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태 기자의 고전에세이] 영혼의 창, 영혼의 힘

윌리엄 아돌프 부게로 작 .
윌리엄 아돌프 부게로 작 <호메로스와 그의 안내인>.

[아시아엔=차기태 기자] 기원전 8세기에 살았던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는 인류 최초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써서 남겼다. 이들 두 작품은 당시 그리스 세계의 음유시인들이 읊으며 다니던 설화를 서사시의 형태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리스 신화와 트로이 전쟁 이야기가 마치 실화처럼 생생하게 살아 있다. 구도 역시 고대인의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잘 짜여져 있다. 호메로스는 동시에 그 자신 음유시인으로서 곳곳을 다니면서 시를 읊었다. 그렇지만 그는 ?만년에 시력을 상실했다고 전해진다.

그렇지만 시각을 잃었다는 것은 호메로스에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 같다. 호메로스 뿐만 아니라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사람에게는 아무 어려움도 주지 않았다. 로마 시대 변호사이자 정치가요 철학자였던 키케로는 <투스쿨룸 대화>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영혼이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얼핏 보아 눈을 통해 보는 것이기는 하지만, 진정으로 보는 것은 눈이라는 신체기관이 아니라 영혼이라는 것이다.

 

영혼은 많은 다양한 방식으로 즐거움을 얻으며, 시각이 작동하지 않을 경우에도 그러합니다.

-키케로 <투스쿨룸대화> 제5권

 

키케로는 시각을 상실하고도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의 사례를 제시한다. 그 대표적인 인물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크라수스였다.. 클라우디우스는 기원전3세기에 집정관과 독재관을 2차례씩 지내면서 삼니움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공화국 로마의 최고 원로였다. 그는 로마가 자랑하던 아피아가도를 건설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이에 따라 길의 이름도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그런 클라우디우스도 늙어감에 따라 시력을 거의 잃었다. 때문에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는 ‘카이쿠스’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카이쿠스(Caecus)는 눈이 멀었다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그러나 기원전 280년 그는 눈이 보이지 않는 데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원로원 회의장에 들어섰다. 당시 로마를 침공했던 에페이로스의 피로스 왕으로부터 휴전하자는 제안이 들어오자 이를 받아들이자는 여론이 원로원에서 퍼지고 있을 때였다. 그 때 등장한 원로영웅 클라우디우스는 젊은 원로원 의원들을 향해 휴전론에 쐐기를 박는 연설을 했다. 그의 연설에 힘입어 원로원의 분위기는 바뀌어 피로스 왕과의 전쟁을 계속하기로 했다. 결국 피로스는 로마와의 전쟁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이탈리아반도에서 물러났다.

 

키케로에 따르면 스토아철학자 디도도토스는 오랜 세월 자신의 집에 기거하면서 놀라운 열정으로 철학을 연구했다고 전한다. 뿐만 아니라 현악기를 연주하고 기하학 문제를 풀었다. 원자론을 처음 제시한 데모크리토스도 시력을 잃어 희고 검은 것도 구분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선과 악, 공정과 불공정, 훌륭함과 추함, 유익과 무익, 큼과 작음 같은 것은 능히 구별할 수가 있었다”고 키케로는 강조한다. 사유활동에 아무 곤란을 겪지 않았다는 것이다. 데모크리토스는 ?“시각이 너무 강하면 영혼의 통찰을 방해한다”고 생각했다. 데모크리토스는 영혼의 힘으로 무한한 우주를 둘아다녔다. 그에게는 어떤 한계도 없었다.

