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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시가 있는 풍경] 가을 손길
억새꽃 하이얀 언덕에서 저무는 노을 바라볼 때 어깨 위에 놓이는 손길 가을인가 당신인가 박꽃 하얗게 눈부신 밤 하염없이 별을 쳐다볼 때 가만히 내미는 손길 가을인가 당신인가 구절초 환한 산굽이 돌아 지나온 길 아스라이 돌아볼 때 말없이 잡아주는 손길 가을인가 당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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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류:시가 있는 풍경] ‘누구인가’ 이병철
꽃을 피우게 하고 지게 하는 것은 새벽이면 닭을 울게 하고 팔월 불볕 아래 매미를 저토록 절규하게 하는 것은 허공에 거미의 집을 짓게 하고 모기 주둥이에 침을 달게 한 것은 지는 노을에 한숨짓게 하고 이슬 맺힌 꽃 앞에서 미소 짓게 하는 것은 숨 쉬는 모든 목숨붙이들 속에도 쉼 없이 출렁이는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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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류:시가 있는 풍경] 강가에서
저문 강에서 그댈 보내고 아침 강에서 그대를 그린다. 세월은 강물 따라 흐르는가. 봄꽃 붉게 비치던 강에 노랗게 단풍 지고 있다. 이 강은 어디서 흘러와 어디로 가는가. 그대는 어디쯤 걸어가 언제쯤 돌아오는가. 떠날 줄을 안다면 돌아올 줄도 알 것을. 내 안 깊이 흐르는 강에 저녁노을이 곱더니 아침에 물안개 피었다. 이리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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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류:시가 있는 풍경] 이현(二絃)을 듣다
구월 초하루 아직 아침이다. 이현(二絃)을 듣는다. 현이 적어 울음이 깊은가. 나는 그 깊이를 감당할 수 없다. 햇빛을 찾아 나선다. 마침내 오늘 눈부신 볕살 아래서 미루어둔 향초(香草)를 벤다. 차마 날을 갈지 못하고 무딘 낫으로 남은 미련을 자른다. 피 냄새 같은 것일까. 침묵하던 향들 솟구쳐 올라 내 상흔(傷痕)들이 아리다. 너 자신도 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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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류:시가 있는 풍경] 흔들리는 것들에 눈 맞추며
삶이 곧 이별이라고 말했지 이별도 연습하면 덜 서러울 수 있을까 바람이 없어도 꽃잎 떨어져 내리고 오래 머물 순 없을 거라고 말했지 붙잡아도 머무를 수 없는 그런 때가 오고 있음은 알아 이별하기에 좋은 날도 있을까 비에 젖으면서도 피는 꽃을 좀 봐 꽃이 피어 설레는 게 아니라 설레어서 꽃이 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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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류:시가 있는 풍경] 섬(島)이 품은 섬
건너 보이는 바다에 섬이 있다 아직 가보지 못한 그 섬은 언제나 뭍과 떨어져 외롭고 스스로를 품어 늘 고요했다 아직 자신을 품는 법을 알지 못한 나는 항상 그 섬이 궁금했다 여태 기다려왔지만 그 섬은 한 번도 뭍으로 나들이하지 않았음으로 가을 저물어 외로움이 물안개처럼 피어오르는 날 나는 그 섬으로 갔다 섬에 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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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류:시가 있는 풍경] 네 절망과 네 고통
너의 고통 나를 대신해서 그리 앓고 있는 것이라면 네 슬픔 나를 대신해서 그리 슬퍼하는 것이라면 너에게 닥친 그 불행 나를 대신해서 그러한 것이라면 네 좌절, 네 절망, 네 외로움, 네 눈물 그 모든 것 나를 대신하여 그러한 것이라면 나를 위해 온몸 던져 올리는 너의 기도 그 혼신의 공양으로 지금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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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류:시가 있는 풍경] 속삭임
어둑새벽 머리맡에 날아와 하루를 깨우는 새소리에서 간밤에 내린 비로 불어난 개울 물소리에서 우두둑 연잎에 돋는 빗소리에서 저무는 가을밤을 밝히는 풀벌레 소리에서 찬바람 따라 서걱대는 마른 잎 구르는 소리에서 캄캄한 먹구름 찢고 울리는 우렛소리에서 귀에 와 닿는 세상의 그 모든 소리에서 오롯하게 들리는 건 더운 가슴으로 전하는 당신의 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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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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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류:시가 있는 풍경] ‘하얀 꽃’···”아카시 찔레꽃 같고 이팝나무 때죽나무 층층나무 꽃 같은”
오월을 걷는다 사방 초록의 천지 물빛조차 진초록이다. 출렁이는 초록의 복판을 헤쳐 네게로 간다. 너는 그 초록 속 하얀 꽃 아카시 찔레꽃 같고 이팝나무 때죽나무 층층나무 꽃 같은 하얗게 그리 눈부신 꽃 초록빛으로 눈먼 내 눈을 초록 바다에서 허우적이던 내 혼을 화들짝 깨우는 그 하이얀 꽃이다 그 아픔이다 오월의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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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류:시가 있는 풍경] ‘흐름 위에’…”모든 것 놓고 다만 활짝 가슴 열어”
흐름 위에 자리한 이여 남은 시간은 얼마인가. 머뭇거리는 사이에도 흐르는 시간 우리 할 일은 무엇이고 이룰 수 있는 건 또 무엇인가. 오직 흐를 뿐, 가벼워야 저 흐름을 탈 수 있으리. 그대 빈손을 다오. 여기 내민 손이 있다. 모든 것 놓고 다만 활짝 가슴 열어 함께 흐르며 그 흐름을 즐겨야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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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류:시가 있는 풍경] 나는 한 송이 꽃
나는 바람 처마 끝의 풍경 가만히 흔들어 깊은 골의 적막 깨우는 한 자락 맑은 바람 나는 비 가뭄에 타는 흙 가슴 촉촉이 적시는 한 줄기의 단비 나는 물결 외딴 섬 기슭에 밀려와 그리움으로 온 밤 뒤척이는 한 이랑 작은 물결 나는 고요 큰 바람으로 불어왔다가 큰 비로 쏟아져 내리다가 거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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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류:시가 있는 풍경] 이 땅에 생명평화를
내가 먼저 깨어나게 하소서 우리 모두 본시 한 나무에서 피어난 꽃들 그 꽃에서 맺어진 열매, 그 씨앗임을 알게 하소서 우리가 서로 어떻게 다른가 보다 우리가 서로 어째서 하나일 수밖에 없는 지를 먼저 일깨우게 하소서 내가 먼저 가슴 열게 하소서 남이라 밀쳐낸 당신이 거울 속에 비친 내 자신의 모습이었음을 알아 다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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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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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여류:시가 있는 풍경] ‘별 같은’
우리 곁에는 별 같은 이들이 산다 빛을 감추고 함께 어울려 있어 쉬 드러나진 않지만 때로는 스쳐 지나며 문득 마주친 그 눈빛에서 또는 누군가를 향한 살폿한 미소에서 외로운 이를 위한 낮은 목소리의 노래 속에서 오른손 모르게 내밀어 가만히 잡아주는 따스한 손길에서 길섶 들꽃 앞에 쪼그려 앉아 놀라워라 하는 감탄 속에서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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