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조적 외교 벗고 창조적 외교 절실···미·일 넘어 인도·호주 등으로 무대 넓혀야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한국전쟁에서 사단 규모의 참전은 미국 이외에 영연방 밖에 없다. 1950년 당시 영국 형편은 패전국 독일과 별로 차이가 없었다. 2차대전 초기 미국은 영국에 구축함 50척을 대여했는데, 영국은 미국에 버뮤다를 해공군 기지로 제공했다. 처칠이 미국을 세계대전에 끌어들이기 위해, 루즈벨트는 대가를 얻기 위해 외교전이 치열했다. 처칠이 목욕탕에서 루즈벨트에게 “대영제국…
더 읽기 » -
칼럼
‘독도새우’로 발끈하는 일본과 한국의 적절한 거리는?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브리튼 諸島’(British Iles)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와 아일랜드로 이루어진다. 아일랜드는 12세기에 일찍 잉글랜드의 침공으로 합병되었다. 스코틀랜드는 1707년 제임스 1세 하에 영국과 합쳐 대영제국(United Kingdom, UK)이 되었다. 최근 스코틀랜드가 UK에서의 분리(devolution)를 국민투표에 붙였으나 반대표가 약간 많아 통과되지 않았는데, 계속 문제로 남을 것이다. 영국과 아일랜드는 한국과 일본만큼이나 역사적으로 굴곡이…
더 읽기 » -
동아시아
트럼프의 ‘인도-태평양 연합’이 주목 끄는 이유
문재인-트럼프 한미정상회담서 논의돼야?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트럼프 미 대통령이 베트남에서 미국과 인도-태평양을 강조하는 ‘신 아시아 전략’을 발표한다고 한다. 이는 아베의 용어를 수용한 것인데 가히 ‘트럼프 독트린’이라고 할 만하다. 1972년 닉슨의 ‘괌 독트린’이 월남전 패배에서 나오게 된 퇴영적 전략이라고 한다면 트럼프 독트린은 중국의 一帶一路를 제압하고, 민주주의와 시민경제를 연합하는 적극전략이다. 우리도…
더 읽기 » -
동아시아
세종의 훈민정음, 박두성의 훈맹정음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11월 4일은 훈맹정음이 반포된 날이다. 대부분에게는 생소한 날이다. 1926년 송암 박두성(松庵 朴斗星)이 한글점자를 창안, 반포한 날이다. 한글 점자는 훈민정음만큼 과학적이고 사용하기에 쉬었다. 일반인에게는 상상도 안 되는 일이지만, 한글점자로 공부한 박사도 있다. 시각장애인은 자기들끼리는 ‘눈 먼 사람’이라고 한다. 한국에는 눈먼 사람이 수십만명이다. 나면서부터 눈이 먼 사람은 많지…
더 읽기 » -
동아시아
[김국헌의 직필] 한중 사드 봉합 이후의 과제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중공군은 인민해방군이 되었을 때 대폭 증강되었다. 1955년에 3백만이었다. 1985년 등소평이 3백만에서 2백만으로 백만을 감군했는데 이는 등소평만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군구 등은 중앙에서 손댈 수 없는, 흡사 과거 일본군의 군벌과 같은 세력으로 성장해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의 과장은 유명하다. 백발 삼천척(白髮 三千尺)이 대표적이다.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백만 대군도…
더 읽기 » -
칼럼
[김국헌의 직필] ‘백묘흑묘’ 등소평과 집권 2기 시진핑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등소평은 세 번 실각했다가 다시 살아난 부도옹(不倒翁)이라고 한다. 모택동이 중국을 건설했지만 등소평이 없었다면 오늘 모택동도 없다고 할 것이다. 중국이 오늘날 G2를 운위할 정도가 된 것은 등소평 덕분이다. 모택동이 등소평을 몇 차례나 실각시키면서도 남겨두었던 것이 옳았다. 등소평은 티베트의 봉기를 강력 진압한 西藏 서기 호금도(후진타오)를 직접 골랐다. 호금도가…
더 읽기 » -
칼럼
[김국헌의 직필] 모택동이 유방이라면 시진핑은?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1921년 중국공산당(중공)이 12인으로 창당될 때 모택동은 기록을 맡았다. 중공은 초기 진독수, 이대조, 왕명, 이립삼 등이 이끌었으나 실패했다. 모택동이 당의 영도자가 된 것은 1935년 준의회의에서였다. 모택동이 지방 瑞金에서 활동할 때 상해에서 당 중앙의 군사부장으로 모택동의 위에 있었던 주은래가 모택동 뒤를 좇은 것도 이 다음이다. 모택동은 漢나라를 세운…
더 읽기 » -
사회
5·16 반대 ‘철인’ 강재륜 지다···12·12 쿠데타 전두환·노태우와 육사 11기 동기
강재륜 교수 23일 별세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1961년 5·16의 성공에는 5월 18일 육사생도의 혁명지지 행진이 결정적이었다. 5·16은 이미 이루어진 역사고 그 결과가 조국근대화로 이어졌다는 것을 수용하더라도, 사관생도를 쿠데타에 끌어들인다는 발상은 용서할 수 없다. 쿠데타는 본질적으로 반역이기 때문이다. 병력을 끌고 육사에 들어온 생도대 부대장 박창암은 생도들을 겁박했다. 생도들은 결정을 못하고…