키케로는 호메로스에 대해서도 그의 작품이 “시를 넘어서는 그림”이었다고 극찬한다 호메로스의 작품 속에 희랍의 여러 지방과 바닷가 풍경, 전투의 모습과 형태, 동물의 움직임 등 모든 것이 그려져 있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 자신은 보지 못하면서 우리는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것이다.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테이레시아스 역시 실명했지만 현명한 예언자로서 널리 회자된다. 테이레시아스는 시력을 잃은 대신 예언과 사리분별 능력이 뛰어났다. 중요한 순간마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법도를 일깨워 주는 역할을 했다. 새들의 소리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비극작가 소포클레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노인 테이레시아스는 “한 번도 거짓을 말한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테이레시아스는 <오이디푸스 왕>에서 오이디푸스가 결혼한 이오카스테가 그의 어머니임을 밝혀주지만 함부로 발설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비밀을 끝까지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 사실이 그대로 드러날 경우 비극적인 사태가 벌어질 것임을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이디푸스 왕의 강요로 테이레시아스가 진실을 이야기하고 나자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눈을 찔러 실명하고 왕위를 내던진 후 방랑의 길을 떠났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테이레시아스는 세상을 떠난 후에도 ‘저승의 여신’ 페르세포네의 배려로 온전한 사리분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예언을 잘했다는 죄로 말미암아 단테에 의해 지옥에 ‘투옥’되기는 했지만.

 

청력을 상실한 사람들의 경우에도 다를 바 없다. 귀머거리의 경우 듣는 즐거움을 잃었지만 시각의 즐거움은 남아 있다. 자신과 나누는 대화의 즐거움도 온전히 누린다.

 

혼자 스스로와 이야기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과의 대화는 필요하지 않을 겁니다.

-키케로 <투스쿨룸 대화> 제 5권

 

그렇기에 키케로는 “귀머거리에 무슨 악이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키케로는 마르쿠스 크라수스의 예를 든다. 크라수스는 로마 공화정 말기 율리우스 카이사르 및 폼페이우스와 함께 제1차 3두정치 체제를 구축했던 인물이다. 스파르타 반란을 진압한 후 붙잡힌 노예 6천여명을 모두 십자가형에 처하고 부동산 투자로 막대한 재산을 모은 인물이다. 훗날 파르티아에 원정 갔다가 패전하고 전사했다. 그런데 키케로가 전하는 바로는 그의 귀가 어두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로마 공화정 말기의 혼란 속에서 마지막까지 장군이자 정치가로서 활동했다.

청력을 잃었으면서도 위대한 성취를 이룬 사람으로 그 누구보다 악성 베토벤을 꼽을 수 있다. 베토벤의 청력은 30세 전후부터 약해져 한대 자살하려고 마음먹고 유서까지 썼었다. 베토벤이 자살은 하지 않았지만 청각장애는 갈수록 심해졌다. 45세때인 1815년경에는 청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20세기 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은 <베토벤의 생애>에서 전한다. 그렇지만 베토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불멸의 명곡들을 끊임없이 창작했다. 특히 장엄미사와 교향곡, 그리고 현악4중주 등 50대에 작곡한 곡들은 청력이 거의 작동하지 않는데도 창작됐다. 인류가 남긴 가장 고귀한 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어쩌면 이들 위대한 작품이 베토벤의 청각장애 때문에 탄생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만큼 베토벤의 ‘영혼의 힘’은 강했다.

 

다시 키케로에게 돌아가 보면 그는 눈과 귀 등 신체의 기관을 ‘영혼의 창’(finestra animi)일 뿐이라고 하였다. 시력과 청력은 영혼에 달려 있으며, 영혼이 작동하지 않으면 이런 ?창만으로 우리 정신이 지각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성서에도 이와 비슷한 관념이 나와 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며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만일 네 마음의 빛이 빛이 아니라 어둠이라면 그 어둠이 얼마나 심하겠는가?

-마태복음 제6장

 

중세의 시성 단테 알리기에리가 남긴 불멸의 서사시 <신곡>에서도 호흡곤란을 영혼의 힘으로 극복하라는 말이 나온다. 지옥을 순방하면서 가파른 길을 오를 때 단테에게 ‘마음의 스승’ 베르길리우스가 이른 말이다. 그렇다.?바로 그 ‘영혼의 힘’이다. 비록 눈과 귀 등 ‘영혼의 창’이 상처받고 몸의 일부분이 고장 났더라도, ‘영혼의 힘’ 하나만 든든하면 그로 인한 어려움은 능히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영혼의 힘’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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