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태 기자의 고전에세이] 탄호이저와 오디세우스

아이네아스에게 나타난 헤르메스신. 티에폴로 작.
아이네아스에게 나타난 헤르메스신. 티에폴로 작.

[아시아엔=차기태 기자] 19세기 독일의 작곡가 바그너가 작곡한 오페라 <탄호이저>의 주인공 탄호이저는 베누스의 동산에서 환락에 빠져 있었다. 원래 음유시인이며 기사였던 탄호이저는 영주 헤르만의 조카딸 엘리자베트와 사랑을 약속한 사이였다. 그런데 관능의 여신 베누스로부터 유혹을 받아 그녀의 동산에 머무르며서 관능적인 생활에 빠진 것이다. 베누스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라틴어식 이름이다. 영어로는 비너스 여신이라고 불린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연애의 감정과 정욕을 불러일으키는 여신이다.

탄호이저는 그런 베누스 여신의 동산에세 그녀의 무릎에 기대어 누워 있다가 차츰 권태를 느낀다. 그는 이제 지상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제1막에서 탄호이저는 이같은 심경을 테너의 목소리로 힘있게 노래한다.

아, 그러나 나는 죽을 사람,

내게는 엄청난 당신의 사랑,

신이 영원히 즐길 수 있을지라도

나는 운명에 따를 것이오.

쾌락만이 내 마음 속에 중요하지 않고

기쁨 속에서도 나는 고통을 그리워하오.

당신의 나라에서 나는 도망쳐야겠소.

오, 여왕이여, 여신이여! 떠나게 해주오!

반면 메조소프라노가 맡는 베누스는 좀더 기쁨을 나누자며 그를 유혹한다. 그러나 탄호이저는 다시 지상의 세계로 돌아가기로 결단을 내린다. 자신에게 결국 되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베누스의 경고도 무시하고.

탄호이저의 고뇌와 결단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오디세우스나 아이네아스의 경우와 다를 바 없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출전하기 위해 집을 떠난 이후 산전수전을 다 겪은 영웅이었다. 그는 전쟁이 끝나자 전우들과 함께 귀향길에 올랐다. 그러나 항해 도중 전우들을 모두 잃고 ’포도줏빛‘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요정 칼립소의 동굴까지 흘러들어간다.

요정 칼립소는 하늘을 떠받치는 아틀라스의 딸이다. 그녀는 머리를 곱게 땋고 어느 섬의 동굴에 살고 있었다. 그 동굴 주변은 아름답기도 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는 이렇게 묘사돼 있다.

동굴 주위에는 오리나무, 백양나무, 냄새 좋은 삼나무 하며

나물들이 울창하게 자라는 숲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부엉이, 매, 바다에서 일을 보는

혀가 긴 바다오리 같은

긴 날개의 새들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

그 전체가 제비꽃과 샐러리가 만발한

부드러운 풀밭으로 둘러싸여 있어 불사신이라도 그곳을

보게 되면 감탄하고 마음 속으로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제5권

그런데 어느날 그녀의 동굴에 트로이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당도했다.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사랑하게 됐다. 오디세우스는 밤마다 마지못해 ‘원치 않는 남자’로서 그녀에게 사랑의 파트너가 돼주어야 했다. 칼립소는 그럴 때마다 오디세우스에게 영원히 죽지도 않고 늙지도 않게 해주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렇게 하는 사이 7년의 세월이 흘렀다. 오디세우스의 고향 이타케에서는 그의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가 그를 기다렸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 소식을 알아보기 위해 스파르타 등지로 찾아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제우스 신의 전령 헤르메스 신이 칼립소를 방문했다. 헤르메스는 신들의 회의 결과 오디세우스를 고향으로 보내기로 했다고 칼립소에게 ‘통보’했다. 그러나 그를 빨리 풀어주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을 고향으로 보내주겠다며 지옥의 강 스틱스에 대고 맹세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오디세우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되도록 섬에 남아서 자신과 함께 살자고 꼬득인다. 고향에 가기 전에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며 은근히 겁도 준다. 그렇지만 오디세우스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면서.

