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놈펜 명물코끼리 ‘삼보’ 다시 정글로

‘킬링필드’ 등 굴곡의 캄보디아 현대사 ‘체험’…잘 적응할지는 미지수

프놈펜 시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코끼리가 조만간 인생 마지막 여정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생태관광 벤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코끼리보호단체인 Elephant Livelihood Initiative Environment (ELIE)측은 “코끼리 삼보가 12월 초 캄보디아 북동쪽에 위치한 몬돌끼리 주(州 )내 ‘코끼리 밸리 프로젝트 관할 구역’에서 새로운 안식처를 갖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프놈펜 포스트〉 등 현지 언론들도 최근 “이 거대한 몸집의 코끼리를 먼 곳까지 운반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대형 컨테이너가 사용될 것”이라고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지난 1982년부터 무려 30년 동안 왓 프놈(Wat Phnom)의 명물이었던 삼보는 불과 2년 전까지 만해도 시내에 남아있던 유일한 코끼리였다. 그 덕에 프놈펜 시민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의 사랑도 독차지했었다. 낮에는 왓 프놈에서 하루를 보내고, 이른 아침과 해질 무렵에는 메콩강변 거리를 걸어가는 삼보의 모습을 언제든 볼 수 있었다.

지난 1960년 태어난 삼보는 캄퐁스프 정글 숲에서 8살 나이에 포획된 이래 인간 가족들과 거의 일평생을 함께 보냈다. 삼보의 주인 신 소른씨(57세)도 “삼보와 헤어져 있던 시기는 지난 70년대 폴포트 정권시절 크메르루즈 군(軍)에 의해 뿌삿 주(州) 농장 강제노동에 투입됐던 4년의 시간 뿐”이라고 말했다.

당시 많은 코끼리들이 고된 노동과 질병에 시달리다가 죽었지만, 삼보는 운 좋게 살아남은 얼마 남지 않은 코끼리 중에 한 마리이다. 이 코끼리 역시 캄보디아의 근대사의 비극을 몸소 체험한 역사의 산 증인(?)인 셈이다.

노동수용소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폴 포트 정권 몰락 후 고향에 돌아온 주인 소른씨는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동네이웃으로부터 삼보가 또 다른 먼 시골에 잡혀갔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는 고물자전거를 타고 3일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가 우여곡절 끝에 극적으로 삼보를 찾았다. 영화소재로 써도 충분할 정도로 감동적인 장면이다.

어려운 협상(?) 끝에 간신히 삼보를 되찾은 소른씨는 삼보와 함께 수도 프놈펜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시내 중심가 왓 프놈 사원에서 관광객들로부터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삼보는 왓 프놈에서 관광객을 태우고 사원 둘레를 도는 일로 주인의 생계를 이어왔다.

처음에는 한번 등에 태우고 사원주변 한 바퀴를 도는데 고작 1000리엘, 한국 돈 250원 정도를 받았다. 그런데 외국 관광객들이 늘고 삼보의 인기는 갈수록 높아져 2011년에는 15달러까지 올랐다. 사진촬영 대가로 벌어들이는 ‘원 달러(1 dollar)’ 수익도 꽤 짭짤했다. 게다가 임산부가 코끼리 배 밑을 지나가면 행운이 깃든다는 오래된 미신도 삼보의 인기와 명성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삼보의 나이 벌써 54살이다. 사람나이로 치면 70살이 넘어 은퇴할 시기를 이미 넘어섰다.

사실, 삼보는 이미 2년 전 은퇴했다. 삼보가 은퇴한 것은 우선 나이도 문제지만, 오른쪽 발목부위에 바이러스성 종기가 난데다 퇴행성관절염으로 다리를 절뚝거리기 시작한 게 주된 이유였다. 아침저녁으로 단단한 아스팔트길을 너무 오래 걸은 게 원인이었다. 발목을 심하게 절뚝거려 자칫 갑자기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등에 탄 관광객들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삼보의 은퇴를 재촉하게 만들었다.

삼보를 오랫동안 관찰해온 동물보호단체도 동물학대를 이유로 삼보가 왓 프놈에서 더 이상 지내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나섰고, 출퇴근시간 시내교통 흐름에 방해가 된다는 프놈펜 시청의 경고까지 맞물려 결국 현역 은퇴를 서둘러 결정해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코끼리 보호를 위해 건립된 외국 비정부기구(NGO) 단체의 지원 덕분에 삼보는 프놈펜 시(市) 외곽 센속 구(區)에 있는 보금자리에서 최근까지 주인의 보살핌을 받으며 평안한 은퇴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갑자기 수입이 없어진 주인에게도 이 단체로부터 생활비가 일부 지급됐다.

그러나 이들의 행복한 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홍콩에 기반을 둔 이 NGO가 돌연 “재원이 바닥났다”면서 지난 3월 갑자기 지원을 중단한 것. 주인도 수입이 끊긴 상태에서 하루에도 엄청난 양을 먹는 삼보를 관리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이 때문에 소른 씨가 삼보를 데리고 다시 왓 프놈으로 돌아가겠다고 주장한 적도 있지만, 결국 동물보호단체 등 NGO와 시청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소식을 접한 캄보디아 출신 해외동포들과 삼보를 후원해온 독지가들은 삼보를 다시 왓 프놈으로 돌려보내기 보다는 원래 태어난 정글 숲으로 다시 보내 줄 것을 원했다. 후원자들의 요구가 공감을 얻으며 여론화 되자, ELIE는 고심 끝에 삼보를 몬돌끼리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삼보의 주인 신 소른씨는 삼보의 몬돌끼리 주(州) 정글 이주에 대해서 여전히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당장 삼보를 보살필만한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그로서는 달리 선택할 여지가 없다.

‘여동생’이라 부르며 평생 가족처럼 지내온 소른씨에게 삼보는 단순한 동물 이상의 존재이므로, 이번 결정에 대한 소회도 남다르다. 그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달에 한번 삼보를 보러 갈 계획이며, 그래도 보고 싶으면 2주에 한번은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단체 관계자는 최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삼보가 정글에서 다른 아홉 마리의 코끼리들과 함께 지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삼보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그 역시 확신하지 못한다. 삼보가 다른 코끼리들과 만난 것은 6년 전이며, 다른 코끼리들과 마지막으로 함께 지낸 것도 1980년대 말로 이미 오래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다.

아무튼, 평생 인간사회에서 살아온 삼보가 과연 정글로 돌아가 다른 코끼리들과 어울려 잘 살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프놈펜 시민들은 ‘킬링필드’의 아픈 현대사를 직접 몸으로 경험했고, 프놈펜 명물로 사랑받던 코끼리가 먼 길을 떠나 밀림의 정글로 돌아 간 점을 못내 아쉬워하고 있다.

“아무쪼록 마지막 여생을 평안히 살아주길. 잘 가, 삼보야~!” 박정연/캄보디아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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