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성의 날, 파키스탄 여성 인권 현주소는?···70% 가정폭력 경험, 보호법은 이슬람위 반대로 좌초 위기

10대 여성 중 절반 이상 “가정폭력 정당하다” 충격···명예살인도 여전

[아시아엔=김아람 기자] 3월8일은 UN이 지정한 ‘세계 여성의 날’이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인권을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2월초 유엔인구기금(UNFPA)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파키스탄 10대 여성응답자 중 53%가 “가정폭력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안겼다. 또한 보고서는 현지 15~19세 소녀 가운데 30% 이상이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2011 톰슨 로이터 설문조사도 파키스탄을 ‘여성이 살기 가장 위험한 3번째 국가’로 뽑은 바 있다.

파키스탄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전체 여성 중 약 70%가 가정폭력을 겪었으며, 현지에선 지금도 명예살인으로 사망하는 여성이 매년 수백명에 달한다. 지난 88회 아카데미에선 파키스탄 명예살인을 고발한 <강가의 소녀>가 단편다큐멘터리 부문에서 수상하며 세계인의 관심을 환기시켰으나 아직 부족하다.

이에 파키스탄 펀자브주(州)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을 위한 법안 마련에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이와 관련, 최근 파키스탄에선 24시간 학대신고서비스 운영, 응급처치, 심리상담, 쉼터마련 등의 내용을 담은 학대방지법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해당 법이 시행될 경우, 가정폭력이 의심되는 가정에 경찰과 사회복지사가 함께 방문해 남편의 동의 없이 아내를 피신시킬 수 있으며 상황에 따라선 대신 남편을 격리조치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슬람 단체들이 “해당 법은 이슬람 율법에 반한다”는 이유로 반발하고 있어 법 시행에 제동이 걸렸다.

무함마드 칸 세라니 이슬람이데올로기위원회 위원장은 3일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성을 집 밖으로 나가도록 조장하는 법안은 더욱 큰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며 “해당 법을 받아들일 수 없다. 법을 시행하기 전 위원회의 공식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파키스탄은 헌법에 ‘이슬람 국가’로 명시돼있다. 이에 따라 입법자가 종교지도자 역할을 하는 이슬람이데올로기의원회에 새로운 법안 시행 전 조언을 구하는 것이 관례처럼 행해지고 있다.

이들의 의견이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슬람 국가인 만큼 종교 지도자들의 입김이 세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과거 위원회의 의견을 무시했던 의원들은 ‘신성모독’이란 죄목 하에 고소당하거나 협박당하기도 했다. 현지에서 ‘신성모독’은 최고 사형에 이르는 등 엄중한 처벌을 받는 중죄다.

세라니 이슬람이데올로기위원회 의원장은 “파키스탄 여성의 권익은 헌법 제31조, 제35조에 따라 이미 보호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31조 파키스탄 국민은 이슬람 율법에 근거한 삶을 영위한다
제35조 파키스탄 정부는 국민의 결혼생활과 가정뿐 아니라 어머니와 자녀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세라니 위원장이 이같은 헌법 하에 “여성들은 충분히 보호받고 있다”며 “여성들이 학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정을 내팽개치는 일은 율법상 있어선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또한 “무슬림 남성들은 교리에 따라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해선 안됨을 잘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2월 말 조흐라 유수프 파키스탄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최근 통과된 법안은 폭력으로 인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여성들을 보다 포괄적으로 보호해 줄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이번을 계기로 연방 차원에서도 파키스탄 여성들의 삶을 보호할 수 있는 법안이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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