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엔 중국인 왕치 기자 DMZ르포] 육로 통해 중국 갈 날 곧 오길
1년만이다. 한국관광공사 버즈코리아(Buzz Korea)가 주관하는 ‘비무장지대, DMZ 문화탐방’에 나서게 됐다. 21~23일 2박3일간 일정이다. 외국인들에게 DMZ는 ‘가장 가고 싶은 관광지’로 꼽힌다. 남북분단의 상징인 DMZ에서 남북이 긴장 속에 대치하는 모습에 호기심을 끌리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1953년 7월27일 유엔과 북한과의 휴정협정에 의해 만들어졌다. 당시 남북은 총 길이 241km을 비무장지역으로 설정하는데 동의했다. 여기에 남북으로 5~20km에 이르는 민간통제선(Civilian Control Line)까지 설정했다. 이렇게 남과 북은 DMZ라는 ‘버퍼존(Bufferzone)’을 만들어 경계선의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북쪽으로 차로 한 시간 달리면 도로 옆 길게 늘어선 철조망과 군인초소가 눈을 사로잡는다. 임진강을 따라 보이는 철조망과 군인들의 삼엄한 분위기를 보니, 사뭇 긴장감이 감돈다. 파주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첫번째 목적지인 도락산전망대로 향했다. 도락산전망대는 경기도 파주시 서부 전방 군사경계의 최북단에 위치해 있다. 1987년부터 일반인에게 개방된 이곳은 북한의 개성시, 송악산, 김일성 동상, 협동농장을 멀리서나마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아쉽게도 필자는 운이 없었던 것 같다. 맑았던 날씨가 오후가 되니 갑자기 흐려진 것이다. 망원경을 이용해 강 건너 북쪽을 보려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안개가 너무 짙었다. 짙은 안개 속 북한을 바라보니, 최근 UN에서 통과된 ‘북한인권결의안’이 떠올랐다. 북한은 국제사회에 대해 핵실험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경하게 나오고 있다. ‘천하제일, 전진부대’, ‘분단의 끝, 통일의 시작’. 도락산 전망대에 걸린 현수막에 쓰인 강렬한 문장을 발견했다. 하지만 ‘남북통일’에 대한 한반도의 염원은 현수막에만 쓰여졌을 뿐이다. 현실적으로 남북통일은 아직도 뿌연 안개 속에 있는 듯하다.
전망대를 떠나, 우측에 보이는 운동장을 향했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군인들이 보니, 전망대에서 느꼈던 긴장감이 한 풀 꺾였다. 2000년, 남북은 문산에서 개성까지 이르는 ‘경의선복원사업’을 마쳤다. 2002년 2월에는 북한의 도라산역과 남한의 임진강역을 잇는 4.1km 구간을 연결하는 공사가 완료됐다. 단절된 남북관계를 잇는 사업들이 진행되어, 남북한의 긴장국면이 풀리는 계기가 된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발견된 땅굴은 네 곳. 이 중 제3땅굴의 경우, 1978년 10월17일 판문점 남방 4㎞ 지점에서 발견됐다. 땅굴의 위치는 서울에서 불과 52㎞거리. 제3땅굴의 규모는 제2땅굴과 비슷하지만 서울과 거리가 가까워 다른 땅굴에 비해 훨씬 위협적이라고 평가받고 있다고 안내를 맡은 군인이 설명했다. 임진각에서 서북쪽으로 4㎞, 통일촌 민가에서 3.5㎞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서울에서 승용차로 45분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라고 한다. 지하 73m 아래 땅굴 통로가 있다. 통로 공간의 높이 1.7m. 키가 제법 큰 사람들은 땅굴 안에서 고개를 숙이고 걸어야 한다.
땅굴 안은 매우 습했다. 땅굴 바닥의 고인 물이 밟힐 정도니 말이다. 공기도 거의 없어 호흡하기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허리를 굽은 상태로 수백m를 걸으니 쉽게 피로해졌다.
드디어 땅굴 밖으로 탈출했다. 함께 땅굴을 걸었던 한국인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 한국인들도 땅굴은 처음이라고 했다. 남북통일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물어봤다. 한국 20-30대 젊은 청년들은 통일보다는 현상유지를 원한다고 했다. 통일이슈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한국 젊은이들보다는 나이 많은 신부들이나 외국인들이 이곳을 더 많이 찾는다고 한다.
이번 탐방에 함께한 네팔의 디네쉬(Dinesh, 30살, 회사원)씨는 제 3땅굴에 대해 “무섭지만 재밌었다”며 “혹시 북한도 이렇게 땅굴을 관광지로 이용하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한국전쟁에 대해 잘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여기서 전쟁을 발생한 것을 알고 있다”며 “무서운 것은 사실이지만 자세한 내용을 모른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알레트(Aleth, 23살, 경희대)씨는 한국어로 자신의 감상을 말해주었다. 그는 “제 3땅굴을 통해 북한이 아주 열심히 전쟁을 준비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같은 프랑스에서 온 학생 마린(Marine, 20살, 이화여대)씨는 “한국전쟁에 프랑스도 참전했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땅굴 사실을 모른다”며 “프랑스 친구들이 나더러 지금 북한에서 공부하는지 남한에서 있는지 묻는”고 했다. 남북한을 잘 구분 못하는 것이다.
일행은 마지막으로 임진각을 방문했다. 임진각세계공원에서는 한창 파주 향토 특산물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임진각 세계공원’에는 ‘임진각’이 보이지 않는다. 임진각 왼편에는 ‘자유의 다리’가 있다. 이 다리는 본래 경의선 철교였지만, 6·25전쟁 당시 파괴되었다. 이후 휴전이 선포되고, 1953년 남북간 포로를 교환하기 위해 급히 건설됐다고 한다.
이 다리를 통해 1만2773명의 한국 국군포로가 북측의 집요한 설득을 뿌리치고 자유를 택했다. 이들이 자유를 찾아 최초로 이 다리를 건넜다는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자유의 다리’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자유의 다리’는 판문점에 있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와 함께 남북분단의 비극을 상징한다.
자유의 다리를 바라보며 경의선 기차를 타고 육로를 통해 중국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한국에서 ‘남북통일’은 핫이슈다. 정치인부터 일반인까지 통일에 대해 관심이 많다. 하지만 통일에 대해 말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남과 북은 이미 분단 60년을 넘었기 때문에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큰 차이가 있다. 남북한의 교류를 더욱 확대하고 서로 간의 이해를 높이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공리공론보다 남북한 간 교류를 더 많이 하고 서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다고 생각한다. 1980년대 중국과 대만이 실시했던 ‘삼통’(우편, 상무, 항운)을 한반도에서도 실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