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조인숙, 조선 사대부 공간 ‘연경당’ 엿보다

연경당 안채 사랑채

연경당 안채 사랑채

2012년 보물 지정…안채·사랑채·반빗간 등으로 구성

[아시아엔=조인숙 다리건축사 대표] 창덕궁 후원의 연경당(演慶堂) 일원은 궁궐 후원 안에 사대부가를 재현(19세기)했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주목을 받아왔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19세기 한옥인 안채, 사랑채, 선향재, 농수정 등의 건물을 둘러보면서 각 건물의 의미와 입지 및 좌향, 공간구성, 안팎공간의 교차반복, 건물과 외부공간과의 관계, 주 건물과 부속 건물과의 관계, 건축구조, 외관 등을 먼저 살펴보자.

우선 동아시아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건물의 입지와 좌향(坐向·건물이 앉은 방향·orientation)을 보자. 창덕궁과 창경궁은 정궁인 경복궁 동쪽에 위치하므로 동궐이라 불렀다. 연경당은 동궐의 후원 안에 있으며 건물은 11시 방향 즉, 해(亥) 방향이 북쪽으로 앉아있다.

연경당 장락문과 괴석

연경당 장락문과 괴석

창덕궁 후원서 장락문 통해 출입
정문인 장락문(長樂門) 안으로 들어가기 전 실개천을 건너는 다리 옆 서쪽에 나무처럼 생긴 괴석 1개가 돌확(石函·돌그릇)에 담겨 있다. 돌확 네 귀퉁이에는 두꺼비가 4마리 있다. 1마리는 기어들어가고 3마리는 기어나오는 형상이다. 여러 해석이 있지만 정지되어 있는 돌확에 기어들어가고 기어나오는 두꺼비의 움직임으로 변화를 주어 정(靜)과 동(動)의 조화를 만들었다는 해석이 가장 유력하다. 이 괴석은 계수나무를 상징한다. 계수나무와 4마리 두꺼비 그리고 실개천(명당수, 은하수에 비유) 위의 돌다리를 건너서 장락문을 들어서는 일련의 움직임으로 월궁(月宮)으로 들어가는 것을 상징한다. 명당수가 북서쪽에서 동남쪽으로 집을 감싸 흐르게 배치된 것이다. 한 걸음이면 건널 수 있는 거리지만 넓은 돌다리를 건넘으로써 공간을 두고 다른 영역으로 진입한다. 창덕궁의 후원(後苑)에서 물길을 건너 사대부 집이라는 연경당으로 들어간다. 즉 고귀한 공간에서 일상의 공간으로의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장락’은 오랫동안 유쾌하고 즐겁게 살자는 ‘장구쾌락’(長久快樂)에서 유래했다. ‘장구’는 중국의 동파 소식(蘇軾·1037~1101)이 중추절에 동생 소철(蘇轍·1039~1112)을 생각하며 쓴 글(詞)에도 있다. 여기에 곡을 붙인 ‘단원인장구’(但願人長久, Wishing We Last Forever)라는 노래는 오늘날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요절한 대만의 국민가수 덩리쥔(??君·Theresa Teng·1953~1995)이 노래해서 더욱 유명하다.

장락궁은 중국 한(漢)대의 삼궁(三宮)중 하나인 장락궁을 뜻하기도 한다. 당시 삼궁은 미앙궁(未央宮), 장락궁(長樂宮), 건장궁(建章宮)으로 장락궁에는 한 고조 이후 태후가 거처했다.

‘월궁’에 대한 전설은 중국의 도교에서 유래한다. 달의 궁전에서 지내는 항아(嫦娥/姮娥)와 활쏘기 명수인 후예(后?)에 관한 이야기다. 천제(天帝)의 아들들을 활로 쏘아 죽인 벌로 선적(仙籍)을 박탈당하고 인간세상으로 쫓겨난 후예와 항아는 늘 천상의 생활을 동경했다. 그러던 중 항아가 서왕모의 선약(仙藥)을 혼자 먹고는 월궁으로 날아가 신선이 되었지만 남편과 떨어져 줄곧 고독하게 살았다는 설화다. 동양설화에서 달에 사는 동물은 섬토(蟾兎) 즉 두꺼비와 토끼가 꼽힌다.

