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시아
“전시작전권, ‘환수’가 아니라 ‘전환’이 맞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전시작전권 논의가 다시 시작되었다. 건전하고 생산적 논의를 위해서는 이와 관련된 개념과 용어를 분명히 해야 한다. 먼저, ‘평시 작전통제권’은 맞는 말이 아니다. 유엔사는 정전 시 작전통제권(armistice operational control)이라는 용어를 쓴다. 전작권 ‘환수’도 환수(還收)가 아니라, ‘전환’(轉換)이라고 해야 한다. 환수라 함은 주었던 것을 찾아온다는 뜻인데, 1978년 한미연합사를 창설하면서 작전통제권을…
더 읽기 » -
“소련에 속지말라”···러시아, 北통과 송유관으로 한국에 가스 공급 ‘허와 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러시아가 북한을 통과하여 시베리아의 유류와 가스를 한국에 공급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일견 그럴 듯해 보이지만 대단히 조심해야 한다. 한반도의 분단은 1945년 9월 20일 스탈린이 내린 교시로 이미 정해졌다. 북한에 침공한 소련군이 자행한 약탈에서 무지한 병사들은 시계를 몇 개씩 빼앗아 차고 있어서 조선사람의 웃음꺼리가 되었다. 노태우…
더 읽기 » -
동아시아
국군의날 ‘유감’ 제2탄···’변경 추진’ 이어 해군 2함대서 기념행사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10월1일 국군의 날 행사는 국군만이 아니라 온 국민의 자부심을 확인하는 축제다. 박정희 대통령 때는 국군의 날 행군이 여의도 모래밭에서 벌어졌다. 지금은 계룡대에서 이루어진다. 여의도 행사 후 서울의 중심에서 시가행진이 열렸다. 최근엔 대통령 재임 중 5년에 한번 강남의 삼성대로에서 이루어진다. 국군의 날은 국군의 위용을 국민의 눈으로 확인할…
더 읽기 » -
동아시아
[김국헌의 직필] 국군의날 변경 추진 ‘유감’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주로 이끈 분은 석오 이동녕이다. 이승만은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되었지만, 구미위원부를 중심으로 한 외교활동에 치중하였고 거의 임정을 떠나 있었다. 윤봉길, 이봉창 의사 의거를 주도하는 등 임정 주석으로 주로 기억되는 분은 김구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네 차례에 걸쳐 임정 주석을 지낸 ‘임정의 수호자’ 이동녕을 빼고서는…
더 읽기 » -
동아시아
한국 전술핵 배치와 미국의 ‘잠꼬대’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를 들어 전술핵 배치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전술핵 배치 반대에 비핵화 논리를 들고 나오는 것은 잠꼬대라 할 수 있다. 외교안보 라인이 이를 고집하는 것은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지금까지 주장해온 것을 거두어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지지층을 의식하는 문재인 정부에 복무하기 때문이다.…
더 읽기 » -
[북한 6차 핵실험] “한반도 비핵화선언은 무모하고 현명치 못했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1991년 11월 8일 노태우 대통령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구축을 위한 선언’을 하면서 “북한도 우리와 함께 핵재처리시설 및 농축시설의 보유를 분명히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이어 12월18일엔 남과 북이 한반도에 핵무기가 없어야 된다는데 뜻을 같이 하는 ‘핵 부재 선언’을 했다. 바로 이튿날인 12월19일에는 통일에 이르기까지의 잠정협정인 ‘남북사이의 화해와…
더 읽기 » -
칼럼
[북한 6차 핵실험] 문제는 외교다···”전술핵 배치 재고를”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1945년 8월 미국이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하자 소련은 일·소 중립조약을 파기하고 만주와 조선에 침공했다. 일본은 항복했다. 그 충격은 원폭에 받은 것보다도 컸다. 소련이 중립조약을 파기했다고 국제사회에 호소할 것인가? 군사력으로 뒷받침되지 않은 외교력은 빈껍데기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똑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1991년 김종휘 외교안보 수석과 외교부가 주도한 한반도비핵화선언은…
더 읽기 » -
칼럼
[6차 핵실험] 그들은 왜 핵을 보유하려 했나?···이란·남아공·우크라이나·리비아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2015년 3월2일, 2002년 이란의 반체제 단체가 비밀 우라늄 농축 시설의 존재를 폭로하면서 12년 이상 끌어오던 이란 핵 문제가 타결됐다. 합의는 이란의 우라늄 농축활동을 10년간 제한하되, 이란에 대한 국제제재는 최종 합의문이 이루어지는 6월말 이후 해제한다는 것이었다. 이란의 약속을 과연 믿을 수 있겠느냐는 문제가 제기됐다. 이란이 시리아나 북한에…
