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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조선 선비 김인후의 문학일기
호남의 명가 김성수씨 집안의 소송을 하다가 우연히 그 집안의 귀한 자료를 읽게 됐다. 그 집안의 조상중 한 분은 열여섯살부터 마흔한살까지 25년간 매일 일기를 썼다. 나는 책을 통해 수많은 죽은 사람들과 만났다. 책이란 죽은 영혼과의 대화라는 생각이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과 대화를 하기도 한다. 내가 물으면 하나님은 내 마음을 움직여 특정의 글자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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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의 친일논쟁⑦] ‘한국 최초 프로테스탄트’ 김경중과 김성수·연수 부자
친일관련 소송을 맡았던 계기로 그 사건이 대법원에서 끝이 날 때까지 10년 가깝게 나름대로의 독특한 역사공부를 했다. 조선 말부터 일제시대를 거쳐 해방 이후까지의 시대적 상황과 그 속에서 생존해 온 두 집안을 추적했다. 그 중 한 집안은 학자들이 조선의 프로테스탄트라고 한 ‘고창 김씨가’였다. 또 다른 집안은 근대소설의 시조인 김동인이라는 인물이다. 그들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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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출신 최초 서양의사 박서양과 단종임금 시신 수습한 엄흥도
밤늦게 탤레비젼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조선 최초의 서양 의사가 된 백정의 아들’이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봤다. 조선말 제중원이라는 의학교 겸 병원이 처음으로 설립됐다. 한 백정이 서양인 의사를 찾아와 아들을 입학시켜 달라고 간절하게 빌었다. 왕의 주치의였던 서양인 의사는 인간을 차별하지 않고 콜레라에 걸린 백정을 고쳐주었었다. 백정은 그런 서양의 평등의식에 희망을 품고 찾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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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한밤중에 날아든 메시지
함석헌 선생이 지은 ‘그 사람을 가졌는가’ 시비 나이가 먹으니까 확실히 잠이 줄어든 것 같다. 얼마 전 밤 시간이었다. 새벽 1시가 됐는데도 정신이 물같이 맑았다. 그 시각에 갑자기 이런 카톡 메시지가 하나 날아왔다. ‘잠이 안 와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네. 이번에 모시던 그분의 장례를 치렀어. 그분의 장관 시절 내가 비서관을 했어. 그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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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의 친일논쟁⑤] 한국 자본주의 시조 삼양사와 두산그룹
내가 중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평화봉사단에서 파견된 미국인 대학생이 영어 선생님이었다. 그 당시 평화봉사단으로 왔던 미국인들은 아시아 각국에 머물면서 그 사회를 객관적이고 냉철한 눈으로 살핀 것 같다. 우리가 우리를 보는 눈과 그들이 우리를 보는 눈이 전혀 달랐다. 에거트라는 미국의 사학자가 쓴 <제국의 후예>라는 책을 본 적이 있다. 그는 평화봉사단으로 한국에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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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우리 시대에 왔다 간 예언자
1973년 내가 고려대학에 입학했을 때 김상협 총장은 학생들의 우상이었다. 반정부데모가 심하고 경찰 최류탄과 화염병이 난무한 전쟁 같은 현장에서도 김상협 총장이 나타나면 모두 고개를 숙이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대단한 카리스마였던 것 같다. 나는 김상협 총장의 평전을 썼다. 그는 겸손한 거인이었다. 스물여섯 살 나이로 우리나라 최초의 정치학교수였던 그는 좌우 대립이 심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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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의 친일논쟁④]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역사바로잡기’
그리고, 변호사 사무실 창을 통해 본 ‘역사바로잡기’ 2024년 6월 2일 오전이다. 먹다 남은 피자 두 조각과 생강 탄산수로 아침을 먹고 있는 데 <연합뉴스> 화면이 뜨고 있다. 하얀 풍선이 도로 위에 내려와 있다. 풍선의 끝에 매달린 물체는 북에서 보낸 오물이라고 했다. 남쪽에서 보낸 전단지에 대한 북의 댓가라고 했다. 내가 전방에서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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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의 시선] 어느 장관 출신 70대 노년의 황금빛 석양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보다가 요양원의 광경을 묘사한 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70대 노인이 침대 등받이를 세워놓고 신문을 읽고 있다. 오른쪽 몸이 마비되어 쓰러지기 때문에 베개 두 개를 등 뒤에 받치고 있다. 요양보호사가 일정한 시간마다 기저귀를 갈아준다. 대소변을 자주보는 게 싫어서 먹고 마시는 양을 조절한다. 그래서 그런지 살이 거의 없고 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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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의 친일논쟁③] 해방후 초대 민선 경기도지사 구자옥…”죽은 당사자는 결백을 증명할 수 없었다”
