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3국지]한국 조선산업 이대로 몰락하나

2008년 이후 위축되었던 세계조선 시장이 2013년 약간의 활기를 찾는 듯했으나 2014년 들어서 다시 그 활력을 잃고 있다. Clarkson Research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4년 상반기 전세계 조선 발주량은 6180만 DWT(944척, 2050만 CGT) 규모로 전년대비 27% 감소되었다. 이는 이미 예견되었던 추세였다. 2013년의 선박발주는 몇몇 금융세력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전통적인 해운회사들이 머뭇거리고 있는 동안, 조선소는 일감이 부족해지기 시작했고, 이를 틈타 그들은 값싸고 친환경적이고 연료효율이 높은 선박에 집중적으로 금융자본을 투입했던 것이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의 유례없던 조선 호황기에 발주되었던 선박 때문에 이미 선복량 과잉의 몸살을 앓고 있던 세계해운시장은, 2013년의 반짝 호황으로 과잉공급의 짐을 더 하게 되었다.

전세계 조선 수주량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 한국, 일본 조선 산업은 2014년 상반기 3180만 DWT(481척, 910만 CGT, 146억불), 1720만 DWT(164척, 560만 CGT, 132억불), 910만 DWT(177척, 340만 CGT, 59억불)을 수주하여 작년 대비 각각 21%, 30%, 40%의 감소세를 보였다. 2013년 상승하던 선가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1억불을 넘어섰던 초대형 유조선(VLCC)가격은 9900만불대로 주저 앉았고 케이프사이즈 벌커선도 100만불 이상 떨어져 5700 만불 선으로 내려섰다. 세계 해운시장에 전반적으로 암운이 깃들어 있는 가운데 주요 해운회사들은 해운시장에 확실한 회복기미가 보이기 전까지 어떤 적극적인 행동도 취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벌커건 탱커건, 심지어는 콘테이너 시장이건 간에 어느 한 부문도 밝은 구석이 보이지 않는다.