더 읽기 » -
동아시아
[북한 6차 핵실험] 노태우·김대중 정부 ‘대북 전략’ 벤치마킹을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북한이 3일 오후 6차핵실험을 또다시 강행했다. 함참은 “북한이 한반도 평화와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우리 정부 제안을 무시한 채 ICBM급 탄도미사일과 더욱 위력이 강해진 핵실험 도발을 감행한 데 대해 엄중히 규탄한다”며 “한미동맹은 북한의 도발을 응징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구비하고 있으며 강력한 한미연합군의 대응 조치를 행동으로…
더 읽기 » -
칼럼
광주출신 예비역 장군은 ‘5·18 재조사’ 이렇게 본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5·18에 대한 재조사가 시작되었다. 이번이 네번째다. 기왕 시작되었으면 철저히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조사가 불완전하다고 목소리를 높여온 민간단체에서 조사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 더불어 지금까지 조사가 부진하다는 것을 전제해서는 안 된다. 발포명령자를 가려내는 것이 그렇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발포명령자라는 것을 가려내고 싶겠지만 그것은 당초 틀린 생각이다. 당시 정국을 쥐고…
더 읽기 » -
동아시아
“법무부는 검찰 출장소가 아니다”···검찰개혁 참고서 영화 ‘검사외전’ 강추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임명으로 외무부 문민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비 외무고시 출신 여성장관은 실로 파격적이다. 강경화 장관은 고 강창선 KBS 아나운서의 딸로서 MIT를 나왔다. 미국에서 낳은 장녀가 국내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위장전입한 것이 문제가 된다고 청와대에서 스스로 밝혔다. 이 문제가 아들 병역면제를 위해 위장 출산을 하는 아낙네들과…
더 읽기 » -
동아시아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 서둘되 목표 명확히···경찰에 영장청구권 이양도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이영렬 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의 격려 돈봉투 만찬으로 검찰개혁이 앞당겨지는 한편 고강도 조치가 예상된다. 검찰개혁 어떻게 해야 할까? 김영삼 정부 초기 군 사법제도 개혁에 다소 역할을 한 필자는 검찰과는 무관한 제3자이지만 어떤 면에선 더 객관적으로 보아왔다고 말할 수 있겠다. 첫째, 경찰에도 영장청구권을 준다. 지금까지 검찰은 수사권,…
더 읽기 » -
칼럼
[대선 D-4일] 어느 후보 공약이 시대정신에 가장 부합하는가?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1940년대와 50년대는 건국과 호국, 60년대는 조국근대화, 70년대와 80년대는 민주화였다고 하면 이제 우리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오늘의 시대정신은 통일이다. 통일은 현재 제기된 모든 과제와 장차 통일을 준비하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대명제다. 우선 권력의 정상화(normalization)이 중요하다. 검찰개혁이 대표적이다. 둘째, 동서화해(reconciliation)다.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유감스럽게도 영남과 호남의 차이와 대체로 일치한다.…
더 읽기 » -
동아시아
평창올림픽 계기로 경원선·동해선 연장될까?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2000년 9월 남북 국방장관회담에 이어서 10월부터 남북 군사실무회담이 개시되었다. 회담은 남과 북의 합의하에 이루어졌다. 우리는 남북의 경제와 군사가 새의 양 날개와 같이 병행해야 된다는 명분을 내걸었다. 따라서 남북 군사적 신뢰구축이라는 개념을 강조했지만 북한은 신뢰구축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긴장완화 용어만 고집하였다. 군사실무회담은 2003년 9월까지 총 23회에 거쳐…
더 읽기 » -
동아시아
장준하의 ‘사상계’ 제대로 읽은 대선후보는 누구?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1960년대 한운사의 ‘현해탄은 알고 있다’ 라디오 연속극은 공전의 화제였다. 대동아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러 조선에도 지원병제도가 시행돼 조선청년들이 일본군에 입대했다. 춘원 이광수 등이 출전을 독려했다. 이들은 청년들이 일본군에서 익힌 군사지식이 광복 후 도움 될 것이라고 변명하였으나, 이때 광복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일본군에 징집된 학병들이 일본인 고참병에게 받는 목불인견目不忍見의…
더 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