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절’ 요란법석 폭죽으로 시작

‘춘련’으로 대문 장식…온가족 ‘연야밥’ 먹으며 덕담

[아시아엔=왕치(王岐) 인턴기자] 중국에서 가장 큰 명절은 춘절(春節)로 온 국민의 축제가 되고 있다. 한국의 설날과 같이 음력 1월1일이다. 서양에서 매년 12월이 되면 일찌감치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술렁이듯이, 중국에서도 음력 12월에 들어서면서부터 춘절 분위기가 무르익기 시작한다. 집안의 가장 어른이 모필로 댓구로 된 춘련(春聯)을 써서 대문에 붙이고, 방 안 벽에는 잉어를 안고 있는 아기의 그림 등 연화(年畵)를 붙이거나 걸어 놓는다. 대문에 ‘복’(福)이라고 쓴 글짜를 거꾸로 붙여놓는 풍습도 있다. “복이 들어온다”(福到了)고 믿기 때문이다.

다채로운 풍속과 행사가 넘치던 춘절 전통이 요즘 중국사회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납팔죽(臘八粥)이 캔으로 만들어져 판매되고, 손으로 빚던 교자(?子)가 냉동교자로 대체되며, 세배는 전화, 스마트폰 앱이나 인터넷을 통해 이뤄진다. 연하장(賀年片)도 인터넷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수백 가지 가운데서 찾아 이메일로 보내고 있다. 경제발전과 더불어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춘절 분위기도 크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원단 양력 대신 음력 초하루 ‘춘절’ 지내
춘절의 기원에 대해서 여러 설이 있는데 4000년 전 우순(虞舜) 시대(요순堯舜의 다른 표현)부터 명절로 삼았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설은 한 해의 으뜸날 아침을 뜻하는 원단(元旦) 또는 신년(新年) 등으로도 불렸다.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 때 서력 기원을 채택하면서 당시 중화민국 정부는 이날을 춘절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1949년 9월 중국도 공식적으로 서력 기원을 채택하면서 양력 1월 1일은 원단, 음력 정월 초하루는 춘절로 굳어졌다.

춘절을 보내는 것을 과년(過年)이라고 하는데,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뜻이다. 전통적으로 농업사회인 중국에서 봄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인 봄철을 앞두고 이날을 춘절로 삼아 천지신명과 조상들에게 지난해의 가을걷이에 감사하고, 금년 농사도 풍성하길 기원했다.

북방 ‘만두’ 남방 ‘찹살떡’ 지역·민족따라 설음식 다양
기자는 갓 개혁개방이 시작된 80년대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는 내 고향인 탕산(唐山)에서 1976년 큰 지진이 발생한 직후라 마을 사람들은 이를 복구하는데 몰두해야 했다. 물론 그 시절 식량이 부족하진 않았지만, 설날이 되면 원근에 나가살던 가족들이 모여서 평소 못 먹던 갖가지 음식을 나누던 기억이 새롭다.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도 춘절을 손꼽아 기다렸던 것 같다.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베이징에서 대학교를 마친 뒤 서울에서 석사과정을 마치는 구학(求學)생활(유학) 10여년 동안에도 2010년을 제외하고는 춘절엔 고향에 가서 가족들과 함께 보냈다. 그해는 한국에서 어학당 수업을 하고 있어서 귀가하지 못했다.

춘절 전날(음력 12월30일)엔 점심 무렵부터 가족들은 할아버지 댁에 가서 같이 요리하고 같이 밥 먹으며 술도 마신다. 그날 밤 즉 제석(除夕)에 먹는 저녁밥이 연야밥(年夜飯)이다. 북방지역인 우리 고향에선 평소엔 쌀과 밀가루를 반반씩 먹는데, 연야밥은 꼭 만두를 빚어서 먹는다. 북방과 달리 남방에서는 탕원(湯圓)과 찹쌀떡을 만들어 먹는다. 온가족이 연야밥을 먹으면서 환담을 나누거나 TV시청이나 오락을 즐긴다. 제석에는 잠을 자지 않고 밤을 꼬박 새기도 한다. 이날 시청률이 가장 높은 프로그램은 중국 중앙방송(CCTV)의 춘절만회(春節?會)다. 최근 한류 영향으로 한국스타들도 이 프로그램에 많이 등장하고 있다. 보통 밤 8시부터 새벽 2시까지 6시간 이상 계속 방영된다. 가족들이 모여서 자정(밤 12시)을 보내는 것을 수세(守歲)라고 한다. 밤 12시는 자시(子?)에 해당돼 이 시간이 되는 것을 교자(交子)라고 한다. 교자는 만두를 뜻하는 교자(?子)와 중국어 발음이 같기 때문에 연야밥으로 만두를 먹는 유래가 생겼다.

바야흐로 새해로 넘어가는 순간인 자정이 되면, 천지를 뒤흔드는 폭죽(鞭?)소리가 춘절을 알린다. 요란한 폭죽소리는 사악한 귀신을 쫓는다는 의미를 넘어서, 명절 분위기를 한껏 고취시키는 역할을 한다. 어렸을 때부터 친척 형과 동생들과 폭죽을 많이 터트렸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인지 폭죽에 대해 별 감흥이 없지만. 최근 들어 폭죽이 공기를 오염시키고 화재를 유발하며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등 폐해가 커짐에 따라, 베이징 등 대도시에서는 폭죽 터트리는 시간과 장소를 제한하거나 심지어 사용을 금지하는 곳도 있다. 우리 고향 당산에서도 예전 몇년 동안 금지한 적이 있다.

드디어 춘절 아침, 일찌감치 조상에게 차례(祭祖)를 지낸 후 친지나 가까운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세배(拜年)를 한다. 축하인사와 덕담이 오가고 세뱃돈(壓歲錢)을 주는 것은 한국과 별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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