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산책] 김예슬 선언,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어김없이 올해도 대학입시 계절은 돌아왔다. 입학할 대학이 정해진 사람이나, 아직도 불안과 초조, 그리고 기대 속에 하루하루 지새는 이들에게 올 겨울은 유난히 춥게 느껴질 것이다. “입시생 여러분 힘내세요!” 하자니 뭔가 2% 부족한 것 같다. 하여 지금은 시민단체 나눔문화 사무처장으로 일하는 김예슬(25)씨가 2010년 봄 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을 자퇴하며 쓴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를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작년 1월 읽은 책을 찾을 수 없어 다시 구해 본 느낌. ‘35년 전 대학 신입생 내게, 누군가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면 나의 대학생활은 훨씬 알찼을 것 같다.’?

엊그제 신새벽 눈뜨자마자 <오늘 나는…>을 펼치고 연필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는 밑줄을 그으며 읽어간다. 두 시간 남짓. 오전 출근하며 다시 밑줄쳐진 곳만 다시 읽는다. 앞뒤 문장이 작년말, 나눔문화 후원의밤 김예슬과 오버랩 된다. 연필자국이 닿은 대목을 소개한다.?

“김예슬 선언은 거대한 대학과 국가와 시장이라는 억압의 삼각동맹을 향해 던진 작은 돌멩이의 외침이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균열은 시작되고 조용한 혁명은 이미 시작되었다.”(9쪽)

“대학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되어 내 이마에 바코드를 새긴다. 국가는 다시 대학의 하청업체가 되어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12년간 규격화된 인간제품을 만들어 올려 보낸다.”(12쪽)

“‘대학(大學)’없는 대학에서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었다. 우정도 낭만도 사제간의 믿음도 찾을 수 없었다.”(13쪽)

“우리들 20대는 끝없는 투자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 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13쪽)

“생각한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14쪽)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오늘 저는 대학을 그만둡니다. 아니 그만둡니다. 진리도 우정도 정의도 사라진 죽은 대학이기에. 고대 경영학과 3년 김예슬”(17쪽)

“길어진 대학 짧아진 젊음
?인문‘학’이 아니라 인문‘삶’이다
?부모산성 넘어서기
?살아있다는 것은 저항한다는 것이다”(23쪽)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5살부터 20살까지 15년, 정확히는 131,400시간. 그 인생의 대부분을 학교담장과 학원 밀실에 갇혀 억지로 의자에 앉혀진 채 세계 최장의 학습노동을 성실히 수행해왔다.”(28쪽)

“우리말로 10분이면 될 이야기를 영어로 100분씩 버벅거린다. 토익 토플은 수능과 일제고사에 필적하는 국민 공통 고시가 되어버렸다.”(41쪽)

“초중고부터 대학 4년까지 졸업하는 비용은 약 1억원이 나온다. 취직을 한다 해도 필수 생존 투입비용을 제외하고 십수년 내에 1억원을 뽑아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42쪽)

“대학 졸업장 자체는 깡통계좌임이 드러났다. 대졸자 주류사회에서 대학 안 나온 청년들의 실업문제와 저임금 문제는 조명도 되고 있지 않는 현실에 나는 분노한다. 육체노동은 천민들의 짓인 양 경시하는 사회 인식이 부추기는 현실에 나는 분노한다.”(60쪽)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68쪽)

“래디컬 하다는 것은 근원적이라는 것이다. 근원적이라 함은 사태를 전체적으로 보고 문제의 원인을 바탕뿌리까지 파고 들어가 그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나가려는 태도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사회진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가치관과 철학과 실천 전반에 대한 것”(71쪽)

“내가 접해 온 진보는 충분히 래디컬하지 못하기에 쓸데없이 과격하고, 위험하게 실용적이고, 민망하게 투박하고, 어이없이 분열적이고, 놀랍도록 매달린다는 느낌이 든다. 그것은 실상 물질적이고 권력정치적이고 비생태적이고 엘리트적이고 남성중심적이고 삶의 내용물에서 보수와 별반 다르지 않게 보였다.”(71쪽)

