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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엄상익의 시선] 학폭 출신의 고해성사
중학교 시절 나는 불량학생이었다. 담배도 배웠고 술도 마시기 시작했다. 태권도와 유도도장을 나갔고, 학교에서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칼을 맞고 무기정학 처분을 받기도 했다. 억울했지만 그동안 나의 불량한 행적에 대한 결과였다. 나에게 폭행 당한 몇 명을 지금도 기억한다. 만날 수 있으면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사과하고 싶다. 그런 기회가 있었는데 때를 놓쳤다. 가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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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엄상익 칼럼] 남대문시장 떡볶이 ‘여장부 할머니’
위기의 순간 남들을 위해 자기를 포기할 수 있는 사람 변호사를 하면서 40년 가까이 죄인들과 만났다. 종종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판사 앞에서는 반성했다고 하면서 용서해 달라고 해요. 그런데 그건 거짓말이예요. 나는 범죄를 저질러도 양심이 아프지를 않아요. 남들은 아프다는데 나는 왜 그렇죠?” 그렇게 말하는 그는 진심이었다. 악마가 스며들어 양심을 제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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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엄상익 칼럼] 나의 시선이 처음 성경책에 꽂혔을 때
20대 중반 어느 날 밤, 나는 하얀 눈이 두껍게 덮인 휴전선 산길을 혼자 걷고 있었다. 수은주가 영하 20도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그 무렵 나의 내면도 차디찬 고드름이 가득 매달려 있었다. 희망이 꺾인 채 군대에 끌려와 있다는 절망감 때문이었다. 세상은 불공평했다. 주위를 보면 배경이 있는 집 아들이 군대에 온 경우는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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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엄상익 칼럼] “지금의 나는 진짜 나일까?”
아파트에서 은거하며 혼자 사는 70대 중반의 노인을 안다. 그는 모든 걸 내면에 들어와 있는 영에게 묻고 나서 행동한다고 했다. 며칠 전 그의 여동생이 병원에 있는 사실을 내가 우연히 먼저 알고 그에게 전화를 해주었다. 그는 의외로 담담했다. 그는 속에 있는 영에게 물어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는 그렇다고 냉정하거나 비도덕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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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엄상익의 시선] 괜찮은 불륜
변호사사무실을 오랫동안 하면서 수많은 사랑에 관한 사건을 경험했다. 그중에서 결혼이 무엇인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 사건 하나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한 언론인이 방송에 출연했다가 사회를 보던 여성 아나운서와 사랑에 빠졌다. 그들은 유부남과 유부녀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은밀한 만남이 발각됐다. 남편은 여성 아나운서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그리고 그 언론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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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엄상익 칼럼] 늙음을 위한 변명
사람들이 파도같이 오가는 지하철역 계단 가운데 한 노파가 쭈그리고 앉아서 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 표정에는 살아온 삶이 투명한 배경 화면처럼 배어있는 느낌이다. 어느 날 노파가 독오른 얼굴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일렀다. “글쎄 저 년이 나보고 젊어서 뭘 했길래 이렇게 사느냐고 그래요. 그래 야 이 년아 너도 늙어서 나같이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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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엄상익 칼럼] 우즈벡에서 별이 된 ‘어린왕자’
그가 타슈겐트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떨어지는 낙엽은 자리를 가리지 않는 것일까. 그가 머나먼 생소한 나라에서 끝을 맺었다. 그가 눈을 감을 때 혹시 그 여자가 옆에 있었을까. 그는 불운한 천재였다. 해가 떠오르기 전에 먹구름이 끼었던 인생이었다. 어느날 그는 다섯살 때쯤 엄마가 자기를 버렸다고 피를 토해내듯 말했다. 그날 엄마 손을 잡고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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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엄상익 칼럼] 정치거물 앞에서 무력한 판사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판사는 결정문에서 그가 개발 사업에 관계가 있었다고 볼만한 상당한 의심이 있다고 했다. 유죄의 심증이다. 위증교사 혐의도 소명됐다고 했다. 증거인멸을 시도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판사는 당대표이고 직접 증거가 부족해 구속하지 않는다고 했다. 담당 판사의 결정문은 세상의 눈과 몸 보신 사이를 법기술적으로 비겁하게 빠져나간 것 같다. 일반 형사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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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엄상익 칼럼] 성공의 진짜 비결
