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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110년 전 중학생 ‘송진우’의 통찰
나는 변호사를 해오면서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 기록을 그대로 신뢰하지 않았다. 못 믿어서가 아니라 같은 사실이라도 그것을 보는 시각과 마음이 달라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물건이 없어지고 이웃의 청년이 훔쳐 갔다고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에게는 이웃 청년이 말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모두 도둑같이 보일 수 있다. 다행히 진범이 잡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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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일본이 조직적으로 조선땅을 차지할 때 왕족과 대신들은?
나는 1910년경 발행된 일본의 <이바라키신문>에서 ‘우리 일본인은 어떻게 하면 조선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칼럼을 본 적이 있다. 그 내용은 이랬다. “조선은 우리 일본인의 활동무대가 됐다. 조선은 아직 하급수준이다. 그곳에서 일으킬 사업과 개발할 천연자원이 우리 일본인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일본 본토에서 땅이 없는 사람도 조선에 가면 지주가 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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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오늘부터 한민족은 일본제국의 신민이다”
한동안 국립도서관에 가서 구한말과 일제시대 관련 자료들을 읽었다. 기록 속에서 여러사람들이 소리치고 들끓고 있는 것 같이 느낄 때가 있었다. 나는 자료들을 타임머신으로 그 시대로 돌아가 현대까지 그 부를 유지한 고창 갑부의 집안과 그 주변을 돌아다 보았다. 구한말 금산군수의 아들로 일본중학으로 유학을 간 홍명희는 아버지를 따라 고창 갑부 김경중의 집에 들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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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명문가 부자들의 정당한 ‘분노’
변호사인 나는 우연히 구한말 대지주였던 ‘고창 김씨가’의 소송을 맡게 된 계기로 그 집안을 깊숙이 들여다 본 적이 있다. 조선말 농민이었던 그들은 개항이 되자 쌀 무역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지주가 됐다. 관료가 되어 권력으로 부를 얻지 않고 근검절약을 바탕으로 한 독자적인 경제활동으로 재력을 형성한 것이다. 관리들의 부패가 만연하고 화적떼들이 들끓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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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구한말 홍명희·김성수·김연수의 사랑방 정국담
나는 몇년 동안 역사를 공부하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학자나 전문가들이 정한 레시피로 만든 역사요리가 식성에 맞지 않았다. 나는 원재료를 구해 일단 있는 그대로 보고 싶었다. 국립중앙도서관으로 가서 구한말과 일제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자서전도 많이 대출받아 읽었다. 지하서고에 있던 이광수의 자서전은 만지면 오래된 종이가 바스러질 정도였다. 홍명희, 송진우, 김성수 등 그 시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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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의 친일논쟁⑧] 동양척식회사의 또다른 진실
우리은행장을 지냈던 분한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 은행이라고 우리 것인 줄로 아는데 그렇지 않아” 그는 우리나라 큰 회사의 주식의 많은 지분이 외국인 소유를 말하다가 비유로 그렇게 말했다. 금융자본주의 신자유주의가 되면서 뉴욕에서 주식으로 아프리카의 구석까지 세계를 지능적으로 컨트롤 한다는 것 같았다. 미국의 펜타곤에서 오랫동안 공무원으로 근무한 한국여성의 얘기를 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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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500년 전 김인후는 최태원-노소영 재판 어떻게 볼까?
