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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여류:시가 있는 풍경] 가을과의 작별
남은 볕살 속을 걸어 네게로 간다 네게 가닿기 전엔 아직 나의 가을과 작별 인사를 나눈 게 아니므로 하얗게 핀 억새꽃 홑씨처럼 흩날리고 향기 아리던 감국(甘菊) 노란 꽃잎을 지우는 언덕을 지나 그림자 짧아진 햇살을 쫓아 네게로 간다 갈잎 울창하던 숲길에는 벗은 가지들의 시린 발치를 잎새들의 이불로 덮고 있다 수십 번의 가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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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류:시가 있는 풍경] 늦은 안부를 묻네
잘 지내시는가 나도 잘 지내고 있네 차나무 햇순을 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찬 이슬 내리고 하얗게 피었던 그 찻꽃도 다 지고 있네 매양 하릴없이 지내면서도 매번 안부조차 이리 늦었네 어찌 지내시나 별일은 없고? 살아갈수록 산다는 게 살아있다는 게 참 놀랍고 대단하다는 걸 새삼 깨닫고 있네 누군가는 절로 산다고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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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시가 있는 풍경] 가을 손길
억새꽃 하이얀 언덕에서 저무는 노을 바라볼 때 어깨 위에 놓이는 손길 가을인가 당신인가 박꽃 하얗게 눈부신 밤 하염없이 별을 쳐다볼 때 가만히 내미는 손길 가을인가 당신인가 구절초 환한 산굽이 돌아 지나온 길 아스라이 돌아볼 때 말없이 잡아주는 손길 가을인가 당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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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류:시가 있는 풍경] ‘누구인가’ 이병철
꽃을 피우게 하고 지게 하는 것은 새벽이면 닭을 울게 하고 팔월 불볕 아래 매미를 저토록 절규하게 하는 것은 허공에 거미의 집을 짓게 하고 모기 주둥이에 침을 달게 한 것은 지는 노을에 한숨짓게 하고 이슬 맺힌 꽃 앞에서 미소 짓게 하는 것은 숨 쉬는 모든 목숨붙이들 속에도 쉼 없이 출렁이는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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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류:시가 있는 풍경] 강가에서
저문 강에서 그댈 보내고 아침 강에서 그대를 그린다. 세월은 강물 따라 흐르는가. 봄꽃 붉게 비치던 강에 노랗게 단풍 지고 있다. 이 강은 어디서 흘러와 어디로 가는가. 그대는 어디쯤 걸어가 언제쯤 돌아오는가. 떠날 줄을 안다면 돌아올 줄도 알 것을. 내 안 깊이 흐르는 강에 저녁노을이 곱더니 아침에 물안개 피었다. 이리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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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류:시가 있는 풍경] 이현(二絃)을 듣다
구월 초하루 아직 아침이다. 이현(二絃)을 듣는다. 현이 적어 울음이 깊은가. 나는 그 깊이를 감당할 수 없다. 햇빛을 찾아 나선다. 마침내 오늘 눈부신 볕살 아래서 미루어둔 향초(香草)를 벤다. 차마 날을 갈지 못하고 무딘 낫으로 남은 미련을 자른다. 피 냄새 같은 것일까. 침묵하던 향들 솟구쳐 올라 내 상흔(傷痕)들이 아리다. 너 자신도 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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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류:시가 있는 풍경] 흔들리는 것들에 눈 맞추며
삶이 곧 이별이라고 말했지 이별도 연습하면 덜 서러울 수 있을까 바람이 없어도 꽃잎 떨어져 내리고 오래 머물 순 없을 거라고 말했지 붙잡아도 머무를 수 없는 그런 때가 오고 있음은 알아 이별하기에 좋은 날도 있을까 비에 젖으면서도 피는 꽃을 좀 봐 꽃이 피어 설레는 게 아니라 설레어서 꽃이 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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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류:시가 있는 풍경] 섬(島)이 품은 섬
