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준 ECOSOC 의장 심층인터뷰②] “40년전 한국에 자신감 준 새마을운동, 21세기 개도국의 롤모델”

[아시아엔=라드와 아시라프, 손하윤 기자] 2014년 12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전세계를 감동시킨 연설이 나왔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북한 주민들은 아무나(anybodies)가 아닙니다.” 이 연설의 주인공 오준 의장은 한국은 물론 전세계 젊은 세대들로부터 가장 존경 받는 외교관이 됐다. 최근 그는 한국인 최초로 유엔경제사회이사회(UN ECOSOC) 의장직을 맡으며, 또 한번 화제가 됐다. <매거진 N>의 ‘젊은 피’ 라드와 아시라프 기자와 손하윤 인턴기자가 뉴욕 유엔본부의 오준 의장과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매거진 N>은 ECOSOC 의장으로서의 계획과 30년 경력의 베테랑 외교관으로서 독자들께 들려주는 진솔한 얘기를 9월호에 이어 싣는다. -편집자

한국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룩했습니다. 한국을 롤모델로 삼는 개도국들이 배울만한 점이 있다면요?
“한국은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발전한 독특한 역사를 지녔습니다. 또한 빠른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뤄냈습니다. 그러나 각 개도국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이 모든 국가의 발전모델이 되긴 힘들다고 봅니다. 대신 한국의 사례를 통해 두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번째 교훈은 ‘인적자원’의 중요성입니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한국은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한 발전전략을 중심축으로 세웠습니다. 젊은 인력들에 대한 교육과 훈련도 강조해 이를 극대화시켰죠.
둘째, ‘좋은 정부’(good governance)의 중요성입니다. 이는 지역균등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1970년대 한국은 ‘새마을운동’(New Community Movement)을 통해 전국민들에 비전 있는 리더십을 제시했고, ‘할 수 있다’라는 의식을 고취시켰습니다.
물론 한국도 아직 선진국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에 있으며, 여전히 많은 문제들과 직면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소득격차, 사회적 불평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경제성장을 통해 얻은 ‘결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을 예로 드시며 개발을 통해 A도시에서 B도시로 변모한 ‘두 도시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 여타 ‘아시아의 호랑이’ 국가들은 유사한 변화를 거쳐왔지만, 아직 많은 개도국들이 이러한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정 국가에 치우치는 것이 아닌, 전세계적인 경제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선진국들과 개도국들이 어떻게 협력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두 도시 이야기의 핵심은 개발이 된 B도시의 사람이 반드시 A도시의 사람보다 행복하다는 보장은 없지만, 최소한 굶주림이나 질병으로부터의 고통이 해소되지 않고서는 인간이 행복을 느끼기 더욱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이치를 깨달았다고 우리가 삶의 전반적인 진리를 깨달았다고 하긴 어렵지만, 가난을 실제로 경험하면서 얻은 ‘실존적 지혜’(existential imperative)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국제 개발협력의 논의는 이제 단순히 개도국의 경제 발전을 촉진한다는 단편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개도국과 선진국 모두를 아우르는 인류 공동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인류 활동의 거의 모든 분야라고 할 수 있는 경제, 사회, 환경 분야를 아우르는 ‘포괄적이며 지속가능한 개발’이 인류의 새로운 개발 목표인 것이죠. 이러한 목표를 추구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인간의 존엄성을 함께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미래를 만들어야 합니다. 전통적인 원조를 중심으로 한 개발협력에 더하여, 개도국 자체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협력, 민간분야의 참여 확대, 국가간 기술협력체제 도입 등 광범위한 국제협력을 구축해 나가야 합니다.”

외교관이 되신 계기는 무엇입니까?
“돌아가신 부친께서도 한 때 LA주재 영사로 근무하신 외교관이었다는 점, 제가 어릴 때부터 외국어와 국제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는 점 등이 작용했던 것 같아요. 구체적인 계기라면 대학 졸업반 때 언론계로 진출하려고 기자 시험을 볼 생각이었는데, 외무고시 공부를 하면 외무고시에 합격하지 않더라도 기자 시험에 도움이 된다는 친구의 권유로 외무고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외무고시에 합격하는 바람에 기자 시험을 칠 기회는 없어졌죠.”

지금까지 유엔에서 일하시면서 가장 어려웠던 과제는 무엇입니까?
“유엔과 관련된 일을 해 온지 3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전세계도 많이 달라졌지만, 우리나라도 정말 큰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1980년대 유엔대표부 근무를 시작했을 때는 우리나라가 아직 유엔 회원국도 아니었고, 경제, 정치, 사회적으로도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기에는 거리가 먼 상황이었죠. 그러나 1991년 유엔회원국이 됐고, 경제.사회적 성장과 정치적 민주화를 이룩하면서 우리의 국력이 급속도로 강해졌고, 이에 따라 유엔 내에서 점점 더 큰 역할을 맡게 됐습니다. 유엔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진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안보리 이사국을 두차례 역임했고, 반기문 사무총장을 배출하였을 정도니까요.
이같은 국력의 신장이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과 인내, 그리고 고통의 결실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유엔외교가 여기까지 성장해 온 최고의 공은 당연히 우리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 외교관들은 국가의 성장에 발맞춰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역할이 더 커질 수 있도록 몸소 뛰어다녔죠. 유엔 외교에서 제가 경험했던 모든 어려움은 결국 갈수록 높아지는 우리의 국가적 위상과 변화하는 국제질서 사이에서 접점을 찾는 과정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은퇴 후 계획이 있으신지요?
“외교관으로 은퇴한 후에는 사회를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공무원’으로서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과, 공무원이 아닌 ‘보통의 존재’로 사회를 위해서 일하는 것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국가는 우리 인류가 만든 가장 강력한 단위조직입니다. 하지만 민주국가에서 국가를 움직이는 것은 사회의 구성원인 국민들이니까, 사회를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으면 국가도 자연스레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할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지만, 무슨 일을 하든지, 외교관으로서 경험한 것을 우리 젊은 세대와 공유해서 그들이 저보다 훨씬 더 훌륭한 국제적인 역할을 하는데 도움을 주는 활동을 하고 싶어요.”

외교관 또는 국제공무원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 드리겠습니다.
“우리 젊은 세대는 앞으로 외교관이나 국제공무원은 물론이고, 그밖에 무슨 일을 하든지 전세계를 염두에 두고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과 같이 세계화된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죠. 예를 들어 자전거를 제작하는 사람도 그냥 우리나라의 자전거 제조업체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고 전세계 업체들과 경쟁하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세계화 시대에 가장 중요한 덕목은 ‘열린 마음(open mind)’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과 다른 인종, 문화, 종교,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접하면 마음을 열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중요한 것이죠. 쉬운 것 같지만, 인간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자기와 다른 것을 경계하고 피하기 쉽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열린 마음과 다양한 환경 속에서 자신을 성숙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외교관이 되려는 학생들에게는 더욱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른 국가의 언어나 국제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꾸준히 공부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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