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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다시쓰는 6·25] (26) 주코프-팽덕회vs 유엔군···’미니 세계대전’ 예고
한반도에 진입한 중공군을 통합지휘하기 위하여 항미원조지원군사령부(抗美援朝志援軍司令部, 중조연합사령부)가 설치되었다. 사령관에는 인민해방군 총참모장 팽덕회, 부사령관에는 연안파인 북한 내무상 박일우가 임명되었다. 중조(中朝) 작전조정과 협조는 후일의 한미연합사령부와 비견될 정도로 잘 이루어졌다. 북한과 중공은 항일전쟁중 동북항일연군을 이루어 같이 싸웠고 6·25 이전 입북한 중공군 출신 한인이 3개 사단에 달하는 등, 문자 그대로 혈맹관계였고 특히 상부구조는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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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다시쓰는 6·25] (25) 유엔군의 평양입성과 김일성의 도주
10월 9일 맥아더 장군의 북진명령이 떨어지자 개성지역에서 38선을 돌파한 미 1군단은 중앙의 1기병사단을 개성~금천~사리원~황주, 좌측의 24사단을 배천~해주~재령~사리원, 그리고 한국군 1사단을 구화리~시변리~수안으로 각각 진격케 하여 평양의 조기 점령을 기도하였다. 주공인 미 1군단이 서흥에 진출하였을 때 기동력에서 열세한 한국군 1사단이 평양선착의 영예를 건 경쟁에서 미1기병사단을 제치고 한발 앞서기 시작하였다. 1사단은 10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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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다시쓰는 6·25] (24) 중공군의 개입
중공군 침공의 궁극적인 목표는 유엔군을 한반도에서 축출하는데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처한 국제적 지위와 군사력을 감안하여 최초에는 작전목표를 상당히 제한하였다. 즉 유엔군의 국경으로부터의 급속한 진격을 일단 저지한 다음 상황의 진전에 따라 반격으로 전환하되, 평양~원산선까지만 진출하고 국경지대에 완충지대를 설정하려 했다. 그 후에는 유엔군의 반응에 따라 대응조치를 취하되, 한반도로부터 외국군이 철수하고 중공이 유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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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다시쓰는 6·25] (23) 맥아더의 종막은 ‘오만과 독선’이 자초했다
1950년 9월 27일 합참본부가 맥아더 장군에게 내린 북진계획승인 훈령은 다음 ‘전제(前提)와 제한(制限)’을 담고 있었다. 첫째 38선 이북지역에 대한 작전은 유엔군의 38선 돌파가 개시될 때까지 중공이나 소련의 개입의사의 표명이나 실제 개입행위가 없어야 된다는 前提, 둘째 만주와 소련영토에 대한 작전은 일체 금지하며, 중·소 접경지대의 작전은 한국군에게 전담토록 한다는 制限이었다. 이에 맥아더 장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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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다시쓰는 6·25] (22) 유엔 통한(統韓)결의안과 북진명령
한국전쟁 초기 중공 및 소련과의 전면대결의 회피를 전제로 삼았던 미국은 목표를 전쟁 이전 상태의 회복에 둠으로써 38선 이북으로의 진격을 주저해왔다. 그러나 8월 후반 낙동강 전선이 안정되고 인천상륙계획이 구체화되자 미국의 태도는? 변하기 시작하였다. 9월 1일 국가안보회의 참모들은 정책건의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만일 한반도에서 소련에 대하여 유리한 입장을 확보하고 국가이익을 신장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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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다시쓰는 6·25] (21) 美 ‘무조건항복’ 요구, 6·25전쟁 장기화 초래
낙동강 전선의 8군은 1950년 9월 16일 일제히 반격을 개시하였다. 주공인 미1군단(1기병사단, 24사단, 5연대전투단, 국군 1사단 및 영연방 27여단)은 9월 20일 낙동강을 건너 쾌속의 진격을 계속해 9월 26일 오산에서 7사단과 연결하는데 성공하였다. 미9군단(2사단, 25사단)은 9월 25일 진주를 탈환하고, 9월 30일에는 군산-논산으로 진출하였다. 중부전선의 국군 2군단은 9월 28일 충주-원주로, 동부전선의 국군 1군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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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다시쓰는 6·25] ?’임관 48년’ 노병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에는 미10군단이 동원되었는데 제1해병사단과 제7보병사단을 주축으로 한국군 독립17연대와 해병 4개 대대가 투입되어 총 7만명에 달하는 대군이었다. 작전에 동원된 함정은 8개국에서 261척이 참가하였다. 이는 노르망디상륙작전 이래의 대군이었는데 이런 규모, 이런 방식의 상륙작전은 앞으로 좀처럼 있기 어려울 것이다. 독립17연대는 화령장 전투에서의 승리로 백인엽 연대장 이하 부대 전 장병이 한 계급 특진하였는데 17연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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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직필] 해병대 제 목소리 내야 ‘육해공 균형발전’
미국의 군대(the armed forces)는 육해공군 해병대 해안경비대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 특유의 제복이 있으며 사관학교가 있다. 국방부장관이나 통합군사령관이 연설할 때는 soldiers, sailers, marines, air men을 반드시 각각 불러준다. 해군과 해병대의 오래된 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이처럼 4군체제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이는 통합과 합동을 위하여 나아가는 추세에 완전히 역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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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직필] 인천상륙작전 ‘맥아더신화’, 한달 만에 막내린 이유?
