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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영어 귀신’ 언제나 벗어날까?
고등학교에 다니는 손녀가 보고 싶었다. 손녀는 매일 독서실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 같다. 독서실 가까이 있는 식당에 자리를 잡고 손녀에게 잠시 와서 고기를 먹고 가라고 했다. 잠시 시간을 내서 나온 손녀의 손에는 영어책이 들려있었다. 그 내용을 잠시 봤다. 어려운 영어논설을 담은 지문들이었다. 그렇게 영어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대학에 갈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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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검소함이 보물…혼자 간단히 먹을 수 있어도 감사”
아침 겸 점심으로 마트에서 파는 인스턴트 떡국을 먹었다. 물을 부어 전자레인지에서 몇 분만 데우면 완성되는 편한 음식이다. 혼자 밥을 먹어도 괜찮다. 어떤 걸 먹어도 맛이 있고 감사하다. 내 기억의 서랍에는 정년퇴직을 한 아버지가 혼자 밥을 드시는 광경이 스냅사진이 되어 들어있다. 내가 군에 있던 서른살 무렵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가 사는 역곡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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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조선 소년이 본 1911년 일본풍경
오늘은 일제시대 초기 일본의 중학교에 입학하러 가는 한 소년의 눈과 귀에 들어온 광경을 전하고 싶다. 고창 출신 소년 김연수가 동경에서 하숙을 하고 있는 형 김성수를 찾아가는 과정의 자료를 소개한다. 1911년 1월 30일경 열다섯 살 소년 김연수는 시모노세키항에 도착해 여관에서 하루를 묵은 후 동경행 열차에 올랐다. 서른두 시간이 걸리는 긴 여행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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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합병된 회사의 직원과 주권 잃는 나라의 백성
회사에 다니던 친척 조카뻘 되는 아이가 고통을 받는 걸 봤다. 회사가 합병이 되니까 흡수된 자기 회사의 직원들은 찬밥신세가 되더라는 것이다. 이리저리 아무데나 발령을 내고 일을 주지 않더라는 것이다. 일이 없으면 실적점수가 없게 되고 두번 D급으로 판정되면 회사를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친척아이는 살아남기 위해 나이 어린 팀장에게 무릎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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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의 시선] 이어령·피천득·고영근·실버타운 도우미···죽은이들이 산 자에게 남기고 간 메시지
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 위에 안개가 자욱하다. 회색 하늘과 바다의 경계선이 보이지 않는다. 초여름을 알리는 비가 쏟아지고 있다. 해안로의 가로수도 숲도 도로도 축축하게 젖어있다. 창에 매달린 물방울들이 제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주르륵 흘러내린다. 내가 있는 집은 죽음 같은 고요가 감돌고 있다. 나 외에 아무도 없다. 그 속에서 나는 심연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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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구한말 동경의 조선인 대학생
1907년경 일본의 와세다대학에서 모의국회가 열렸다. 상정된 안건은 조선의 황실을 일본의 황족으로 흡수하자는 안건이었다. 최린이라는 조선 유학생이 우연히 그 광경을 목격했다. 분노한 그는 조선 유학생 긴급회의를 소집해 와세다대학 학장을 찾아가 항의하고 사과를 받아냈다. 같은 해 11월경 동경 시내의 어느 흥행장이었다. 조선 왕이 일본으로 건너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절을 하는 인형극이 공연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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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의 시선] 구한말 군산 청년 ‘한승리’와 21세기 정치원로 ‘유인태’의 경우
나는 이따금 세상 돌아가는 걸 알기 위해 유튜브 속에서 혹시 ‘시대의 예언자’ 같은 존재가 없나 찾아본다. 어느 한쪽에 매몰되어 싸움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균형적인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보는 사람의 말을 듣고 싶어서이다. 날카로운 비난보다 남의 선한 면을 발견해 주는 사람이 더 좋다. 늙은 모습에 깡마른 유인태씨의 말이 약간 더듬고 어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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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110년 전 중학생 ‘송진우’의 통찰
나는 변호사를 해오면서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 기록을 그대로 신뢰하지 않았다. 못 믿어서가 아니라 같은 사실이라도 그것을 보는 시각과 마음이 달라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물건이 없어지고 이웃의 청년이 훔쳐 갔다고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에게는 이웃 청년이 말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모두 도둑같이 보일 수 있다. 다행히 진범이 잡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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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일본이 조직적으로 조선땅을 차지할 때 왕족과 대신들은?
