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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장미 한 다발’ 이수명
꽃집 주인이 포장을 했을 때 장미는 폭소를 터뜨렸다. 집에 돌아와 화병에 꽂았더니 폭소는 더 커졌다. 나는 계속해서 물을 주었다. 장미의 이름을 부르며. 장미는 몸을 뒤틀며 웃어댔다. 장미 가시가 번쩍거리며 내게 날아와 박혔다. 나는 가시들을 훔쳤다. 나는 가시들로 빛났다. 화병에 꽂힌 수십, 수백 장의 꽃잎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나는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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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이렇게 나는 오늘도’ 김동리(1913~1995)
오늘 아침엔 월급 봉투로 연탄을 들이고 어저께는 문인협회의 위원에 뽑혔습니다 내일엔 다방에 나가 악수를 널어 놓고 저녁때엔 어느 편집장과 술을 마실 예정입니다 지난해엔 둘째 아이의 임파선 수술을 보았고 이달엔 ‘섰다’에 미쳐 밤을 새고 다닙니다 시는 어려서부터 일찍이 손을 대인 것 소설은 약관에 이미 당선이 되었지만 아직 어느 나무 그늘 아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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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2022 평창영화제] 윤혜성 감독 ‘현수막’···실종 자녀 가정의 이면 그려
현수막 The Banners Korea | 2022 | 25min | Fiction | color | ? 가족은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이면서도 무한 변주가 가능한 테마. <현수막>은 우리 주변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 실종 자녀를 둔 가정의 이야기를 통해 그 이면에 숨겨져 있던 사연을 끄집어낸다. 15년 전에 사라졌던 신애가 돌아왔다. 이미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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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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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바람이 바뀌었다’ 박노해
천둥번개가 한 번 치고 시원한 빗줄기가 내리더니 하루아침에 바람이 바뀌었다 풀벌레 소리가 가늘어지고 새의 노래가 한 옥타브 높아지고 짙푸르던 나뭇잎도 엷어지고 바위 틈의 돌단풍이 붉어지고 다랑논의 벼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검붉게 익어오고 산국화가 꽃망울을 올리고 하늘 구름이 투명해지고 입추가 오는 아침 길에서 가늘어진 눈빛으로 먼 그대를 바라본다 조용히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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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오늘의시] ‘빗물’ 황효진
거미줄에 포획되어 공중에 진주 목걸이를 펼쳤다 그 안에 천지(天地)를 오롯이 담았다 진주목걸이, 극성(極性)의 분자들이 잃어버린 빈쪽을 찾아 결합한 표면장력의 산물이다 극성분자, 영롱한 세상의 원인자다 그 극성,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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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시] ‘강우’降雨 김춘수
조금 전까지 거기 있었는데 어디로 갔나, 밥상은 차려놓고 어디로 갔나, 넙치지지미 맵싸한 냄새가 코를 맵싸하게 하는데 어디로 갔나, 이 사람이 갑자기 왜 말이 없나, 내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온다. 내 목소리만 내 귀에 들린다. 이 사람이 어디 가서 잠시 누웠나, 옆구리 담괴가 다시 도졌나, 아니 아니 이번에는 그게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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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시] ‘사람’ 박찬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생각이 무슨 솔굉이처럼 뭉쳐 팍팍한 사람 말고 새참 무렵 또랑에 휘휘 손 씻고 쉰내 나는 보리밥 한 사발 찬물에 말아 나눌 낯 모를 순한 사람 그런 사람 하나쯤 만나고 싶다 – 시집, ‘화염길’, 민음사,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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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물과 빛이 끝나는 곳에서’ 이성복(1952~ )
물과 빛이 끝나는 곳에서 종일 바람이 불어 거기 아픈 사람들이 모래집을 짓고 해 지면 놀던 아이들을 불러 추운 밥을 먹이다 잠결에 그들이 벌린 손은 그리움을 따라가다 벌레먹은 나뭇잎이 되고 아직도 썩어가는 한쪽 다리가 平床 위에 걸쳐 누워 햇빛을 그리워하다 물과 빛이 끝나는 곳에서 아직도 나는 그들을 그리워하다 발갛게 타오르는 곤충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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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반딧불’ 김영무(1944~2001)
서산마루에 초승달 희미한 호롱불처럼 걸려 있어 깜깜하던 하늘 전체가 아늑한 오두막 되면 등잔에 기름 떨어져 불도 못 켜고 가슴만 졸이던 개똥벌레 한 마리 비로소 마음속에 반딧불 밝히고 길을 찾는다 – 시집, ‘가상현실’, 문학동네, 2001 https://youtu.be/Ln5PjfAiJC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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