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해수부장관 유임 바란다” 칼럼을 읽고
필자는 지난 13일 유진룡 문화체육부장관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얘기를 들었다. “사고 발생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현장에서 저토록 열심히 하는 분은 공직생활 30년 동안 거의 못 봤다. 그런데, 사고가 마무리되면 장관직은 물론 정치인으로서도 활동을 못하게 될까 안타깝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기껏 장관 취임 두달 만에 사고가 났는데, 이번 사고가 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이주영을 위한 변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차일피일 미루다 29일자 조선일보에 ‘해양수산부 장관의 유임을 바란다’는 제목의 칼럼을 발견했다. 직전 편집국장을 지낸 양상훈 논설주간은 “고난의 40여일 동안 장관이 체득한 모든 것 다 날려버려야 하나. 그가 안 한다고 해도 강제로라도 일하게 하면 해수부 그 이상이 바뀔 것”이라는 취지로 썼다. 칼럼은 “지금 우리가 이 장관을 유임시킨다면 역사에 없던 결단이다. 우리사회는 그날 이전과 이후가 같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최소한 해부수는 진실로 무언가 달라질 것이다”로 맺고 있다.
필자는 이주영 장관을 직접 본 적이 없다. 다만 TV에서 검은 점퍼에 덥수룩한 수염을 한 채 유족을 찾거나 대책회의 하는 장면만 몇차례 봤을 뿐이다.
기자는 양상훈 논설주간에게 전화했다. “공감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한쪽으로 우 하고 몰려갈 때, 단 한 사람이라도 그건 아닌데 하며 남아있거나 반대쪽도 있음을 알려주는 것, 그게 언론 역할 아닌가 한다”고 했다. 양상훈 주간은 “과찬이다. 그렇게 이해해 주어 고맙다”고 했다. 아시아엔은 양 주간의 양해를 얻어 ‘해양수산부 장관의 유임을 바란다’ 제하의 칼럼 전문을 보도한다.
해양수산부 장관의 유임을 바란다
고난의 40여일 동안 장관이 체득한 모든 것 다 날려버려야 하나
그가 안 한다고 해도 강제로라도 일하게 하면 해수부 그 이상이 바뀔 것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을 전혀 모른다. 그래서 이 글을 쓸 수 있다. 분위기에 맞지 않는 것도 안다. 그래도 지금 해수부 문제에서 이 장관 이상은 없다고 믿는다. 그가 지식이 많아서가 아니다. 그의 뼛속까지 파고들었을 절절함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고난의 40여일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사고 초기에 실종자 가족들이 절규할 대상은 이 장관밖에 없었다. “실종자 명단도 모르느냐” “최선을 다한다더니 거짓말 말라”는 분노가 쏟아졌다. 멱살을 잡히고 물세례도 받았다. 화장실에도 못 간 채 감금 아닌 감금도 당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이 장관 면전에서 대통령에게 “여기 있는 해수부 장관을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당장 쫓아내라는 요구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실종자 가족들이 이 장관에게 지르던 고성이 사라졌다. 가족들이 “너 때문에 우리 애가 죽었다”고 소리치면 이 장관은 “예, 제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가족들을 돕는 목사 한 분은 “분노를 온몸으로 받으면서도 곁을 떠나지 않으니까 가족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사실 이 장관은 세월호 사건의 직접 책임자라고 할 수도 없다. 그는 사고 때 장관이 된 지 두 달도 안 됐다.
사고 이후 단 한 번도 현장을 떠나지 않은 채 간이침대에서 자고 김밥을 먹으면서 가족들의 절규와 현장의 혼란·혼선을 온몸으로 겪은 사람이 이 장관 말고 누가 있을까. 그만큼 해양 정책의 문제를 절감하고 자책하고 고민하고 고뇌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헬스장에서 키운 근육과 중노동으로 만들어진 근육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장관 한 사람이 세상의 절망·절박·고통·혼란이 다 모인 현장에서 느끼고 배우고 깨달은 것을 전부 허공으로 날려버리려 하고 있다. 그의 책임이 뭔지 따지지도 않는다. 그냥 보기 싫으니 다 나가라는 것이다. 이 장관이 머리만이 아니라 가슴으로도 체득한 것은 국가의 재산이다. 누구도 이것의 소중함을 모른다.
이 장관이 또 바뀌면 해수부 장관은 17년여 만에 20명째가 된다. 세월호 사고는 이 비정상적 장관 교체가 한 원인이라고 확신한다. 세월호의 위험 요소는 한국선급과 해운조합이 막아야 했다. 두 단체는 해수부 관할이지만, 역대 해수부 장관 중에 이들의 문제점을 파악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1년 장관’이 산하기관도 아닌 주변 작은 단체에 신경 쓸 겨를이 있었다면 그게 놀라운 일이다.
해수부 직원들은 이번 장관 때 밉보여도 금방 올 다음 장관 때 잘 보이면 된다. 부처에 기강이 제대로 설 수 없다. 이런 곳에서 누가 한국선급이나 해운조합에 있는 전직 선배들에게 싫은 소리 하면서 규정을 따지고 현장 확인까지 하겠는가. 1년짜리 뜨내기 장관보다 평생 같이 살아갈 직장 선배, 동료, 부하가 더 무섭고 중요한데 왜 그러겠는가.
기업체 사장이 해수부 장관처럼 바뀌었다면 그 기업은 벌써 망했을 것이다. 그 기업이 망하지 않고 남아 있다면 반드시 직원들이 연루된 대규모 사고가 터질 것이다. 세월호 사건이 바로 그런 사고다.
중국 학자가 한국 학자에게 물었다고 한다. “한국은 왜 그렇게 장관을 바꾸느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 학자는 “우리는 1년에 한 번 정도 그걸로 온 국민이 화를 푼다”고 답했다고 한다. 농담만은 아니다. 큰일이 있을 때 사람들의 화풀이 대상이 돼 단체로 쫓겨나는 것, 어쩌면 그것이 한국 장관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일지 모른다.
장관 개인이 직접 연루된 것이 아닌 사건·사고로 장관이 교체되는 것은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이다. 미국 CIA는 이스라엘 정보기관으로부터 상당히 구체적인 정보를 통보받고도 9·11 테러를 막지 못했다. 그래서 4000명 가까이 희생됐다. 그래도 CIA 국장을 3년이나 더 일하게 했다. 바꾸는 것보다 그 경험을 살리는 것이 국익에 더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미국만이 아니다. 선진국이 다 이렇게 한다. 한국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우리도 이제는 달라졌으면 한다. 개각으로 나아지는 게 있다면 지금쯤 우리는 세계 최고 선진국이 돼 있어야 한다. 습관성 개각은 총리·장관 후보자들의 스캔들과 낙마만 양산하고 있다.
세월호 현장에서 이 장관은 뒷모습만 봐도 안다고 한다. 늘 같은 검은 점퍼에 하얗게 바랜 머리카락이면 이 장관이다. 그는 오늘도 수염도 깎지 않고 대책 회의를 하고, 실종자 가족에게 브리핑할 것이다. 실종자 가족들은 “장관님이 가면 실종자가 나오니 바지선에 좀 가달라”는 부탁도 한다.
지금 그에게 장관을 더 하라고 하면 손을 저을 것 같다. 그래도 강제로라도 더 일하게 해야 한다. 그가 이 사태를 겪으며 얻게 된 모든 것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짜내게 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이 장관을 유임시킨다면 역사에 없던 결단이다. 우리 사회는 그날 이전과 이후가 같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최소한 해수부는 진실로 무언가 달라질 것이다. 양상훈 조선일보 논설주간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