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시술로 아시아인 ‘심장’ 살린다
고려대 안암병원 흉통클리닉, 몽골·미얀마·스리랑카 의료지원
지구상 모든 인간의 행복은 가슴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주먹보다 조금 큰 심장, 그 울림에서 시작된다. 미약한 심장 울림과 원활치 못한 순환으로 고생하는 많은 아시아인들의 행복을 되찾아주는 일에 한국 의료진들이 앞장섰다. 고려대 안암병원 흉통클리닉과 (사)심혈관건강증진연구원(Cardiovascular Welfare & Research Institute, 이사장 임도선 고려대 의과대학 순환기내과 과장)이 그들이다.
연구원은 2011년부터 의료환경이 취약한 몽골, 미얀마, 스리랑카에서 심혈관 질환 중재시술(intervention procedure) 컨설팅을 해오고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 흉통클리닉팀은 지난해 12월 스리랑카 정부 초청으로 콜롬보 스리랑카 국립병원 심혈관센터에서 심혈관 중재시술 컨설팅을 실시했다. 해외 의료인 양성과 진료 지원활동을 벌여온 연구원은 2011년 3월 고려대 안암병원 심혈관센터에서 치료 받은 환우와 가족, 심혈관 의료 관련 기업들이 함께 설립했다.
지난 2012년 12월 고려대 안암병원 심혈관센터에 입원한 몽골인 환자 처이질수렌(67·남) 씨는 15년 전부터 고혈압, 대사증후군 치료를 받아오다가 심근경색증 진단을 받았다. 심혈관 가운데 좌천하행동맥이 막혀 스텐트(stent) 이식을 통해 심혈관을 뚫어 주는 시술을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심장 혈관 곳곳에서도 중증 동맥경화가 발견됐다. 혈관확장제와 항혈소판제를 이용한 약물치료가 병행됐다. 몽골에서는 의료환경이 열악해 수술은 엄두도 못 냈다고 한다.
각국 전공의 10명 고려대병원서 수련
처이질수렌 씨가 한국에 와서 건강을 되찾게 된 것은 2012년 7월 고려대 안암병원 흉통클리닉 의료봉사팀이 몽골 샤스틴병원(Mongolian National Shastin the Third Hospital) 초청을 받아 몽골에서 최초로 ‘경피적 승모판확장성형술(Percutaneous mitral balloon valvotomy)’을 시행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고려대 의료원(KUMC)-몽골 순환기학회 심포지엄을 열어 현지 의사 200여 명에게 최신 심장질환 치료법을 강연했다.
고려대 안암병원 흉통클리닉팀은 오는 6월 연구원 후원으로 5번째 몽골 의료봉사팀을 보낼 예정이다. 의료봉사팀을 이끌고 있는 임도선 교수는 “육식 위주 식습관으로 심장병 발병률이 높은 몽골에서는 심근경색에 걸리면 치료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거의 없다. 열악한 의료환경을 감안해 몽골 내 심장병 환자 치료와 현지 의사들을 위한 시술법 교육, 컨설팅을 지속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몽골에 이어 미얀마 양곤종합병원(Yangon General Hospital)에서도 2012년 12월 심혈관 중재시술 컨설팅이 실시됐다. 임 교수와 홍순준 교수 집도로 시술이 진행됐다. 심혈관이 막혀 심근경색으로 사경을 헤매던 코툰 민 소에(35·남) 씨는 수술 후 몇 시간 만에 얼굴색이 바뀌고 활력이 되돌아왔다. 그는 심장 좌측 동맥 혈관의 70~80%, 왼쪽 부위 혈관 2개가 막혀 언제 심근경색이 발병할지 모를 상태였다. 홍 교수는 손목 부위를 마취한 뒤 손목 요골동맥으로 심도자(catheter)를 삽입한 뒤 조영제를 투입해 가며 막힌 심혈관까지 접근해 스텐트를 끼웠다. 손목 요골동맥을 통한 스텐트 삽입 수술은 미얀마 의사들에게는 생소한 의술이었다. 이 때 환자 8명이 무료 시술을 받았다.
인구 6028만 명인 미얀마는 850개 병원에, 총 병상수 8만300개로 의료시설이 수요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 의사도 인구 10만 명 당 약 40명, 치과의사 4명으로 부족하다. 매년 부유층 2만여 명이 태국, 싱가포르로 의료관광을 떠나고 있다. 국민 의료비 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3% 미만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평균 수명은 60세 안팎이다. 당시 의료봉사에는 임 교수와 홍 교수 외 김은희 수간호사, 강준원 방사선사, 김태연 간호사 등이 참여했고,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이 현지를 찾아와 지원했다. 의료봉사팀은 올 3월 다시 미얀마를 방문해 세 번째 봉사활동을 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스리랑카에서 심혈관 중재시술 컨설팅을 실시했다. 임 교수와 유철웅 교수, 강준원·이종상 방사선사가 스리랑카 국립의료원(National Hospital of Sri Lanka)에서 의료진 50여 명을 상대로 최신 심장질환 치료시술 경향을 강의했다. 만성 폐색병변 환자 시술도 함께 시연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활동 의사수는 인구 1000명 당 3.2명이다. 한국도 2명 수준으로 평균에 못 미치는데, 스리랑카는 0.7명밖에 되지 않는다. 스리랑카 국립의료원에서 심혈관 중재수술을 처음 시도한 바지라 박사(Dr. Vajira)는 의료기기 부족과 경제사정 등으로 인해 많은 만성 폐색병변 환자들이 시술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임 교수와 유 교수를 4월 중 스리랑카 국립의료원에서 시행될 시술 생중계와 순환기학회에 초청했다.
아시아 각국 의료진이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수련의로 연수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됐다. 몽골, 말레이시아, 인도, 중국, 미얀마,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등에서 온 심혈관 질환 전문의와 수련의 10명이 고려대 안암병원 심혈관센터 흉통클리닉에서 짧게는 3달, 길게는 1년 간 선진 심혈관 중재시술을 배웠다.
“의료취약국 돕기, 남의 일 아냐”
고려대 안암병원 흉통클리닉에서는 혈관 조영술 2300여 건, 스텐트를 삽입해 좁아진 혈관을 넓혀주는 혈관 성형술 830건 등 연간 3000건 이상의 혈관 중재시술을 하고 있다. 표준진료지침(critical pathway)을 마련하고 스마트폰을 통한 24시간 심혈관 전문의 연결로 심혈관이 막힌 환자가 병원에 도착해 치료받는 시간을 90분 이내(건강보험심사평가원 권장 치료시간 120분)로 실현하는 등 국내 최고 심혈관센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사)심혈관건강증진연구원과 함께 미국, 일본, 중국, 인도, 몽골 등의 심혈관 질환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심근허혈 국제 심포지엄(Myocardial Ischemia Symposium)을 2012년부터 매년 주최해왔다. 올해는 지난 3월 6~7일 서울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열렸다. 심포지엄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임도선 교수는 “심근경색과 협심증 같은 허혈성 심장질환 치료 분야는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의료환경이 취약한 아시아 국가의 심장병을 앓는 이들을 돕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