어떤 분이 또다시 포도줏빛 바다 위에서 나를 난파시키더라도

나는 가슴 속에 고통을 참는 마음을 갖고 있기에 참을 것이오.

나는 이미 너울과 전쟁터에서 많은 것을 겪었고 많은 고생을 했소.

그러니 이들 고난에 이번 고난이 추가될 테면 되라지요.

-호메로스 <오디세이야> 제5권

오디세우스는 이미 마녀 키르케의 섬도 들어갔다가 빠져나온 바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항해 도중 그의 장병들과 함께 아이아이아 섬에 살고 있는 키르케의 궁전에 갔다. 호메로스가 지은 <오디세이아>에 따르면 그곳은 반들반들 깎은 돌로 지은 아름다운 궁전이었다. 그 궁전에서 키르케는 머리를 곱게 땋고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하며, 우아하게 베를 짜는 어여쁜 여인이었다. 그런데 키르케는 약초를 써서 사람을 동물로 변신시키는 마술을 구사할 줄 알았다. 그녀는 자신의 섬에 오디세우스 일행이 들어가자 마술을 써서 장병들을 돼지로 만들어 버렸다. 그 소식을 듣고 오디세우스는 장병들을 구하러 간다. 가는 도중에 이번에도 헤르메스 신이 나타나 오디세우스에게 ‘몰리’라는 약초를 뽑아주었다. 그 약초 덕분에 오디세우스는 키르케의 마법에 넘어가지 않았다. 도리어 그녀의 사랑을 받고는 부부처럼 함께 산다. 돼지로 변한 오디세우스의 전우들도 모두 다시 사람의 모습을 되찾는다. 헤시오도스가 쓴 <신통기>에 따르면 오디세우스와 키르케 사이에는 텔레고노스라는 아들도 생겨났다고 한다. 오디세우스와 장병들은 1년동안 키르케의 궁전에서 그야말로 안락하고 사치스럽게 지냈다.

우리는 만 1년동안 날마다 그곳에 앉아서

말할 수 없이 많은 고기와 달콤한 술로 잔치를 벌였오.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제5권

오디세우스는 그러다가 떠나기로 결정한다. 이 때 키르케는 오디세우스를 담백하게 보내준다. 오디세우스 일행이 떠날 때 순풍을 보내주고, 앞으로 겪어야 할 어려움을 미리 알려준다. 또한 하데스에 들러 제물을 바치고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만나 보라고 일러준다.

오디세우스는 마음만 먹으면 칼립소나 키르케와 함께 안락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오디세우는 끝내 그런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험한 모험과 유랑의 길을 떠났다.

오디세우스의 그런 결단은 단테의 <신곡>에서 더욱 극적이다. <신곡>의 지옥편에서 오디세우스는 키르케의 섬을 떠난 후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마다하고 새로운 모험의 길을 떠난다.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면 아내 페넬로페와 나이든 아버지 라에르테스과 아들 텔레마코스을 재회할 수 있다. 하지만 <신곡>에서는 그런 인간으로서의 잔정보다는 세상을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오디세우스를 압도했다.

내 마음 속의 열정을 이길 수 없었나니

세상을 탐구하고 싶고,

인간의 악덕과 가치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지옥편 26곡

오디세우스는 동료들과 함께 배 1척에 몸을 싣고 다시 항해를 시작했다. 오디세우스 일행은 지중해의 여러 섬과 여러 나라를 지나고 지브롤터 해협의 헤라클레스 기둥에 이르렀다. 그 바깥으로 나가지 말라는 뜻에서 일찍이 헤라클레스가 표지를 세워둔 곳이었다. 오디세우스는 거기서 되돌아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더 나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동료들에게 “햇빛이 비치지 않고 사람도 없는 세상”을 탐색하기 위한 모험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여러분의 타고난 천성을 생각해 보라.