사업을 하면서 갑자기 부자가 된 고교 동창이 있다. 고급 별장에 동창들을 초대하기도 하고, 사업이 어려운 친구에게 큰 돈을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하기도 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학문을 하는 친구들의 연구비도 지원하고 사회단체에도 큰돈을 기부하곤 했다. 고등학교 시절 그와 대화를 나눠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나는 자그마하던 그가 그냥 모범생이었던 것만 어렴풋이 기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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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엄상익 칼럼] 나의 자화상을 물끄러미…
법무장교 동기생 중의 한 사람이 암에 걸렸다. 그는 나이를 먹었어도 열심히 중국어를 공부했다. 그는 죽기 얼마 전 동기생들에게 사과 한 상자씩을 택배로 보냈다. 마지막 선물이었다. 그가 죽은 후 문 앞에 덩그라니 남은 사과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삶을 마치고 떠나간 후 그의 빈자리 같았다. 마음이 애잔했다. 법무장교 훈련 시절 같은 내무반에서 생활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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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산업
[엄상익의 시선] 25년만에 만난 출판사 여사장과 ‘새로운 자본주의’
묵호역 플랫폼 주위는 엷은 어둠이 출렁거렸다. 밤 기차를 타려는 승객들이 군데군데 서너명씩 서있었다. 그들 사이에 내가 묵고 있는 실버타운의 공동식당을 담당하고 있는 그녀가 끼어 있었다. 시골출신인 그녀는 열살부터 밥을 지어 아버지가 일하는 밭으로 가지고 갔었다고 했다. 그렇게 밥짓는 일과 인연이 되어 나이 칠십이 넘은 지금까지 평생 밥 짓는 일을 해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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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엄상익의 시선] 죽는 날까지 하고 싶은 일
화면에 유명한 여성 연극배우가 나와 앉아있었다. 그녀는 젊은 시절의 발랄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었다. 뇌종양으로 큰 수술을 하고 죽음 직전까지 갔다 왔다고 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세월에 풍화되는 존재인 것 같다. 죽음을 앞 두고 있는 듯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일주일을 살아도 나답게 살고 싶어요. 무대 위의 나를 기다리는 관객들에게 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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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엄상익 칼럼] 나만 불행한 것 같을 때
그 모자가 다급하게 한 번만 더 돈을 꿔 달라고 했다. 사채업자에게 돈을 얻었는데 죽을 지경이라고 했다. 이도저도 안 되면 자살을 하겠다고 했다. 그 모자는 우연히 알게 된 의뢰인이었다. 미용사였던 엄마가 사채업자에게 걸려들어 어린 아들과 도망 다녔다. 돈이 없어 찜찔방을 전전했다. 아들에게는 라면을 사먹이고 엄마는 물에 불린 건빵 한 봉지로 끼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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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엄상익 칼럼] 나라가 바로 되려면…
화가 김씨와 박씨는 서로 다른 유파에 속해 있어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어느 해 김씨가 미술대전에 작품을 냈는데 마침 박씨가 심사위원장이 되었다. 박씨는 김씨의 대선배였다. 심사는 막바지에 이르러 마침내 최종심이 진행되고 있었다. 심사위원장인 박씨의 낙점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는 순간인 것이다. 박씨는 문득 김씨의 작품 앞에 멈추어 섰다. 순간 박씨의 얼굴이 벌레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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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엄상익 칼럼] ’50억 클럽’과 언론사 사장과 중수부장, 그리고 ‘왜?’
언론이 부장검사와 카지노업자와의 유착관계를 연일 보도하고 있었다. 그 검사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대학재학 중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30대에 지청장이 되어 있었다. 그는 출세가 보장된 길을 가고 있었다. 그는 자기 인생을 파괴할 수 있는 뇌물을 받을 사람이 아니었다. 어느 날 저녁 레스트랑에서 그의 얘기를 들었다. “집사람과 친한 호텔 사장 부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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