더 읽기 » -
동아시아
영화 ‘남한산성’의 진짜 교훈은?···당쟁보다 뼈아픈 국방 외면·군인 홀대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남한산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병자호란에서 조선의 운명이 결정되었던 역사성이 있고 여장(女墻) 포루(砲壘) 옹성(甕城) 등 나름의 방어설비도 갖추었기 때문이다. 정묘호란에서 조선은 후금과 형제의 맹약을 맺었다. 그럼에도 조선이 계속 명을 섬기자 청 태종 홍타이지는 명에 대한 공격 이전에 조선을 처리하기로 한다. 청병은 압록강을 건넌 지 수삼일 만에 한양에…
더 읽기 » -
칼럼
‘박찬주 대장 부인 갑질사건’과 ‘독사파’를 위한 변명
‘임무형 전술’ 배워온 독일 군대의 장점은 계속 살려야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군에서 장관(將官)을 부르는 통칭은 장군(將軍)이다. 예비역 장군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一星이든, 二星이든, 三星이든 차이가 없다. 그러나 四星將軍에 대해서는 그냥 장군이 아니라 대장이라고 부른다. 군에서 최고의 계급에 오른 것을 존중하기 위해서다. 해군의 수장(袖章)은 세계적으로 같다. 영국을 따른 것이다. 육군에서는 독일이…
더 읽기 » -
칼럼
맨부커상 수상 한강의 NYT 기고문이 주목받는 이유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북한에서는 10월 10일이 노동당창립일이라고 한다. 이것은 정확한 것이 아니다. 1945년 10월 10일은 스탈린에 의해 북한의 통치자로 지명된 김일성이 조선공산당 서북5도 책임자 및 열성자 대회에 등장한 날이다. 김일성이 북한의 최고실권자인 것은 맞지만, 명목상으로는 박헌영이 지도하는 조선공산당의 북조선분국 소속이었다. 분국은 1946년 4월 북조선공산당을 거쳐, 8월 연안파의 조선신민당과 합쳐…
더 읽기 » -
칼럼
평창올림픽 ‘불참 고려’ 자꾸 나오는 까닭···88올림픽 ‘모델’로 조기 차단해야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평창동계올림픽 불참을 고려하고 있다고 해서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했더니 사태가 심상치 않은 것 같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그런 소리가 일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알프스를 끼고 있는 나라들이 동계스포츠가 활발하나 남유럽에서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다. 중동국가들에게 동계스포츠는 별개의…
더 읽기 » -
칼럼
[한글날] “한글은 통일의 가장 유력한 근거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오늘은 10월 9일 한글날이다. 한글날은 단순히 공휴일이 아니라, 국경일이어야 한다. 1949년 10월 1일 국회에서는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을 4대 국경일로 제정하였다. 이때 한글날도 국경일로 지정했어야 했다. 다행히 2005년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한글날을 국경일로 제정했다. 한글창제는 1443년이다. 조선 건국이 1392년이니 개국 후 50년 만에 이루어진 장거(壯擧)다.…
더 읽기 » -
동아시아
[국군의 날에 다시 생각한다②] 국군이 신뢰받지 못하는 이유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김영삼 대통령의 숙정으로 하나회가 물러간 후 자리를 차지한 것은 대부분 ‘유능한’ 장군이었다. 하나회 세상에서 별을 하나라도 달자면 업무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이들은 유능하기는 하였으나 ‘훌륭한’ 장군은 많지 않았다. 4년제 육군사관학교가 개교한 이래 군과 국민이 흠모하는 김홍일, 이종찬, 백선엽, 김종오, 한신, 이병형, 채명신, 이재전과…
더 읽기 » -
동아시아
[국군의 날에 다시 생각한다①] 민주화와 산업화, 그리고 문과 무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일제시대에는 사범학교가 최고였다. 명치유신 이래 일본은 사관학교와 사범학교에 전심·전력했다. 조선 식민지 통치에서 일본 말을 가르칠 선생을 배출하려고 사범학교가 필요했다. 박정희는 사범학교와 사관학교를 나온 준재(俊才)였다. 일반인은 상업학교를 나와 은행에 취직하는 것이 대망이었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세 대통령이 상업학교 출신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광복 후 국민이 그나마 직장을…
더 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