“국경 너머 기아와 분쟁현장의 고통 받는 사람들 편에 서서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나누는 일에 감동을 느낀다.”(74쪽)

“나에게 G세대는 ‘Global Caste’의 약자로 느껴진다. 즉 세계화된 신분계급제도 말이다.”(75쪽)

“시급 4000원짜리 알바를 뛰어 1년짜리 어학연수나 가는 참담함 글로벌 카스트 세대이다.”(75쪽)

“중동-이슬람과 아프리카와 중남미와 아시아인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할 것이다. 그들의 장엄하고 깊이 있는 고유한 문화, 인류에 대한 역사적 기여, 수백 만 개의 토박이 마을의 전통을 이해하고 존중하지 안는다면 미국과 서구중심의 주술에 씌워진 편협하고 후진 존재일 것이다.”(76쪽)

“보수는 괴로워하지 않고 아이를 경쟁에 밀어 넣고, 진보는 괴로워하면서 아이를 경쟁에 밀어 넣는다. 보수는 아이가 명문대생이기를 바라고, 진보는 아이가 의식 있는 명문대생이기를 바란다.”(80쪽)

“그만 배우기, 생각하기! ‘그만 생각하기, 행동하기! 지금 바로 살아가기!”(84쪽)

“자신을 움직이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가난한 마음이 없다면, 그런 자기 내어줌의 실천이 없다면 그 많은 지식과 진리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생각이 든다.”(87쪽)

“삶은 너무 과소한데 지식은 너무 과도하다.”(89쪽)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고 예산부족을 탓하며 서슬 퍼렇게 항의하던 교수들에게 묻고 싶다. 그렇게 확보한 기금으로, 우리 학부모들의 피땀 어린 학자금과 노동자와 농민과 서민의 세금으로 무얼 해왔는지, 그 연구성과라는 것이 도대체 우리 시대 모순의 본질을 얼마나 밝혀냈는지, 또 밝혀낸 만큼 자신은 얼마나 진실한 삶 쪽으로 걸어갔는지 눈물로 묻고 싶은 것이다.”(89쪽)

“제발 자녀를 자유롭게 놓아 주십시오. 당신의 몸을 빌어 왔지만 그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하고 신성한 존재이지 당신의 소유가 아닙니다. 아이를 위해 ‘좋은 부모’가 되려 하지 말고 당신의 ‘좋은 삶’을 사십시오.”(100쪽)

“그저 뜨거운 침묵으로 지켜보고 격려해주기만 하면 스스로 저지르고 실패하고 성찰하고 일어서며 자신의 길을 찾아갈 것입니다. 최고의 사랑은 서툴지만 자기 생각대로 살고 책임지겠다는 자녀의 저항에 기꺼이 져주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101쪽)

“솔직히 부모님은 이 잘못된 사회의 희생자이자 억압의 동조자이기도 하다.”(101쪽)

“억압 받지 않으면 진리가 아니다.
?상처받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저항하지 않으면 젊음이 아니다.”(117쪽)

김예슬은 책 말미에 ‘이런 삶의 대학 하나 세우는’ 자신의 꿈을 밝힌다.

“어떤 대학인가? ‘교수는 없지만 숨은 현자와 장인과 세계의 토박이 지성들이 우리의 교수다···묵직한 고전을 읽고 신문 뉴스를 분석하고 그것을 삶에 곧바로 적용시켜 나간다···”

안될까 염려하는 이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작은 돌멩이는 외친다.

“길이 끝나면 거기 새로운 길이 열린다. 한쪽 문이 닫히면 거기 다른 쪽 문이 열린다. 내가 무너지면 거기 더 큰 내가 일어선다.”

이상기 기자 winwin0625@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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