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음] 코리아나뉴스 정채환 대표 영전에

정채환 선배!

지난 29일 아침, 제주도 출장 중 플로리다 <한겨레저널> 이승봉 대표의 이메일을 확인하고는 가슴이 갑자기 멍해 왔습니다. 그리고?<연합뉴스>에 선배의 부음 소식이 실렸더군요.

“재미언론인 정채환씨가 28일 오전(이하 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LA)에서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65세. 고인은 고려대를 나와 외환은행에서 근무하다 1981년 미국으로 이민해 1995년 SAT한국어진흥재단을 설립한데 이어 1998년 캘리포니아주와 네바다주 동포들을 위한 시사 주간지 <코리아나뉴스>를 창간했다. 2004년에는 전세계 교포사회를 연결하는 한인언론 네트워크인 세계한인언론인연합회를 창립해 1대ㆍ2대 회장을 지냈으며, 미주신문인협회 이사장도 맡아왔다. 장례식은 30일 오후 7시 LA 한국장의사에서 엄수된다. ☎1-702-443-1777”

지난 5월?선배가 다시 수술을 받으신 후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가시니 눈앞이 희미해 옵니다. 그때 선배께서 띄엄띄엄 제게 말씀하시며 나눈 몇 마디가 이승에서의 마지막 대화가 되다니요?

10년 전, 정 선배와 맺은 인연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2002년 11월 제가 한국기자협회 회장 시절 시작한 재외동포기자대회는 선배의 리더십과 희생이 없었다면 재외동포언론인연합회로 확대 개편되는 것은 물론, 금년까지 11차례나 성공적으로 이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지난 5월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행사에 정 선배가 안 계셔 얼마나 아쉬웠는지요?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것이 정 선배 덕택이라 생각하니 얼마나 뿌듯하던지요!

정채환 선배.

재외동포기자들의 헌신으로 지난 4월11일엔 한국 선거 사상 첫 재외동포들의 참정권 행사가 가능했던 것, 그리고 재외한인 언론인들이 매년 한국 안팎에서 저널리즘 발전과 고국의 미래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된 것도 정 선배의 고뇌와 희생 덕택이지요.

존경하는 정채환 선배.

2006년 여름 한창 녹음이 짙어진 한겨레신문 옥상 정원에서 선배를 인터뷰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선배는 한국에 올 때마다 아시아기자협회 사무실에 들러 격려해 주었지요. 한 손엔 양주, 다른 한손엔 선배의 따스한 손길을 내밀면서.

정 선배, 왜 이리 급히 하늘로 가셔야했나요?
정 선배, 생전에 “나 죽으면 장기는 필요한 사람에게 주고, 화장해 달라”고 하셨다죠? 선배는 이미 전세계 재외동포언론인들에게 맑은 영혼과 올바른 정신을 전해주셨어요. 지난 3년 암투병의 고통 속에서도 코리아나뉴스에 칼럼쓰기를 멈추지 않은 투혼을 저희들이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정 선배가 저는 정말 좋은데, 꼭 한번 다시 뵙고 싶은데, 왜 그리 하늘 길을 재촉하셨는지요?

채환 형님. 그래도 보내긴 보내드리렵니다. 한번 만난 인연도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진리 아닌 진리를 믿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헤어져도 다시 꼭 만난다는 “회자정리 이자정회”를 지금처럼 절실하게 받아들인 적이 얼마나 될는지요?

정채환 선배, 영면 하소서.

*추신=정 선배 제가 2006년 6월2일자 <한겨레신문>에 쓴 선배 인터뷰 기사예요. “국외 진보언론 사이트 접속을 허하라”라는 제목으로 실렸지요. 바로 엊그제 일 같군요.

<정채환(59·미 LA 코리아나뉴스 발행인) 재외동포언론인협의회장은 정부의 일부 인터넷사이트 차단 조처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한국기자협회 주관으로 25일 시작해 2일 막을 내리는 제5회 재외동포기자대회에 참석중인 그는 5공초 군사정부에 염증 나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때가 자꾸 생각난다고 했다.

“외환은행 과장 때였습니다. 유신에 이어 군사독재가 계속되니 가슴이 탁 막혀옵디다. 친구소개로 당시 김태홍 기자협회장을 숨겨준 사실이 탄로나 계엄당국 시달림을 받았어요. 숨소리 발소리도 제대로 못내는 세상, 떠나기로 한 겁니다.”

그때가 81년이었다. 고려대에서 통계학을 전공해 이민 초 보험, 부동산에 손대 제법 돈을 모았다. 그러다 SAT진흥재단을 설립해 초대이사장을 맡았다. 이민 15년만의 일이었다. 엘에이지역에서 한인들이 인종차별 받는 것을 보면서 언론사 경영을 결심하고 1998년 주간 <코리아나뉴스>를 창간했다. 그런 그가 인터넷 최강국인 대한민국 정부가 벌써 1년 반 넘게 미국의 진보성향 <민족통신>과 일본 총련의 <조선신보> 사이트를 막는데 반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정 회장이 이번 대회에 참가한 70여 재외동포 언론인과 31일 당국에 ‘사이트 해제 요청문’을 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남북정상들이 만나고 연간 수만명이 왕래하면서 언론사 사이트를 차단하다니 참 이해가 안돼요.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사회로 알려진 북한과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안타깝기만 합니다.”

지난해 6월 임기 2년의 재외동포언론인협의회 초대회장에 뽑힌 그는 “이런 일 하라고 저를 회장에 앉힌 것 아니겠느냐”며 “국내와 동포사회를 연결하는 매개체인 동포언론에 대한 정부와 국민들 관심이 절실하다”고 했다.

그는 “세계에 불고 있는 ‘한류 열풍’ 확산에 동포언론 역할이 크다”며 “대한민국 국적의 재외동포와 재외국민에게 적어도 대통령 선거권은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주재국과 본국 사이의 외교관계에 문제가 없는 한 전향적으로 추진하는 게 재외동포 정체성 확립과 한민족 네트워크 실현에도 보탬이 된다”며 “정치권은 자신들의 유·불리를 계산해 투표권을 줄까말까 하지 말고 대승적으로 풀어가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재외국민 2세가 기초 군사훈련으로 병역의무를 대체할 일종의 ‘병역특례제’ 도입이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현행 병역법은 재외동포 2세의 국적이탈을 부추기고 정체성 확립에 혼란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말문이 트인 듯 정 회장의 바람은 계속됐다. “해외 동포언론, 지금처럼 방치해선 안됩니다. 외국서 한글로 발행되는 신문이나 방송은 동포 3, 4세들의 최고 한글 교재입니다. 이 교재가 형편 없다고 상상해 보십시요. 동포 3, 4세 가운데 우리말 제대로 읽고 쓰는 애들 없습니다, 없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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