수주량으로 본 세계 조선소 순위는 현대중공업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여 1102만 CGT를 확보했고, 삼성중공업 550만 CGT, 대우중공업 536만 CGT, 현대미포조선 482만 CGT 등 한국 4대 조선이 Top 4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의 이마바리, JMU조선 등이 5위와 7위, 그리고 중국의 상해 웨이고교 조선, 양지장 조선, 후동 조선이 8,9,10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STX 조선은 6위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 3국 중 최근 그나마 안정세를 보이는 나라는 일본이다. 6월 한달간 세계적 수주량이 5월 대비 29%, 작년말 대비 4분의 1로 급감하고 있는 동안, 일본만 작년 동월 대비 무려 140%나 늘어난 169만 CGT(91척)를 수주하며 한국의 수주량을 넘어섰다. 아베 정부의 엔화약세 정책이 선박수주에 긍정적 영향을 확실히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신조 계약은 벌커 등 저부가 가치선에 치우쳐 있고, 해외 선주를 위한 수출선은 30% 남짓에 불과하다. 국내 수요로 대부분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국가적인 조선산업화 의지는 확고하다, 특히 조선공업에 대한 애착은 전방위적이다. 중국과 세계 해양국가의 정상 회담에서 조선 해양 산업에 대한 금융지원은 이제 빼놓을 수 없는 안건이 되었다. 자국의 자원수송은 자국이 건조한 선박이 맡아야 한다는 국수국조(國輸國造) 정책은 이미 옛날이야기이다. 방대한 자원의 수송권과 막대한 금융을 제공함으로서 중국은 초대형 콘테이너선의 선주를 유치할 수 있었고, 선박중 가장 높은 기술을 요하는 액화 천연가스 운반선(LNG Carrier)의 건조도 차츰 확산되고 있다. 게다가 일본이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던 스테인레스강으로 건조되는 화학제품 운반선(Chemical Carrier)의 세계시장의 점유율도 빠르게 높이고 있는 추세이다. 중국은 싸구려 벌크선을 짓는 양적 세계 제일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세계 제일의 조선국이 되기 위해 보다 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천만개의 시계를 만들어 낸다고 스위스를 제치고 세계 최고의 시계 생산국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한국의 한 대형 조선소 사장이 중국조선의 현주소를 공개적으로 폄하한 말이었다. 그러나 세계적인 추세는 그의 말이 한갓 허세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1990년대 후반부터 세계 최고의 조선국이 되었다. 양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나 세계 어느 나라도 따라 올 수 없을 것 같았다. 한국은 계약에 명기된 선박의 성능을 보장하고 약속된 납기를 정확히 지킬 수 있는 특급 조선소로서의 프레미엄을 톡톡히 받아내었다. 이러한 프레미엄은 2008년 이후 무한경쟁 시대에도 계속 확보되었다. 어려운 시기에는 심해 원유채굴 시설 주문이 한국 조선을 도왔다. 다행히 원유값이 올랐고 원유채굴 조건이 악화됨에 따라 고가의 원유채굴 장비들이 한국에 독점적으로 발주되어서, 한동안 조선소들은 이 물량으로 일감을 채울 수 있었다. 그러나 원유채굴 시장의 열기가 식기 시작하면서 조선소들은 차가운 현실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일반 상선을 지어야 하는데 상선을 지을 경쟁력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한국조선업계에는 ‘안되는 일’ 밖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벌커나 단순한 유조선은 경쟁력이 없어 중국이나 일본에 줄 수 밖에 없다. 스테인레스 스틸로 짓는 화학제품운반선은 공정에 방해를 받아 대형조선소에서 지을 수가 없다. LNG 운반선은 한국이 건조를 독점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웃 나라의 따라오는 속도가 무섭다. 초대형 콘테이너선은 이미 중국이 건조하기 시작했다. 석유채굴 장비산업은 원유시장의 경기에 따라 부침이 심해서 주력 생산품으로 삼기엔 문제가 많다. 선가가 높다고 하나, 엄청나게 높은 수입 기자재 비중을 감안하면 이익을 내기가 어렵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조선은 이제 어느 부문에서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을 맞고 있다. 일찍이 유럽이 경험했던 조선공업 몰락의 길로 서서히 접어 들었다고 볼 수 있다. 아니 몰락은 아주 급속히 올 수도 있다. 수십만명의 고용과 1000억불 수준의 수출이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몰락을 막기 위해 근본적인 대책을 세울 때가 되었다. 그것도 내달 혹은 내년으로 미룰 여유가 없다.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한국조선공업은 중국의 거국적인 지지나 국적선사의 맹목적인 협조를 기대할 수가 없다. 오히려 국가 자금으로 보호된 구조조정을 통해 살아난 한국 해운회사가 살아나기가 무섭게 중국조선소에 가서 배를 지어 오는 것이 현실이다. 조선 산업의 기본은 상선 건조이다. 기본으로 돌아 가야 한다. 높은 기술을 요하는 고부가가치선으로 시장을 주도해 나가야겠지만, 벌커도 탱커도 작은 컨테이너선도 고부가 화학운반선도 버려서는 안된다. 거대 조선소도 필요하지만 세계의 틈새 시장에 대비한 소형 조선소도 균형있게 유지되어야 한다. 대형 조선소들이 간접비, 관리비들 때문에 경쟁력을 보일 수 없다면, 문닫은 조선소들을 되살려 특화시켜서 시장을 지켜야 한다. 조직을 단순화하고, 간접비를 줄이는 모든 조치를 취하는 동시에 생산성을 올린다면, 벌크선도 일본이나 중국에 줄 이유가 없어진다. 정책당국과 조선소 경영진과 노조까지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책 입안자들이 해야 할일, 경영자들이 안아야 할 직분, 작업자들이 맡아야 할 책임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산업이 살아나야 조선소도 있고 노동자도 있고 정책도 있는 것이다. 이 산업이 세계 제일의 자리에서 20년도 버티지 못하고 내려오도록 그토록 허약한 체질이었다면 진실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DWT; Deadweight; 재화중량, 화물 적재 톤수.)
(CGT; Compensated Gross Tonnage; 환산 용적 총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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