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태 기자의 경제편편] 삼성-엘리엇 ‘확전’은 피해야
[아시아엔=차기태 기자]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둘러싸고 엘리엇 매니지먼트와 삼성그룹의 싸움이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다.
삼성이 ‘백기사’인 KCC를 동원해 자사주를 넘기면서 역습하자 엘리엇도 즉각적으로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양측이 강수 대결로 치닫고 있다. 삼성의 역습으로 사태가 정리되는 듯 싶더니 엘리엇도 물러서지 않고 ‘결기’를 보인 것이다.
삼성물산이 지난 11일 자사주 전량(5.76%)을 KCC에 매각함으로써 5.76% 지분의 의결권이 되살아났다. 이로써 삼성 계열사와 이건희 회장(1.37%) 보유 지분 등을 합친 삼성물산의 우호 지분은 13.99%에서 19.75%로 늘어났다. 내달 17일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재천명한 것이다.
삼성물산은 자사주를 팔아 6743억원의 현금까지 손에 쥐게 됐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계획안에 따르면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총액이 1조5천억원을 넘으면 합병이 취소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7천억원 가까운 ‘실탄’을 추가로 확보한 만큼 주식매수청구권 청구 한도액을 넘겨도 합병을 진행시킬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삼성의 자사주 매각은 역습카드로서는 대단히 효과적인 무기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역습당한 엘리엇으로서는 일단 가처분 신청으로 재역습을 가하는 한편 추가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에 따라 엘리엇은 주총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질 우호세력을 결집시키는 ‘정공법’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엘리엇은 현재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는 3대 주주이다. 다음달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을 부결시키려면 참석 지분 3분의 1 이상의 반대를 이끌어내야 한다. 참석률을 70%로 가정하면 23%의 반대표가 필요하다.
이럴 때 엘리엇에 동조할 수 있는 세력은 외국인 주주들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현재 삼성물산의 외국인 지분은 엘리엇을 제외하고 26.63%에 이른다. 이들이 결집하면 결코 무시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
이들 외국인 주주의 처지와 입장이 다양하기에 엘리엇의 깃발 아래 모일 수 있을지 확실하지는 않다. 하지만 삼성이 자사주 매각이라는 카드까지 꺼내들면서 강공자세를 취한 것이
외국인 투자자들을 자극할 가능성도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KCC를 포함한 삼성물산의 국내 우호세력과 엘리엇을 선봉장으로 한 외국인 주주들과의 ‘한판대결’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삼성물산의 자사주 매각이 얼핏 ‘묘수’라고 보이면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 주주들은 설령 이번에 패배하더라도 앞으로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해 예전보다는 더 공세적으로 나올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를테면 삼성전자 등 계열사의 경영에 대한 간섭을 노골적으로 시도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삼성으로서는 앞으로 ‘소신’대로 경영해 나가기가 더 어려워진다.
세간에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결정이 시너지효과를 비롯한 경제적 합리성보다는 이재용의 3세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조치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러나 최근 전개되는 사태를 보면 이재용 체제의 앞날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듯하다.
삼성이 지금까지 겪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어려움이 앞으로 닥칠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까지 든다. 그렇다면 합병이라는 ‘단안’이나 자사주 매각이라는 ‘묘수’가 모두 ‘패착’으로 결말지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작은 승리가 큰 패배로 끝나는 일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삼성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쯤에서 지나친 강공을 자제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당장 무엇보다 외국인 투자자들을 적대세력으로 돌리는 행동을 자제하고, 그들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유익해 보인다.
그런 과정을 통해 그들의 요구 가운데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어려운 것은 적극적으로 설득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용 체제의 안정을 위해서도 그런 노력이 더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외국인 투자자들과의 대결 일변도로 가면 삼성의 경영권 안정도, 안정적인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더 이상 확전은 피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