노태우 대통령 딸인 노소영씨와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이혼소송 뉴스가 ‘세기의 재판’으로 떠오르고 있다. 법원은 최대원 회장이 노소영씨에게 재산분할 금액으로 1조3808원을 그리고 위자료로 20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노태우 대통령이 재벌가의 재산형성에 기여한 점을 참작했다는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사돈이 되는 SK그룹에 ‘황금알을 낳은 거위’라는 이동통신권을 가게 했다. 그리고 수천억에 해당하는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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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강남역 ‘공시생’과 500년 전 ‘과거준비생’
서울로 올라와 밤의 강남역 네거리를 산책했다. 강렬한 비트의 락 음악이 폭포같이 쏟아지는 속에서 젊은이들이 거리의 탁자에서 맥주잔을 부딪치고 있다. 허공에는 음표와 말들이 부딪치며 들끓고 있었다. 한적한 바닷가에는 없는, 도시와 젊음의 열기였다. 다리가 아파진 나는 투명한 유리창 안으로 깔끔하게 인테리어가 보이는 도너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요거트와 꽈배기 도너츠 한개를 주문해 받아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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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조선 선비 김인후의 문학일기
호남의 명가 김성수씨 집안의 소송을 하다가 우연히 그 집안의 귀한 자료를 읽게 됐다. 그 집안의 조상중 한 분은 열여섯살부터 마흔한살까지 25년간 매일 일기를 썼다. 나는 책을 통해 수많은 죽은 사람들과 만났다. 책이란 죽은 영혼과의 대화라는 생각이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과 대화를 하기도 한다. 내가 물으면 하나님은 내 마음을 움직여 특정의 글자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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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의 친일논쟁⑦] ‘한국 최초 프로테스탄트’ 김경중과 김성수·연수 부자
친일관련 소송을 맡았던 계기로 그 사건이 대법원에서 끝이 날 때까지 10년 가깝게 나름대로의 독특한 역사공부를 했다. 조선 말부터 일제시대를 거쳐 해방 이후까지의 시대적 상황과 그 속에서 생존해 온 두 집안을 추적했다. 그 중 한 집안은 학자들이 조선의 프로테스탄트라고 한 ‘고창 김씨가’였다. 또 다른 집안은 근대소설의 시조인 김동인이라는 인물이다. 그들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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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출신 최초 서양의사 박서양과 단종임금 시신 수습한 엄흥도
밤늦게 탤레비젼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조선 최초의 서양 의사가 된 백정의 아들’이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봤다. 조선말 제중원이라는 의학교 겸 병원이 처음으로 설립됐다. 한 백정이 서양인 의사를 찾아와 아들을 입학시켜 달라고 간절하게 빌었다. 왕의 주치의였던 서양인 의사는 인간을 차별하지 않고 콜레라에 걸린 백정을 고쳐주었었다. 백정은 그런 서양의 평등의식에 희망을 품고 찾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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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한밤중에 날아든 메시지
함석헌 선생이 지은 ‘그 사람을 가졌는가’ 시비 나이가 먹으니까 확실히 잠이 줄어든 것 같다. 얼마 전 밤 시간이었다. 새벽 1시가 됐는데도 정신이 물같이 맑았다. 그 시각에 갑자기 이런 카톡 메시지가 하나 날아왔다. ‘잠이 안 와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네. 이번에 모시던 그분의 장례를 치렀어. 그분의 장관 시절 내가 비서관을 했어. 그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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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의 친일논쟁⑤] 한국 자본주의 시조 삼양사와 두산그룹
내가 중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평화봉사단에서 파견된 미국인 대학생이 영어 선생님이었다. 그 당시 평화봉사단으로 왔던 미국인들은 아시아 각국에 머물면서 그 사회를 객관적이고 냉철한 눈으로 살핀 것 같다. 우리가 우리를 보는 눈과 그들이 우리를 보는 눈이 전혀 달랐다. 에거트라는 미국의 사학자가 쓴 <제국의 후예>라는 책을 본 적이 있다. 그는 평화봉사단으로 한국에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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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우리 시대에 왔다 간 예언자
1973년 내가 고려대학에 입학했을 때 김상협 총장은 학생들의 우상이었다. 반정부데모가 심하고 경찰 최류탄과 화염병이 난무한 전쟁 같은 현장에서도 김상협 총장이 나타나면 모두 고개를 숙이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대단한 카리스마였던 것 같다. 나는 김상협 총장의 평전을 썼다. 그는 겸손한 거인이었다. 스물여섯 살 나이로 우리나라 최초의 정치학교수였던 그는 좌우 대립이 심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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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의 친일논쟁④]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역사바로잡기’
그리고, 변호사 사무실 창을 통해 본 ‘역사바로잡기’ 2024년 6월 2일 오전이다. 먹다 남은 피자 두 조각과 생강 탄산수로 아침을 먹고 있는 데 <연합뉴스> 화면이 뜨고 있다. 하얀 풍선이 도로 위에 내려와 있다. 풍선의 끝에 매달린 물체는 북에서 보낸 오물이라고 했다. 남쪽에서 보낸 전단지에 대한 북의 댓가라고 했다. 내가 전방에서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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