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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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묵상] “2년 전, 나는 어땠나? 같은 질문을 2년 뒤에 던진다면…”

    사도행전 25장 “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행 24:27)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 새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더라”(행 25:2-3) 사도행전 24장과 25장 사이에는 2년이라는 간극이 있습니다. 그러나 2년이 무색하리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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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묵상] 상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언어가 ‘최고 소통’

    사도행전 21장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행 21:40) 바울이 히브리 말로 말하자 사람들이 듣기 시작했습니다. 손짓으로 조용해졌던 군중이 히브리어 한마디에 더욱 조용해졌습니다. “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행 22:2). 바울은 헬라인에게는 헬라인처럼,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말하는 사람입니다. 상대가 이해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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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묵상] 시기심이 불러오는 ‘지독한 열정’

    “무언가에 열심을 낼 때, 무엇 때문에 내가 이렇게 열심인가? 한 번 체크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사도행전 17장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행 17:5) 바울의 전도 여행팀을 늘 괴롭혔던 것은 이방인이 아니라 유대인이었습니다. 바울 일행은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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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묵상] 진리가 아닌 것들을 진리라고 여기는 ‘착각’

    사도행전 16장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행 16:3)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울이 할례를 행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게다가 지금 바울은 할례 받지 않아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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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묵상] 뒤늦게 생각나는 기쁨

    사도행전 11장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행 11:16) 베드로는 그제야 생각이 났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기억하지도 못하고 지냈을 것입니다. ‘무슨 뜻일까?’ 궁금하게 생각했던 순간이 잠시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크게 관심을 두고 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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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묵상] 내가 변하지 않고 누군가를 변화시킨다?

    사도행전 10장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행 10:45) 사도행전 10장은 선교 역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입니다. 복음이 유대인과 헬라인의 경계를 처음으로 넘어간 사건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와 그의 일가가 세례를 받는 장면이 사도행전 10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예루살렘 교회에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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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묵상] 온 세상 뭇교회·뭇성도···어둠 밝히는 아름다운 별빛 되기를

    사도행전 8장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행 8:1) 초신성(supernova)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초신성은 별이 그 생애 동안 빛을 내는 소임을 다한 후, 마지막 순간에 급속도로 수축한 뒤 폭발하는 천문학적 현상입니다. 이때 별의 잔해들은 우주 공간에 뿔뿔이 흩어지며, 흩어진 초신성의 잔해가 모여 새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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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묵상] 자본주의 윤리와 기독교 정신

    사도행전 4장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행 4:32) 이 구절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의 이상과 비슷하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나 사회주의 둘 다 ‘공동체’의 이상을 지향하는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영어 단어인 Communism (공산주의)와 Community (공동체)만 봐도, 공산주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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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묵상] “교회는 ‘마사지샵’이 아니라 ‘메시지 공동체’입니다”

    사도행전 2장 현대의 서비스 산업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고객 감동’입니다. 고객이 감동해야 소비가 시작되고, 소비가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비슷한 감동을 사람들에게 제공하곤 합니다. 사람들은 설교를 듣다가 감동을 받고, 목회자의 심방에서 감동을 받습니다. 교우들이 베푸는 친절을 통해서도 감동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소비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특정 회사와 브랜드의 상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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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묵상] 부활 후 제자들에게 찾아온 예수…“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한복음 20장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19) 사흘 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 제자들에게 일어났습니다. 지난 3년간 가족처럼 지냈던 사람들 중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한 명은 자살했고 또 한 명은 사형당했습니다. 자살한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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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묵상] ‘지식적 앎’과 ‘인격적 앎’

    요한복음 17장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100m 육상 경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부정 출발로 인한 실격 장면입니다. 0.01초라도 빨리 스타트를 하기 위해 선수들이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가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단거리에서는 그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라톤 경기에서 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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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묵상]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한복음 14장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근심하지 말아야지’ 한다고 근심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근심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염려와 걱정으로 살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안 하고 싶은데 하게 되는 것이 근심입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근심 없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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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묵상] 끝을 마음에 두는 지혜

    요한복음 12장 골프나 테니스, 탁구 같은 라켓 운동에서 ‘스윙’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세계적 수준의 선수라도 스윙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백스윙의 크기, 임팩트 때 라켓의 각도, 임팩트 후의 팔로우 스루, 피니시 동작 등 미세한 디테일까지 신경을 씁니다. 자신만의 일관된 스윙 메커니즘을 유지하는 것은 경기력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스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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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묵상] 죽어가면서도 살아나는 인생

    요한복음 11장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인간은 누구나 다 죽습니다. 병에 걸려도 죽고, 병에 걸리지 않아도 죽습니다. 사인(死因)이라는 것이 있긴 하지만, 그런 사인이 없어도 죽는다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죽음에는 때가 있을 뿐이지 원인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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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묵상] “인생이 막막할 때, 말씀 하나 붙들고 가라”

    요한복음 9장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요 9:7) 시각장애인이 실로암 연못까지 가는 데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그는 앞이 보이지 않는데 가야 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알아서 실로암 연못가를 찾아가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약간의 빛이라도 볼 수 있게 만들어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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