여러분은 짐승처럼 살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지식을 구하고 덕을 따르기 위함이었노라.

-지옥편 26곡

오디세우스의 이 말에 동료들은 고무되어 탐험에 또다시 동참했다. 이들은 5개월동안 항해를 계속했다. 마침내 예전에 전혀 본 적이 없는 큰 산을 보았다. 그것은 바다 한가운데 있다고 믿어지던 연옥의 산이었다. 모두가 그 산을 보고 환호했다. 그렇지만 그 순간 폭풍우가 몰아쳤다. 때문에 오디세우스와 동료들은 배와 함께 장렬하게 최후를 마쳤다.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여러 장면과 에피소드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는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케로 돌아가 아내 페넬로페 및 아들과 재회한다. 그 이야기는 지식이나 덕에 대한 탐구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단테의 작품에서는 오디세우스가 새로운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 가족과의 재회하는 기쁨과 안락한 생활을 포기했다. 그나마 폭풍우를 만나 그런 탐구조차 좌절됐다. 그러나 비록 실패로 끝나기는 했지만, 그런 시도와 도전 자체는 경탄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의 주인공 아이네아스도 ‘결단’의 주인공에서 제외될 수 없다. 아이네아스는 지중해 곳곳을 유랑하던 끝에 디도 여왕이 다스리던 카르타고에 도착했다. 아이네아스는 디도 여왕과 사실상 혼인관계를 맺고 편안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그에게 어느 날 헤르메스 신을 통해 제우스 신의 메시지가 전달된다. 빨리 이탈리아를 향해 떠나라고. 그러자 아이네아스는 카르타고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디도는 아이네아스의 결심을 알고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온갖 달콤한 말로 회유한다. 그러나 아이네아스는 흔들리지 않고 트로이 유민들과 함께 떠나버린다.

만약 내가 내 인생을 내 자신의 선택에 따라 살아가고 내 문제들을 내 자신의 뜻에 따 라 풀어나가는 것을 운명이 허락한다면, 내 첫 번째 관심사는 트로이아와 아직도 살아 있는 내 동포들을 돌보는 일일 것이오.-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4권

아이네아스는 무정하게 출항해 버렸다. 디도는 심한 배신감과 절망을 느낀다. 그의 함대와 전우들을 구해주었는데, 이제 신의 명령을 들먹이며 가버렸으니 괘씸했다. 아울러 몹시 허무하기도 했다. 결국 디도는 스스로 장작더미 위에 올라가 삶을 마감한다. 이 때 디도가 남긴 마지막 한 마디가 무척 장엄하다.

나는 내 인생을 살았고 운명이 정해준 노정을 모두 마쳤다.?-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4권

신라시대의 김유신 장군이 기생집의 여인 천관녀와 관계를 끊기 위해 자신의 충성스러운 말의 목을 내리쳤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조선시대의 유학자 화담 서경덕은 기생 황진이의 유혹을 뿌리쳤다.

무릇 큰 꿈을 갖거나 의무를 짊어진 사람들에게 안락과 향락은 함정이 된다. 그 함정에서 헤어나오는지 아니면 안주하는지에 따라 그 이후의 삶과 운명이 크게 바뀐다. 큰 꿈이 없어도 마찬가지이다. 환락과 안락에 오래도록 안주하면 패가망신하기 쉽다.

이 세상에서 살면서 건실하고 후회없는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에게는 그 무엇보다 그런 안락과 향락을 경계해야 한다. 그것이 첫 번째 계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로마 시대의 정치인이자 변호사이며 철학자엿던 키케로는 저서 <투스쿨룸 대화> 제1권에서 아예 “육체로부터 우리 자신을 떼어내자”(Secernere a copore animum)고 말한다. 지상에 살면서 천상의 삶을 흉내내야지 육체의 사슬에 매여 있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육신의 즐거움을 받드는 것을 사양해야 한다고 키케로는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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