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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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여행길에서 만난 정신과 의사

    바닷가의 밤이 깊어가고 있다. 시계 바늘이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다. 창문은 짙은 어둠에 젖어 검은색 거울이 된다. 그 거울에 백발의 한 노인이 보인다. 돋보기를 코에 걸치고 있다. 나의 모습이다. 아직 잠이 오지 않는다. 나는 책상 위에 놓인 오래 전 메모들을 들추어 보고 있다. 한밤 중에 소가 낮에 먹은 것들을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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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위대한 코미디언들···구봉서·김희갑·배삼룡…

    우리 세대가 어리던 시절 어른인 그를 ‘막둥이’라고 놀리듯이 불렀다. 희극배우로 불리던 그는 영화 속에서 항상 모자라는 인간이었다. 단체행진을 할 때 남들이 ‘좌향좌’ 할 때 혼자서만 ‘우향우’하고 걸어갔다. 눈알이 굴러나올 듯 눈을 크게 뜨고 눈동자를 한 가운데로 몰아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했다. 볼에 바람을 가득 넣어 얼굴을 풍선같이 부풀려 사람들을 웃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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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두 가지 평화

    변호사를 처음 할 때 스승 같던 변호사가 있었다. 친구의 아버지였다. 평생 변호사를 해 온 그 분이 이런 말을 했다. “변호사는 말이야 사건을 맡은 의뢰인의 형이 선고되기 전날 밤 마음 졸이는 고통만 해도 받은 돈 값은 다해주는 것 같아” 결과를 놓고 그만큼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이라는 말이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이나 재산을 다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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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아이들을 왜 학교 보내고 공부 시키는 것일까?”

    일진을 소재로 한 영화를 봤다. 고등학교의 교실 권력은 주먹과 조직에서 나오고 있다. 패거리를 만든 아이들이 약한 아이들을 지배한다. 여자아이들이 속칭 ‘짱’을 선망한다. 동물 세계와 비슷하다. 소년 시절은 나도 싸움을 잘하고 싶었다. 그 시절 일류 중학교에 다니는 친척 형이 있었다. 그 형이 사는 산동네 판자 집에 갔을 때 비좁은 마당에 샌드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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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역사의 진실’과 ‘교과서의 서술’

    3.1운동 당시의 재판기록을 읽은 적이 있다. 민족 지도자들이 피고인이 되어 법정에 서 있었다. 그들을 변호하기 위해 일본인 변호사도 있었다. 일본인 판사와 친하다는 변호사였다. 일본인 재판장이 3.1운동의 대표인 손병희 선생에게 물었다. “조선의 독립을 요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는 10년 전 한일합병을 찬성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일등국과 합병을 하면 잘 살 수 있을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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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정욕…”도망가지 말고 무릎 꿇고 참회하라”

    대통령을 꿈꾸던 도지사의 여비서가 어느 날 방송에 나와 도지사의 성폭행을 폭로했다. 순간 그의 꿈은 무너져 내렸다. 서울특별시장의 여비서가 시장의 성추행을 고소하려고 준비했다. 그 말이 전해지자 시장은 쫓기듯 도망을 간 후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하나하나 쌓아온 성벽이 일순간에 붕괴됐다. 대통령후보로 나선 야당 대표와의 성관계를 폭로한 여배우도 있었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은 제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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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변호사’인 내가 만들어 파는 것

    골드코스트에서 잡화가게를 하는 영감이 있었다. 뒤늦게 이민을 가서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상인에게 중요한 건 무엇보다도 자기가 파는 물건에 대한 사랑이죠. 내가 물건을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겠어요? 저는 새벽부터 틈만 나면 물건들을 하나하나 먼지 한 점 없게 닦고 돌보았어요.” 그 말을 들으니까 어린 시절 동네 가게 앞에 차곡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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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힘없는 정의