승패는 오로지 장수에 달려 있다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전략구상이 아니었다. 김일성은 이미 8월 28일 박훈일을 인천방어사령관으로, 9월 11일에는 최광을 서울방어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이를 민족보위상 최용건이 서해안방어사령관으로 총괄 지휘하게 하였다. 맥아더가 탁월한 것은 김일성이 낙동강 전선의 전력을 인천과 서울로 전환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꿰뚫어보고 이 간극(間隙)을 부쉈다는 데 있다. 맥아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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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직필] 해군 ‘제독’과 해병대 ‘장군’
필자가 군비통제관 당시 유엔사/연합사 카운터 파트는 C-5으로 미해병소장이었는데, 이들은 장군으로 불리웠다. 당연히 그러려니 했는데 영국에서는 제독으로 부른다는 것을 알고 해병의 역사를 생각하니 그것도 일리가 있다는 것과 함께, 이 차이가 미국 해병대(US MARINE CORPS)와 영국 해병대(ROYAL MARINES)의 임무 기능, 역할이 다른데서 오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가 모델로 삼는 미 해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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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직필] “호위무사라고? 문제는 사법개혁이야!”
“전설속의 영웅 채동욱의 호위무사였다는 사실을 긍지로 삼고 살아가는 게 낫겠다.” 오늘 한국 검찰의 오만함, 민낯을 이만큼 적나라하게 드러낸 말이 없다. 사표를 내고 잠적한 채동욱 검찰총장은 감찰조사도 안 받겠다고 하면서 버티고 있다. 국민의 혈세로 이루어진 급료를 받으며 국가에 대하여 무정량(無定量)의 근무의무를 진 공무원으로서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군인으로서 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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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직필] 대한민국 건국과 이승만 그리고 김구
1946년 2월8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발족하였다. 토지개혁 등 소위 대대적 민주개혁이 시작되었다. 1년 뒤인 1947년 2월8일에는 임시를 뗀 북조선인민위원회가 만들어졌다. 1948년 2월8일에는 조선인민군이 창건되었다. 1949년 9월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출범하였다. 일본군 헌병대 통역이었던 김영주(김성주, 一名 김일성의 동생)를 비롯, 일제하에서 숨 쉬고 밥 먹던 사람들 가운데 일기일능(一技一能)이 있는 자는 광범위하게 등용되었다. 이들과 ‘같은 하늘을 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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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직필]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
총장(總長)이란 직형(職銜)은 권위가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참모총장이다. 국방부장관, 합참의장이 있지만 군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함은 참모총장이다. 다음은 검찰총장이다. 사법고시를 보고 법원에 가는 사람은 대법관을 바라보는 것이 정상이지만 검찰로 가는 사람은 검찰총장이 꿈이다. 다음은 대학총장이다. 지방자치 이전에 지사는 차관급인데 국립대학교 총장은 장관급이었다. 참모총장의 권위도 한결같지 않았다. 하나회 시절에 참모총장이 인사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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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직필] ‘1987년 체제’와 호남소외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 1919년 9월11일 상해임시정부 개헌의 형식으로 한성정부의 조직을 계승하여 이승만을 대통령, 이동휘를 국무총리로 하는 통합임시정부가 성립되었다. 1948년 제헌헌법에서는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고 하였다. 1987년 이루어진 현행 헌법에서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하였다. 3·1운동은 국민혁명(國民革命)이었다. 한일합방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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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직필] “국어·국사 교과서 글자 하나 수정도 신중해야”
3R, 즉 읽기(reading), 쓰기(writing), 산수(arithmetic)는 어느 나라에서든 초등교육의 기초다. 청소년들이 불과 10년 전에 나온 책을 읽기 난해해 하는 한국의 어문교육은 잘못된 것이다. 하기야 중국에서도 간자(簡字)로 교육받은 청소년들이 고문(古文)을 읽기 어려워하고 한국 관광객이 소동파(蘇東坡)의 적벽부(赤壁賦)를 줄줄 읽어 내려가는 것을 보고 신기해 한다고 하니 위안이 된다고 할까? 우리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서기 1955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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