전두환 정권이 탄생한 후 모든 현역장교들이 국난극복기장이라는 걸 받았다. 당시 나는 육군 장교였다. 서민의 아들로 국방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군대에 간 것이다. 국난극복기장은 군복에 다는 장식 같았다. 그런데 나는 국난을 극복한 기억이 없다. 한참 뒤 세상이 바뀌고 12.12의 군사행동이 국난극복이 아니었으며, 군사반란이라고 정의가 바뀌었다. 국난극복기장을 기계적으로 받은 모든 장교들이 군사반란범으로 지탄받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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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의 친일논쟁②] 해방공간 월북화가 정현웅
“내 아버지가 친일파라구요?” 한 유튜브 방송에서 실버타운에 관한 말이 여성의 낭낭한 목소리로 흘러 나오고 있었다. 듣다 보니 낯익은 얘기였다. 몇 달 전 내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그 유튜버는 출처를 밝히지 않고 마치 자신의 의견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끝에 자기의 독특한 평가를 덧붙여 놓았다. 나의 글이 그렇게 도용당한 경우가 여러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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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친일논쟁’을 연재하는 까닭
“재야의 평범한 시민으로서 역사에 대한 주관적인 사견을 남겨두고 싶다” 내가 사는 바닷가의 집에서 5일마다 열리는 북평시장이 멀지 않다. 아내와 함께 시골장을 구경하러 갔다. 어린 시절 먹던 풀빵 장사가 있었다. “나 어릴 때 풀빵을 좋아했는데 사먹어요.” 아내가 말했다. 70대 쯤의 노인이 국화 문양이 새겨진 무쇠틀 구멍에 기름을 바르고 양은 주전자에 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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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의 친일논쟁①] 신현확 전 국무총리의 경우
천만 관객이 봤다는 바람에 호기심에 <파묘>라는 영화를 봤다. 풍수에 관한 우리의 정서를 녹여낸 작품이다. 나도 윤달이 든 해에 파묘를 해서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 유골을 화장해서 모시고 있다. 다만 영화 중에 씁쓸한 느낌을 주는 부분이 있었다. 일제시대 벼슬을 한 친일파인 조상귀신이 자손들을 저주하고 죽이는 설정이었다. 그 친일파 조상귀신의 뒤에는 일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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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 조세형32] 하나님께 따져 물었다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습니까?”
나는 어려서부터 둔하고 미련했다. 그런 본성이 그대로 나타났던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 일흔이 넘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놀고 있을 때였다. 선생님이 나를 불러 어떤 아이를 찾아서 데리고 오라고 했다. 나는 운동장에서 그 아이를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버스를 타고 그 아이 집까지 찾아갔다. 날이 어두워지고 아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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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 조세형31] 죽음만이 그의 절도 중독을 끊을 수 있을까?
고려대 법과대학 시절 최달곤 교수님이 강의한 내용은 기억이 바랬지만 이 말만은 평생 가슴에 남아있다. “사람들은 흔히 술이나 도박, 여자에게 중독될 수 있죠. 그건 광범위하게 인간에게 퍼져있는 것이니까 사람들에게 이해될 수 있어요. 그런데 권력에 중독되는 건 그렇지 않아요. 특수하기 때문에 이해받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죠. 그리고 마지막에는 마약보다 더 정신이 피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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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 조세형30] “변호사님, 국민 앞에 사과하셔야죠?”
얼마 전 밤늦게까지 서울에서 온 후배 변호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중 한 명은 사위다. 로스쿨 첫 졸업생인 그들은 내게 변호사의 길을 묻곤 했다. 사위 친구인 김 변호사가 얘기 중에 이런 말을 했다. “검찰총장 일을 했던 사람이 변호사가 되어 음주운전 뺑소니를 한 가수 김호중의 옆에 비서같이 따라붙으면서 마귀수를 쓴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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