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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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김동인과 백년 전 감옥 풍경

    변호사를 40년 가까이 하면서 감옥을 참 많이 드나들었다. 그곳에 사는 죄수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세상이 바뀌어도 감옥 안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 같았다. 도심에 번들거리는 유리창의 최신형 빌딩이 늘어나도 교도관들은 낡은 콘크리트 건물에서 무쇠난로에 연탄을 갈아 넣고 있었다. 동굴같이 어둠침침한 감옥의 통로는 곳곳이 녹슨 철창으로 막혀 있었고,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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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택시운전은 도 닦기 좋은 ‘수행법’

    내게 하소연하는 글이 하나 왔다. 택시기사를 하면서 취객들에게 당하는 고통을 얘기하고 있었다. 주정을 하면서 차에서 내리지 않으면 인내하다가 112에 신고한다고 했다. 경찰마저도 직접적인 폭행이 없으면 그들에게 사정 하며 가시라고 한다는 것이다. 시간과 금전적 손해와 정신적 허탈감이 밀려온다는 것이다. 그는 택시기사를 보호하는 법률은 누가 만드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속칭 그런 ‘진상’들이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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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친일논쟁⑪] 춘원 이광수의 감추어진 이야기들

    낡은 책 속 소년의 울음소리 황학동의 벼룩시장 구석에 낡은 책들이 폐지 더미가 되어 수북이 쌓인 채 비를 맞고 있었다. 우연히 그중 한 권이 내 눈에 들어와 천원을 주고 사서 가지고 왔다. 얼룩이 지고 누렇게 변색된 그 책 안에서 어린 소년의 처절한 울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구한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어린 소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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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친일관계 소송 맡아 죽은 영혼들 대리인 되어…

    “나는 요즘 내가 직접 땀 흘려 발견한 역사들을 수필 형태로 남기고 있다” 20대쯤이었을 것이다. 내게 종교가 없을 때였다. 문학이나 글을 보면 성경 구절이 인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교양을 갖추려면 성경에 대한 기본상식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30대에 특수한 계기로 성경을 읽게 됐다. 읽자마자 나는 실망했다. 읽으라고 만든 책인지 읽지 말라고 만든 책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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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광우병 ‘촛불’과 3.1운동 ‘횃불’

    광우병사태 때였다.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방송을 보고 분노한 시민들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수많은 괴담이 돌았다. 시청앞 광장에는 미친 소의 상이 세워져 있고 여러 개의 막사 안에는 눈에 독기를 품은 사람들이 들끓었다. 백만명만 모이면 정권을 엎을 수가 있다며 그들은 사람들이 더 몰려들기를 기다렸다. 대통령이 청와대 뒷산으로 도망 가 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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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한국의 뿌리주식회사···경성방직·삼성·LG

    10여년 전 미디안광야에서 묵은 적이 있다. 애굽에서 탈출한 유대인들이 38년간 살던 붉은 모래가 끝없이 펼쳐진 곳이다. 지금도 이따금 낙타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만 보인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던 어느 날 아랍인의 납작한 단층집에 들어가 잠시 쉴 때였다. 보통의 가정집이었다. 양탄자를 바닥에 깐 거실에 우리나라의 LG텔레비젼이 묵직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가슴이 뿌듯해졌다. 거의 30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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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집이란 이 땅에 잠시 치고 사는 천막 아닐까”

      해변의 쉼터에서 한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부동산 중개사를 통해 제일 싼 아파트를 알아봤어요. 그랬더니 북평에 있는 열여덟평 아파트가 오천만원에 나와 있더라구요. 그걸 샀죠. 이따금씩 와서 쉬었다 갑니다. 나만의 공간이죠. 비워둬도 관리비가 거의 안 나와요.” 살 줄 아는 사람 같았다. 돈 돈 하면서 미루면 나중은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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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친일논쟁⑨] ‘친일반민족행위 195인’에 오른 이하영의 경우

    “정치적 시각에서 작위를 받은 그를 친일파로 단죄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경제적 시각에서 그를 보면 어떨까. 몇 십년이 흐른 후 역사를 재단하는 표준 잣대가 변하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다.” 민주화 투쟁이 심하던 1980년대 법정은 더러 난장판이었다. 방청석에서 운동권 노래가 울려 퍼지고 피고인들이 신고 있던 고무신을 벗어서 판사에게 날렸다. 내가 아는 판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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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영어 귀신’ 언제나 벗어날까?

