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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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힘없는 정의

    대통령이 될 뻔했던 이회창 후보의 자서전을 읽었다. 직접 그가 쓴 원고들 중에는 의미를 던지는 에피소드들이 있었다. 그가 고교 시절 길을 가는 데 깡패들이 여학생을 희롱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덩치가 왜소하고 싸움을 할 줄도 몰랐다. 그는 깡패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했다가 실컷 두들겨 맞고 코뼈까지 부러졌다. 자서전에서 그는 “힘이 받쳐주지 않는 정의는 정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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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미신과 신앙

    변호사를 하다 보니까 무당도 만나고 승려나 목사, 신부 그리고 민족종교의 도인 등 다양한 종교인들을 만나곤 했다. 이단이라고 하는 단체의 교주도 만나고 때로는 귀신이 들렸다는 사람들도 봤다. 직업상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경전을 보기도 했다. 그들은 대체로 영적 세계와 다양하게 연관을 맺고 있는 것 같았다. 살인죄로 재판을 받는 남자 무당을 변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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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그날 묵호역에서 생긴 일

    묵호역에서 밤 기차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옛 정취가 남은 작은 역이었다. 묵호역에 있을 때면 문학 속의 작은 시골역이 떠오른다. 늙은 역장이 추운듯 손을 부비면서 창가로 다가가 소리 없이 떨어져 쌓이는 송이눈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다. 냉기가 서린 역사 안에는 몇명의 승객이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역장은 구멍이 뚫린 무쇠난로에 톱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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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젊은 날 추구했던 것들

    실버타운 식당에서 노인들이 소근대고 있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이 한밤중에 죽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80대 노인이 이런 말을 했다. “요양원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갈 수 있다면 행복한 거요.” 옆에 있던 그의 다른 노인이 맞장구쳤다. “젊어서는 갑자기 죽는 게 사건이었지만 이제는 그건 하나의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긴긴 노년의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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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감옥 안 강도가 일깨워준 삶의 철학”

    변호사인 나는 남들이 혐오하는 파충류 같은 존재들을 검은 지하 감방에서 종종 만난다. 마치 의사가 흉하게 부서진 환자를 보듯 말이다. 오래 전 청송교도소에서 만난 한 강도범의 얘기를 쓰려고 한다. 180cm의 큰 키에 근육질의 그는 교도소 죄수 1800명의 대장이었다. 한밤 중에 칼을 들고 그가 내 방을 찾아왔다면 아마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낮에 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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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아름다운 이별

    친구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했었다. 주례가 독특한 말을 하는 게 귀에 들어왔다. “문을 열고 함께 집에 들어왔을 때 신랑은 현관에서 아내의 신발을 돌려놓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부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소리 없는 아내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의미했다. 며칠 전에는 친구가 카톡으로 이런 부고를 알려왔다. ‘아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네. 정말 비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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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경찰청장의 죽음…그를 구속시켰던 검사는 무얼 생각할까?

    며칠 전 경찰청장을 했던 그의 부고를 받았다. 그는 한(恨)을 품고 죽었을 것 같다. 그는 자기를 수사했던 검사를 고소했다. 그 수사는 불이 붙지 못하고 지지부진 하다가 꺼져버렸다. 그의 한(恨)은 변호사였던 나만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충의 내용은 이렇다. 그는 관직을 마친 후 한 선거에 입후보자로 등록했다. 여론조사 결과 당선이 틀림없을 정도였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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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탈주범 신창원을 위한 변명…”한 인간을 보았다”

    부장판사를 하다가 변호사를 개업한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판사를 할 때는 죄인만 보였는데 지금은 인간이 보여. 그 가족이 우는 것도 보이고 말이야. 변호사로 교도소에 가서 오랫동안 얼굴을 맞대고 얘기하니까 마음이 흘러가는 거야. 내가 다시 판사를 한다면 예전같이 그렇게 하지는 않을 거야. 명절이면 이왕이면 그 전에 석방 시켜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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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학폭 출신의 고해성사

    중학교 시절 나는 불량학생이었다. 담배도 배웠고 술도 마시기 시작했다. 태권도와 유도도장을 나갔고, 학교에서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칼을 맞고 무기정학 처분을 받기도 했다. 억울했지만 그동안 나의 불량한 행적에 대한 결과였다. 나에게 폭행 당한 몇 명을 지금도 기억한다. 만날 수 있으면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사과하고 싶다. 그런 기회가 있었는데 때를 놓쳤다. 가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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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남대문시장 떡볶이 ‘여장부 할머니’

    위기의 순간 남들을 위해 자기를 포기할 수 있는 사람 변호사를 하면서 40년 가까이 죄인들과 만났다. 종종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판사 앞에서는 반성했다고 하면서 용서해 달라고 해요. 그런데 그건 거짓말이예요. 나는 범죄를 저질러도 양심이 아프지를 않아요. 남들은 아프다는데 나는 왜 그렇죠?” 그렇게 말하는 그는 진심이었다. 악마가 스며들어 양심을 제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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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나의 시선이 처음 성경책에 꽂혔을 때

    20대 중반 어느 날 밤, 나는 하얀 눈이 두껍게 덮인 휴전선 산길을 혼자 걷고 있었다. 수은주가 영하 20도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그 무렵 나의 내면도 차디찬 고드름이 가득 매달려 있었다. 희망이 꺾인 채 군대에 끌려와 있다는 절망감 때문이었다. 세상은 불공평했다. 주위를 보면 배경이 있는 집 아들이 군대에 온 경우는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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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지금의 나는 진짜 나일까?”

    아파트에서 은거하며 혼자 사는 70대 중반의 노인을 안다. 그는 모든 걸 내면에 들어와 있는 영에게 묻고 나서 행동한다고 했다. 며칠 전 그의 여동생이 병원에 있는 사실을 내가 우연히 먼저 알고 그에게 전화를 해주었다. 그는 의외로 담담했다. 그는 속에 있는 영에게 물어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는 그렇다고 냉정하거나 비도덕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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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괜찮은 불륜

    변호사사무실을 오랫동안 하면서 수많은 사랑에 관한 사건을 경험했다. 그중에서 결혼이 무엇인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 사건 하나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한 언론인이 방송에 출연했다가 사회를 보던 여성 아나운서와 사랑에 빠졌다. 그들은 유부남과 유부녀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은밀한 만남이 발각됐다. 남편은 여성 아나운서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그리고 그 언론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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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늙음을 위한 변명

    사람들이 파도같이 오가는 지하철역 계단 가운데 한 노파가 쭈그리고 앉아서 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 표정에는 살아온 삶이 투명한 배경 화면처럼 배어있는 느낌이다. 어느 날 노파가 독오른 얼굴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일렀다. “글쎄 저 년이 나보고 젊어서 뭘 했길래 이렇게 사느냐고 그래요. 그래 야 이 년아 너도 늙어서 나같이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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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우즈벡에서 별이 된 ‘어린왕자’

    그가 타슈겐트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떨어지는 낙엽은 자리를 가리지 않는 것일까. 그가 머나먼 생소한 나라에서 끝을 맺었다. 그가 눈을 감을 때 혹시 그 여자가 옆에 있었을까. 그는 불운한 천재였다. 해가 떠오르기 전에 먹구름이 끼었던 인생이었다. 어느날 그는 다섯살 때쯤 엄마가 자기를 버렸다고 피를 토해내듯 말했다. 그날 엄마 손을 잡고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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