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9일] 지구촌의 ‘악의 축’ 명단 발표한 미국

2006년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 별세

2006년 1월29일(현지 시각) 미국에서 한국 출신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가 별세했다. 향년 74세. 백남준이 지구촌 사람들에게 흥미롭게 소개된 것은 지난 1984년 전 세계 동시 생중계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통해서다. 그 이전에 백남준은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고, 남들이 하지 않는 ‘미친 짓’과 기행을 일삼고 초라한 행색을 한 전위예술가로만 막연히 알려졌을 정도였다.

1932년 7월20일 서울에서 태어난 백씨는 경기중·고를 나와 일본 도쿄대에서 미학과 음악사, 미술사를 전공했다. 1958년 독일에서 음악사를 공부했고, 1963년 독일에서 연 첫 개인전을 열었다. 백남준은 이 전시회에서 3대의 비디오와 13대의 TV, 피가 뚝뚝 떨어지는 갓 잡은 황소머리를 전시했다. 전시회 개막일에 ‘플럭서스(Fluxus) 운동’의 창시자 요제프 보이스가 난데없이 도끼를 들고 나타나 전시 중인 피아노 한대를 부숴버리며 커다란 관심을 끌었다.

‘플럭서스’는 미술사조라기 보다는 일종의 정신적 심리상태로, 문화적 변형 또는 일종의 작업형태로 전개된 ‘비(非)예술적 행위작업’이다. 1960년대 초 독일에서 시작돼 뉴욕에서 국제적으로 확산된 이벤트 중심의 반(反)예술적 아방가르드 운동이다. 어원은 유출, 흐름이라는 뜻의 라틴어 플럭스(flux)다. 기존의 문화 및 예술의 상투성, 진부성에서 탈피하겠다는 의도를 지녔다. 상이한 매체를 결합시킨 통합 예술개념을 탄생시켰다.

?2002년 ‘악의 축’들이 결정되다

2002년 1월29일 당시 미국의 대통령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연례 일반교서를 발표하면서 “테러를 지원하는 정권(regimes that sponsor terror)들은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밝혔다. 이라크와 이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부시가 선정한 ‘악의 축’들이었다. 같은해 5월 당시 국무차관이던 존 볼튼은 부시가 언급한 악의 축 국가들과 더불어 리비아와 시리아, 쿠바도 ‘악의 축’의 반열에 올렸다. 그 뒤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은 미얀마와 벨라루스, 짐바브웨 등 3개 나라를 ‘폭정의 전초기지’로 지목했다.

미국의 지도자들이 언급한 ‘악의 축’들 대부분에 여전히 전운이 감도는 것은 이들 국가들을 장악한 ‘악마’들 때문인가, 이런 ‘악마’들과 성전(聖戰)을 일생일대의 임무로 여기고 있는 천사(Angel)들 때문인가.


2001년 印尼 압둘라만 와히드 대통령 사임 촉구 대규모 시위

2001년 1월29일 인도네시아 국회의사당 앞에 수천 명의 학생들이 압둘라만 와히드 대통령의 사임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인도네시아 최초 직선 대통령이었지만, 부패 스캔들에 휩싸인 데다 집권 후 경제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고, 동티모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해 인기가 바닥권으로 추락한 상태였다.

와히드 대통령은 그러나 “물러나라”는 국민들의 압력을 못 본 채 버텼다. 2달 뒤에는 시위대에 노동자들까지 가세, 1만여 명으로 불어나 이번에는 대통령궁을 에워싸고 와히드 대통령의 사임을 촉구했다. 와히드가 “사임 불가” 명분으로 삼은 것은 ‘수마타르섬의 아체와 이리안자야 등지가 각기 독립을 선포할 것’이라는 점.

그러나 정정불안 등으로 인도네시아 루피아화가 급락하는 등 경제위기가 최고조에 이르자, 결국 2001년 탄핵으로 물러나면서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부통령에게 자리를 물려줬다.이슬람 단체인 나흐타둘 우라마의 대표이자 국민 각성당(PKB)의 창설자다. 수하르토 대통령 집권 시절 수하르토 독재 타도 운동을 했다. 수하르토의 사임 후 1998년 인도네시아 역사상 최초로 민주적인 직접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이 됐다.

