겪으며 자신의 사진 철학과 회사의 방침을 바꿨다.
“사회자가 신랑입장을 외쳤는데 신랑이 입장하질 않는 겁니다. 사회자가 당황해서 세번을 외쳤는데도 입장하지 않았어요. 신랑이 도망갔나 하는 생각이 들던 찰나였습니다.”
우당탕 소리와 함께 뒤늦게 신랑이 입장을 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닌 등이 굽은 한 남자의 손을 잡고 당당히 입장하고 있었다.
“신부는 당시 고위 공직자의 자제였고 신랑 아버님은 환경미화원을 하시던 분이었어요. 신랑은 자신을 어렵게 길러주신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게 꿈이었지만 신랑 아버지는 신부측에 누가 될까 그렇게 할 수 없다며 옥신각신 한 거였죠.”
신랑과 신랑 아버지가 동시 입장을 하는 순간 박상현 대표는 흘러 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마구 흘렀어요. 눈물이 나니 제대로 보고 찍지 못했죠. 마음이 닿는 대로 셔터를 눌렀습니다. 그런데 너무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진이 나왔어요. 그때서야 알았어요. 사진은 절대 기술이 아니라 마음으로 찍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죠.”
‘비디오가게’ 감성 품은 ‘동네사진가’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필름카메라 찍는 법을 가르쳐 주면서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박상현 대표. 사실 그는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게 200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교회 전도사 시절입니다. 교회 형제자매들을 찍어주면서 시작됐죠. 인물 사진 찍는 게 너무 좋고 즐겁더라구요.”
박작가는 학교에서 사진을 공부한 적이 없다. 그는 오히려 서반아어(스페인어) 전공에 영어, 스페인어, 이태리어 등 4개국어를 하는 언어전문가에 가까웠다.
“사진은 독학으로 배웠어요. 카메라와 늘 함께했습니다. 셔터를 누를 때만큼 행복한 게 없더라구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면 시계나 반지 같은 액세서리를 껴본 적이 없다는 거죠. 카메라를 쥐는 일이 제 천직이기 때문이죠.”
어릴 적 매주 토요일 아버지와 함께 가던 비디오가게가 있었다고 했다. 그 곳에서 비디오를 빌려 아버지와 함께 영화를 봤던 게 박 작가의 가슴 속에 남아있는 행복한 추억이다.
“그때 봤던 영화들이 지금도 제 감성에 자리잡고 있어요. 대부분 가슴 따뜻한 영화였죠. 아버지와 함께 가던 비디오가게 이름이 ‘동네비디오’ 였습니다. 그 따뜻한 감성을 사진에 담고 싶어 ‘동네사진가’라는 애칭을 지었어요. 이제는 주위 사람들이 동네이장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요.”(웃음)
3년 전 그에게 큰 슬픔이 찾아왔다. 아버지가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던 것.
“그 일을 겪고 처음엔 사진을 그만둘 생각까지도 했어요. 그런데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를 생각하니 그런 생각을 한 게 부끄러워 졌습니다. 아버지가 심어준 따뜻한 감성으로 화려한 사진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담는 사진을 찍자고 결심했어요. 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찍는 동네사진가가 되기로 결심했고, 그렇게 제 자신이 변했습니다. 저를 믿어준 클라이언트들도 제가 슬픔을 극복하는데 큰 힘이 됐습니다.”
박상현 작가는 6권의 책을 낼 만큼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한다. 동네사진가 이전에 포토저널리스트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그는 멕시코의 유명한 휴양도시인 칸쿤을 주제로 <칸쿤을 담다>라는 책을 쓰고 있다고 했다.
칸쿤, 사랑하는 아버지와의 추억
“칸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함께 다녀온 곳입니다. 개인적으론 너무나 특별한 곳이죠. 작년에 씨엔블루 멤버 이종현 군과 칸쿤을 다시 다녀왔어요. 아버지가 투병하실 때 가장 좋아했던 드라마가 <신사의 품격>인데 그 때 주제가 ‘내 사랑아’를 부른 게 씨엔블루 종현이에요. 아버지와 함께 있던 장소에서 그 노래를 종현이가 다시 불러 주는데… 정말 펑펑 울었습니다.”
동네사진가 박상현을 표현하는 문장이 하나 있다. 그가 직접 쓴 문구다.
‘사진가의 경험은 사진으로 기억됩니다’
“전 사진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사진은 다양한 경험 하나하나가 ‘나’라는 매개체를 통해 표현되는 또 다른 언어에요. 사진은 국가, 종교, 언어를 뛰어넘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진작가는 많은 경험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의 인생담도 듣고 여행도 해보면서 자신의 색깔을 만들어 가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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