건너 보이는 바다에 섬이 있다 아직 가보지 못한 그 섬은 언제나 뭍과 떨어져 외롭고 스스로를 품어 늘 고요했다 아직 자신을 품는 법을 알지 못한 나는 항상 그 섬이 궁금했다 여태 기다려왔지만 그 섬은 한 번도 뭍으로 나들이하지 않았음으로 가을 저물어 외로움이 물안개처럼 피어오르는 날 나는 그 섬으로 갔다 섬에 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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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류:시가 있는 풍경] 네 절망과 네 고통
너의 고통 나를 대신해서 그리 앓고 있는 것이라면 네 슬픔 나를 대신해서 그리 슬퍼하는 것이라면 너에게 닥친 그 불행 나를 대신해서 그러한 것이라면 네 좌절, 네 절망, 네 외로움, 네 눈물 그 모든 것 나를 대신하여 그러한 것이라면 나를 위해 온몸 던져 올리는 너의 기도 그 혼신의 공양으로 지금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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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류:시가 있는 풍경] 속삭임
어둑새벽 머리맡에 날아와 하루를 깨우는 새소리에서 간밤에 내린 비로 불어난 개울 물소리에서 우두둑 연잎에 돋는 빗소리에서 저무는 가을밤을 밝히는 풀벌레 소리에서 찬바람 따라 서걱대는 마른 잎 구르는 소리에서 캄캄한 먹구름 찢고 울리는 우렛소리에서 귀에 와 닿는 세상의 그 모든 소리에서 오롯하게 들리는 건 더운 가슴으로 전하는 당신의 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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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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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류:시가 있는 풍경] ‘하얀 꽃’···”아카시 찔레꽃 같고 이팝나무 때죽나무 층층나무 꽃 같은”
오월을 걷는다 사방 초록의 천지 물빛조차 진초록이다. 출렁이는 초록의 복판을 헤쳐 네게로 간다. 너는 그 초록 속 하얀 꽃 아카시 찔레꽃 같고 이팝나무 때죽나무 층층나무 꽃 같은 하얗게 그리 눈부신 꽃 초록빛으로 눈먼 내 눈을 초록 바다에서 허우적이던 내 혼을 화들짝 깨우는 그 하이얀 꽃이다 그 아픔이다 오월의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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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류:시가 있는 풍경] ‘흐름 위에’…”모든 것 놓고 다만 활짝 가슴 열어”
흐름 위에 자리한 이여 남은 시간은 얼마인가. 머뭇거리는 사이에도 흐르는 시간 우리 할 일은 무엇이고 이룰 수 있는 건 또 무엇인가. 오직 흐를 뿐, 가벼워야 저 흐름을 탈 수 있으리. 그대 빈손을 다오. 여기 내민 손이 있다. 모든 것 놓고 다만 활짝 가슴 열어 함께 흐르며 그 흐름을 즐겨야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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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류:시가 있는 풍경] 나는 한 송이 꽃
나는 바람 처마 끝의 풍경 가만히 흔들어 깊은 골의 적막 깨우는 한 자락 맑은 바람 나는 비 가뭄에 타는 흙 가슴 촉촉이 적시는 한 줄기의 단비 나는 물결 외딴 섬 기슭에 밀려와 그리움으로 온 밤 뒤척이는 한 이랑 작은 물결 나는 고요 큰 바람으로 불어왔다가 큰 비로 쏟아져 내리다가 거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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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류:시가 있는 풍경] 이 땅에 생명평화를
내가 먼저 깨어나게 하소서 우리 모두 본시 한 나무에서 피어난 꽃들 그 꽃에서 맺어진 열매, 그 씨앗임을 알게 하소서 우리가 서로 어떻게 다른가 보다 우리가 서로 어째서 하나일 수밖에 없는 지를 먼저 일깨우게 하소서 내가 먼저 가슴 열게 하소서 남이라 밀쳐낸 당신이 거울 속에 비친 내 자신의 모습이었음을 알아 다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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