2009년 12월30일 지병으로 사망했다. 그의 장례는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6~7대 현 대통령이 주관한 국장이 치러졌다. 와히드는 무능력과 부패로 물러났지만 적잖은 인도네시아 국민들이 ‘사상 최초의 직선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그를 추모하기도 한다.

1996년 이틀 전까지 무려 6번 끝낸 프랑스 “핵실험 이제 그만”

1996년 1월29일 프랑스가 핵실험을 영구적으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대통령은 이날 밤 방송을 통해 “지금까지 실시한 실험을 통해 프랑스는 신뢰할 수 있고 현대적인 방위능력을 지속적으로 보유할 수 있게 됐다”면서 “핵실험의 영구중단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시라크 대통령이 한해 전인 1995년 6월13일 핵실험 재개결정을 발표한 뒤 프랑스는 이날 발표 이틀 전인 1월27일까지 전 세계의 빗발치는 비난을 무릅쓰고 남태평양의 지하 핵실험장에서 모두 6차례의 핵실험을 실시했다.

프랑스 대통령궁은 이날 시라크 발표에 이어 남태평양 비핵지대 조약인 라로통가 조약에 서명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핵실험으로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했다. 프랑스는 제네바에서 당시 진행중이던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에 가입하되 모든 규모의 핵실험을 금지하는 ‘제로옵션’의 채택을 강력 주장했다.

20세기 이후 핵무기를 개발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핵실험 단계를 거쳤다. 핵무기 보유국은 미국과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이스라엘, 파키스탄, 북한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첫 원자폭탄 실험은 1945년 7월16일의 트리니티 실험이었다. 최초 수소폭탄인 아이비 마이크의 실험은 1952년 11월1일 마셜제도의 에네웨타크 환초에서 실시됐다. 가장 큰 폭탄은 1961년 소비에트 연방이 실시한 50메가톤 규모의 차르 봄바 실험이다.

프랑스와 중국을 비롯한 기존의 핵 보유국들이 핵실험을 중단한 1996년 ‘포괄적 핵실험 금지 조약’이 체결됐지만 이 조약에 서명하지 않은 인도와 파키스탄은 1998년까지 핵 실험을 실시했다. 북한은 2006년 1차, 2009년 2차 핵실험까지 마쳤고 2013년 1월 3차 핵실험을 공언했다.

1992년 한국과 우즈베키스탄 수교

1992년 1월29일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은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한국은 이에 앞서 1991년 독립 직후 그해 12월30일 우즈베키스탄을 국가로 승인했다. 우즈베키스탄은 수교 후 1992년 6월 카리모프 당시 대통령이 방한, 양국관계의 긴밀한 협조와 양국관계 증진을 희망했다. 1993년 12월 독자적인 주(住)우즈베키스탄 대사관을 개설했다.

우즈베키스탄에는 고려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소비에트 시대 스탈린의 소수민족 이동정책에 따라 극동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한 고려인은 18만 명 이상이었다. 타쉬켄트와 우즈베키스탄에만 2012년 현재 20만 명 이상이 살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북한과도 공식 외교 관계를 갖고 있다. 북한은 1992년 1월 우즈베키스탄을 독립국가로 승인, 1992년 2월에 수교했고 1993년 상주공관을 개설했다.

1926년 파키스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무하마드 압두스 살람 태어나다

1926년 1월29일은 파키스탄의 이론 물리학자로 1979년 약전자기 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은 무하마드 압두스 살람(1996년 11월21일 사망)이 태어난 날이다.

노벨 물리학상(Nobel Prize in Physics)은 5개 분야의 노벨상 중 하나로, 1년에 한 번 알프레드 노벨의 사망일인 12월10일에 스톡홀름 스웨덴 왕립 과학원에서 수여한다. 노벨 재단이 주관하는 이 상을 수상하는 것은 물리학계에서 최고의 영예로 꼽힌다. 최초 수상자는 1901년 엑스선을 발견한 독일의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에게 수여됐다.

역대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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