나는 1910년경 발행된 일본의 <이바라키신문>에서 ‘우리 일본인은 어떻게 하면 조선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칼럼을 본 적이 있다. 그 내용은 이랬다. “조선은 우리 일본인의 활동무대가 됐다. 조선은 아직 하급수준이다. 그곳에서 일으킬 사업과 개발할 천연자원이 우리 일본인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일본 본토에서 땅이 없는 사람도 조선에 가면 지주가 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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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오늘부터 한민족은 일본제국의 신민이다”
한동안 국립도서관에 가서 구한말과 일제시대 관련 자료들을 읽었다. 기록 속에서 여러사람들이 소리치고 들끓고 있는 것 같이 느낄 때가 있었다. 나는 자료들을 타임머신으로 그 시대로 돌아가 현대까지 그 부를 유지한 고창 갑부의 집안과 그 주변을 돌아다 보았다. 구한말 금산군수의 아들로 일본중학으로 유학을 간 홍명희는 아버지를 따라 고창 갑부 김경중의 집에 들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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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명문가 부자들의 정당한 ‘분노’
변호사인 나는 우연히 구한말 대지주였던 ‘고창 김씨가’의 소송을 맡게 된 계기로 그 집안을 깊숙이 들여다 본 적이 있다. 조선말 농민이었던 그들은 개항이 되자 쌀 무역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지주가 됐다. 관료가 되어 권력으로 부를 얻지 않고 근검절약을 바탕으로 한 독자적인 경제활동으로 재력을 형성한 것이다. 관리들의 부패가 만연하고 화적떼들이 들끓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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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구한말 홍명희·김성수·김연수의 사랑방 정국담
나는 몇년 동안 역사를 공부하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학자나 전문가들이 정한 레시피로 만든 역사요리가 식성에 맞지 않았다. 나는 원재료를 구해 일단 있는 그대로 보고 싶었다. 국립중앙도서관으로 가서 구한말과 일제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자서전도 많이 대출받아 읽었다. 지하서고에 있던 이광수의 자서전은 만지면 오래된 종이가 바스러질 정도였다. 홍명희, 송진우, 김성수 등 그 시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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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의 친일논쟁⑧] 동양척식회사의 또다른 진실
우리은행장을 지냈던 분한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 은행이라고 우리 것인 줄로 아는데 그렇지 않아” 그는 우리나라 큰 회사의 주식의 많은 지분이 외국인 소유를 말하다가 비유로 그렇게 말했다. 금융자본주의 신자유주의가 되면서 뉴욕에서 주식으로 아프리카의 구석까지 세계를 지능적으로 컨트롤 한다는 것 같았다. 미국의 펜타곤에서 오랫동안 공무원으로 근무한 한국여성의 얘기를 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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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500년 전 김인후는 최태원-노소영 재판 어떻게 볼까?
노태우 대통령 딸인 노소영씨와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이혼소송 뉴스가 ‘세기의 재판’으로 떠오르고 있다. 법원은 최대원 회장이 노소영씨에게 재산분할 금액으로 1조3808원을 그리고 위자료로 20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노태우 대통령이 재벌가의 재산형성에 기여한 점을 참작했다는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사돈이 되는 SK그룹에 ‘황금알을 낳은 거위’라는 이동통신권을 가게 했다. 그리고 수천억에 해당하는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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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강남역 ‘공시생’과 500년 전 ‘과거준비생’
서울로 올라와 밤의 강남역 네거리를 산책했다. 강렬한 비트의 락 음악이 폭포같이 쏟아지는 속에서 젊은이들이 거리의 탁자에서 맥주잔을 부딪치고 있다. 허공에는 음표와 말들이 부딪치며 들끓고 있었다. 한적한 바닷가에는 없는, 도시와 젊음의 열기였다. 다리가 아파진 나는 투명한 유리창 안으로 깔끔하게 인테리어가 보이는 도너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요거트와 꽈배기 도너츠 한개를 주문해 받아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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