    고등학교에 다니는 손녀가 보고 싶었다. 손녀는 매일 독서실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 같다. 독서실 가까이 있는 식당에 자리를 잡고 손녀에게 잠시 와서 고기를 먹고 가라고 했다. 잠시 시간을 내서 나온 손녀의 손에는 영어책이 들려있었다. 그 내용을 잠시 봤다. 어려운 영어논설을 담은 지문들이었다. 그렇게 영어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대학에 갈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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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검소함이 보물…혼자 간단히 먹을 수 있어도 감사”

    아침 겸 점심으로 마트에서 파는 인스턴트 떡국을 먹었다. 물을 부어 전자레인지에서 몇 분만 데우면 완성되는 편한 음식이다. 혼자 밥을 먹어도 괜찮다. 어떤 걸 먹어도 맛이 있고 감사하다. 내 기억의 서랍에는 정년퇴직을 한 아버지가 혼자 밥을 드시는 광경이 스냅사진이 되어 들어있다. 내가 군에 있던 서른살 무렵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가 사는 역곡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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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조선 소년이 본 1911년 일본풍경

    오늘은 일제시대 초기 일본의 중학교에 입학하러 가는 한 소년의 눈과 귀에 들어온 광경을 전하고 싶다. 고창 출신 소년 김연수가 동경에서 하숙을 하고 있는 형 김성수를 찾아가는 과정의 자료를 소개한다. 1911년 1월 30일경 열다섯 살 소년 김연수는 시모노세키항에 도착해 여관에서 하루를 묵은 후 동경행 열차에 올랐다. 서른두 시간이 걸리는 긴 여행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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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합병된 회사의 직원과 주권 잃는 나라의 백성

          회사에 다니던 친척 조카뻘 되는 아이가 고통을 받는 걸 봤다. 회사가 합병이 되니까 흡수된 자기 회사의 직원들은 찬밥신세가 되더라는 것이다. 이리저리 아무데나 발령을 내고 일을 주지 않더라는 것이다. 일이 없으면 실적점수가 없게 되고 두번 D급으로 판정되면 회사를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친척아이는 살아남기 위해 나이 어린 팀장에게 무릎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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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이어령·피천득·고영근·실버타운 도우미···죽은이들이 산 자에게 남기고 간 메시지

    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 위에 안개가 자욱하다. 회색 하늘과 바다의 경계선이 보이지 않는다. 초여름을 알리는 비가 쏟아지고 있다. 해안로의 가로수도 숲도 도로도 축축하게 젖어있다. 창에 매달린 물방울들이 제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주르륵 흘러내린다. 내가 있는 집은 죽음 같은 고요가 감돌고 있다. 나 외에 아무도 없다. 그 속에서 나는 심연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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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구한말 동경의 조선인 대학생

    1907년경 일본의 와세다대학에서 모의국회가 열렸다. 상정된 안건은 조선의 황실을 일본의 황족으로 흡수하자는 안건이었다. 최린이라는 조선 유학생이 우연히 그 광경을 목격했다. 분노한 그는 조선 유학생 긴급회의를 소집해 와세다대학 학장을 찾아가 항의하고 사과를 받아냈다. 같은 해 11월경 동경 시내의 어느 흥행장이었다. 조선 왕이 일본으로 건너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절을 하는 인형극이 공연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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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구한말 군산 청년 ‘한승리’와 21세기 정치원로 ‘유인태’의 경우

    나는 이따금 세상 돌아가는 걸 알기 위해 유튜브 속에서 혹시 ‘시대의 예언자’ 같은 존재가 없나 찾아본다. 어느 한쪽에 매몰되어 싸움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균형적인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보는 사람의 말을 듣고 싶어서이다. 날카로운 비난보다 남의 선한 면을 발견해 주는 사람이 더 좋다. 늙은 모습에 깡마른 유인태씨의 말이 약간 더듬고 어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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