연경당을 드나들면서 궁(宮)에서 민가(民家)로, 상징적인 민간세계에서 궁궐의 후원으로 즉 ‘문과 담~마당~문과 담~마당~건물~마당’의 교차반복을 경험하게 된다. 즉, 이곳에서의 동선은 솟을대문인 장락문(長樂門)을 거쳐 바깥행랑으로 에워싸인 좌우로 긴 장방형의 행랑마당에서 수인문(脩仁門)서측으로 들어가면 안마당과 안채에 닿으며, 행랑마당에서 장양문(長陽門 동측)으로 들어가면 사랑채 마당과 사랑채에 이른다.

이렇듯 장락문 밖에서 볼 때 안 공간이던 행랑마당은 안마당이나 사랑마당의 바깥 공간이 된다. 연경당에서 후원으로 되돌아갈 때는 안마당이나 사랑마당에서는 바깥공간이었던 행랑마당이 장락문의 안공간이 되므로 안과 밖이란 상대적으로 교차반복이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연경당 안채의 루

연경당 안채의 루

필자는 1996년 <음예공간예찬>(원제 잉에이라이산·陰?禮讚·다니자키 준이치로·1933)을 펴내며 연경당 안팎의 교차반복에 대해 서술해 독자들에게 상당한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이제 연경당 내부를 들여다보자.
연경당(演慶堂)이란 사랑채의 당호(堂號·건물의 이름)로 이 일대 전체를 지칭하기도 한다. 연경(演慶)이란 경사가 널리 퍼진다는 뜻으로, 연경당은 2012년 8월 보물 제1770호로 지정됐다. 사랑채 외에도 연경당 일원 모두가 포함됐다. 창덕궁 낙선재의 경우 낙선재만 지정된 것과 대비된다. 조선시대 사대부 집을 재현했다고 알려진 연경당은 안채, 사랑채, 선향재(서재), 농수정(한칸 정자) 및 부엌에 해당하는 반빗간(飯備間)으로 구성돼 있다. 농수정은 조선시대 사대부 집이라면 있었음직한 가묘자리에 있다.

연경당은 안채가 서쪽, 사랑채가 동쪽에 위치한다. 창덕궁 낙선재의 경우 서쪽에 헌종의 처소가, 동쪽에 후궁 및 대비의 처소가 있고, 경복궁 건청궁은 서쪽에 고종의 장안당, 동쪽에 명성황후의 곤녕합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마당 넓이, 건축물의 가구(架構)구성 및 부재 굵기와 배치를 보면 건물의 위계를 금세 알 수 있었다. 용마루나 처마도 건물의 위계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연경당 안채-사랑채 로

연경당 안채서 본 사랑채

10칸반 안채엔 온돌방·대청·누마루가…
행랑 마당에서 안마당으로 드나드는 수인문(脩仁門)의 경우 여성들은 수레의 일종인 초헌(?軒) 등을 타고 들어갈 필요가 별로 없었기에 지붕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담에 평평한 문을 냈다. 초헌이 지나갈 수 있도록 문을 높인 사랑마당으로 드나드는 장양문(長陽門)과 구별된다. 문의 높낮이로 남녀를 차별한 것은 아니었다.

안채는 온돌방과 대청 및 누마루로 구성되는데 10칸 반에 이른다. 한옥에서 ‘칸’(間)은 두 가지 다른 뜻으로 사용되는데, 궁궐의 전각(殿閣)이나 사찰의 불전(佛殿)처럼 내부가 하나의 공간으로 되어 있는 건물의 경우 정면 몇 칸에 측면 몇 칸, 가령 ‘정면 5칸, 측면 3칸’식으로 표현한다. 이 경우 한 칸은 기둥과 기둥의 간격을 의미한다. 반면 주거용건물의 경우 한 칸이란 네 개의 기둥으로 에워싸인 단위 면적을 뜻한다. 그래서 99칸이니 하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칸의 크기는 건축물마다 달라 민가의 경우 대개 7~8자(尺)가 한 칸이 된다.

기둥 모양은 네모난 각기둥(角柱)으로 되어있다. 또 가구(架構, 한국 목조건축의 주 구조를 이루는 단면구조)는 높은 기둥 하나(1高柱)에 도리가 다섯 개(5樑)로 구성돼 있다. 서까래를 받쳐주는 도리는 네모난 납도리, 처마는 서까래로만 구성된 홑처마, 그리고 지붕은 팔작(八作)지붕으로 돼있다. 앞뒤 마당과 안 행랑 및 북행각 및 반빗간은 담으로 에워싸여 사랑채와 분리시켰다. 북행각 또는 별채라고 하는 반빗간은 10칸 반(궁궐지에는 14칸)으로 음식을 저장하고 조리를 하던 부엌과 광을 말한다.

농수정

농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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