    대통령이 될 뻔했던 이회창 후보의 자서전을 읽었다. 직접 그가 쓴 원고들 중에는 의미를 던지는 에피소드들이 있었다. 그가 고교 시절 길을 가는 데 깡패들이 여학생을 희롱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덩치가 왜소하고 싸움을 할 줄도 몰랐다. 그는 깡패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했다가 실컷 두들겨 맞고 코뼈까지 부러졌다. 자서전에서 그는 “힘이 받쳐주지 않는 정의는 정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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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미신과 신앙

    변호사를 하다 보니까 무당도 만나고 승려나 목사, 신부 그리고 민족종교의 도인 등 다양한 종교인들을 만나곤 했다. 이단이라고 하는 단체의 교주도 만나고 때로는 귀신이 들렸다는 사람들도 봤다. 직업상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경전을 보기도 했다. 그들은 대체로 영적 세계와 다양하게 연관을 맺고 있는 것 같았다. 살인죄로 재판을 받는 남자 무당을 변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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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그날 묵호역에서 생긴 일

    묵호역에서 밤 기차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옛 정취가 남은 작은 역이었다. 묵호역에 있을 때면 문학 속의 작은 시골역이 떠오른다. 늙은 역장이 추운듯 손을 부비면서 창가로 다가가 소리 없이 떨어져 쌓이는 송이눈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다. 냉기가 서린 역사 안에는 몇명의 승객이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역장은 구멍이 뚫린 무쇠난로에 톱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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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젊은 날 추구했던 것들

    실버타운 식당에서 노인들이 소근대고 있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이 한밤중에 죽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80대 노인이 이런 말을 했다. “요양원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갈 수 있다면 행복한 거요.” 옆에 있던 그의 다른 노인이 맞장구쳤다. “젊어서는 갑자기 죽는 게 사건이었지만 이제는 그건 하나의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긴긴 노년의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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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감옥 안 강도가 일깨워준 삶의 철학”

    변호사인 나는 남들이 혐오하는 파충류 같은 존재들을 검은 지하 감방에서 종종 만난다. 마치 의사가 흉하게 부서진 환자를 보듯 말이다. 오래 전 청송교도소에서 만난 한 강도범의 얘기를 쓰려고 한다. 180cm의 큰 키에 근육질의 그는 교도소 죄수 1800명의 대장이었다. 한밤 중에 칼을 들고 그가 내 방을 찾아왔다면 아마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낮에 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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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아름다운 이별

    친구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했었다. 주례가 독특한 말을 하는 게 귀에 들어왔다. “문을 열고 함께 집에 들어왔을 때 신랑은 현관에서 아내의 신발을 돌려놓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부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소리 없는 아내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의미했다. 며칠 전에는 친구가 카톡으로 이런 부고를 알려왔다. ‘아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네. 정말 비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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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경찰청장의 죽음…그를 구속시켰던 검사는 무얼 생각할까?

    며칠 전 경찰청장을 했던 그의 부고를 받았다. 그는 한(恨)을 품고 죽었을 것 같다. 그는 자기를 수사했던 검사를 고소했다. 그 수사는 불이 붙지 못하고 지지부진 하다가 꺼져버렸다. 그의 한(恨)은 변호사였던 나만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충의 내용은 이렇다. 그는 관직을 마친 후 한 선거에 입후보자로 등록했다. 여론조사 결과 당선이 틀림없을 정도였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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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탈주범 신창원을 위한 변명…”한 인간을 보았다”

    부장판사를 하다가 변호사를 개업한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판사를 할 때는 죄인만 보였는데 지금은 인간이 보여. 그 가족이 우는 것도 보이고 말이야. 변호사로 교도소에 가서 오랫동안 얼굴을 맞대고 얘기하니까 마음이 흘러가는 거야. 내가 다시 판사를 한다면 예전같이 그렇게 하지는 않을 거야. 명절이면 이왕이면 그 전에 석방 시켜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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