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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인산 김일훈 44] 해방과 몽양 여운형···”이젠 ‘질병과의 투쟁’이다”
하산한 운룡은 산도적떼처럼 제멋대로 자란 머리털과 수염을 깎으러 이발소에 들렀다. 이발사가 운룡의 이발을 하다가 주저주저하더니 도저히 참지 못하고 공손히 청했다. “선생님, 눈 좀 감아주시지요.” 운룡이 “왜 그러시오” 하니 운룡의 두 눈빛이 너무 강렬하여 거울에 반사되어 되튕겨나온 빛이 눈부시게 번쩍여 이발사가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어 이발하기 힘들다고 하였다. 21년 세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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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인산 김일훈 43] 마침내 조국 광복의 날이
운룡은 소년시절에서부터 자주 찾아가곤 하였던 의주 천마산 영덕사를 새로운 은신처로 삼기로 하고 길을 떠났다. 그곳은 깊음에 있어서 묘향산만 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떠돌이 생활을 하기 전에 가족들과 더불어 살던 집에서도 그리 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무렵 그와 새로 연결된 모종의 항일 비밀결사의 일을 도모하기에도 편리한 지리적 장점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일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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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인산 김일훈 42] “일제의 수탈정책 아래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후 계미(癸未, 1943)년 여름의 어느 날, 운룡은 산에서 내려와 충재 김두운 선생 댁에 며칠 묵으면서 지내다가 떠나게 되었다. 이때 선생이 언제 돌아오냐며 속히 들러주기를 바라면서 긴히 할 이야기가 있는 듯 하였다. 운룡은 영덕사로 가는 길에 장씨 댁에 잠깐 들렀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장영봉의 부친을 비롯한 온 가족이 반색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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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인산 김일훈 41] “강한 정신력을 가지면 독을 마셔도 중독되지 않는다”
1942년 무렵 운룡은 충재 김두운, 강재 문창수(康齋 文昌洙) 등의 주도하에 추진되던 총독부 습격사건 계획에 참여, 활동해오던 터였다. 그 즈음 운룡은 우연한 기회에 평안북도 구성군 천마면에 사는 인동(仁同) 장씨(張氏) 집안과 인연이 닿아 산에서 내려와 일을 보게 될 때에는 그 집에 들르고는 했다. 그러니까 그 이태 전이었던가, 한낮의 태양이 대지를 뜨겁게 달구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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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산업
[인산 김일훈 40] 해방 전야의 행보와 인연…’인산’ 아호를 받다
금선대 역시 언제 누가 조성해 놓은 것인지 모르는 일종의 기도막이었다. 첩첩한 능선과 골짜기를 넘고 또 넘은 연후에도 산길을 벗어나 아슬아슬한 바위 사이로 몇 굽이를 돌아가며 올라간 곳에 겨우 비바람을 가릴 정도의 자그마한 구조물이 제비 둥지처럼 바위 절벽에 붙어 있었다. 그것이 금선대였다. 마당이라고 할 것도 없는 좁은 공간에는 용트림을 하듯 줄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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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산 김일훈 39] 운룡의 신약과 환자를 대하는 태도
수영·유근피·벌나무·노나무·개똥참외·밤·찰밥·메밀국수·민물고둥·집오리·도마뱀 운룡은 어느 날 웅담을 구하기 위해 평안남도 개천(价川)의 백운산 밑에 사는 포수를 만나러 산에서 내려간 일이 있었다. 서두를 것 없이 천천한 걸음으로 왕복 한 달 이상을 잡고 떠난 모처럼의 원행(遠行)이었다. 가는 길에 유숙(留宿)하게 되는 곳에서마다 운룡은 아픈 이들을 치료하거나 처방전을 써주어 해묵은 질병으로 고통 받던 환자들을 낫게 해주었다. 당시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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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인산 김일훈 38] 금강산 유점사 주지스님과 마주 앉다
세상이 주지하는 대로 금강산은 천하에 다시없는 명승지로서 계절마다 이름을 달리하여 봄에는 온갖 꽃들로 화려하고 산수가 청명하여 금강산(金剛山), 여름에는 온 산에 짙은 녹음이 우거져 봉래산(蓬萊山), 가을에는 단풍이 불붙는 듯하여 풍악산(楓嶽山), 겨울에는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산의 형체가 그대로 드러난다 하여 개골산(皆骨山)이라고 불린다. 예로부터 수많은 문인이나 화가·소리꾼 등이 자신의 예술 세계가 그 산을 닮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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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산 김일훈 37] 묘향산의 청년 도사 뭇 환자 치료하다
설령암에서 90리 가량 떨어진 강선암을 오가는 도중 곳곳이나 그 밖의 산중에 산재한 암자나 동굴에는 참선 수행하는 승려나 신선이 되겠다고 도를 닦는 도가(道家)의 도인 등이 많이 있었다. 그들 가운데 운룡과 더불어 도요(道要) 문답을 주고받은 선지식(善知識)으로서 세상에 알려진 인물로는 오대산의 방한암(方漢岩) 선사와 예산 덕숭산의 송만공(宋滿空), 김수월(金水月), 백벽산의 강보살 등이 있다. 속세의 나이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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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산 김일훈 36] 설령암 시절, 불임·폐선결핵·해수·골수염·척수염 등 난치병 낫게 하다
운룡이 설령암에 도착한 그 이튿날, 중년의 부부가 불공을 올리기 위해 설령암을 찾아들었다. 대를 이을 아들을 얻지 못한 그 부부는 ‘설령암의 부처님께 빌면 득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속의 계시를 받고 정신없이 식량을 장만하여 왔다는 것이었다. 그들 내외는 운룡의 젊은 나이와 남루한 차림새에도 불구하고 형형한 안광과 선풍도골의 풍모가 범상치 않음을 눈여겨보고 깍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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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인산 김일훈 35] 진짜 독립군과 밀정출신 가짜들
운룡은 투옥을 당하면서도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던 신분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을 했었기에 탈옥 이후 자기 한 몸의 종적만 감추면 그만이었다. 경찰은 운룡의 본적지이며 가족 관계, 연고지 등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정확히 아는 게 없었던 것이다. 만약 본명을 알게 되면 고향에 남아 있는 가족, 친지, 친구들이 대신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탈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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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산 김일훈 34] 50줄 日형무소장 부인 임신 처방해주다
다음 날 형무소장 내외는 관사에 술과 음식을 성대하게 차려놓고 부하를 시켜 운룡을 데리고 오게 했다. “지내기에 고생이 많으실텐데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송구스럽소.” 나이 50줄의 지긋한 소장은 20대의 젊은 운룡에게 깍듯이 대했다. 남루한 수의를 걸치고 있으면서도 새벽별 빛처럼 쏘는 듯한 운룡의 안광을 눈부신 듯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소장의 부인도 부처님을 뵙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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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인산 김일훈 33] 일제 경찰의 모진 고문과 日교도소장 부부와의 인연
1934년 봄 변창호 대장이 이끄는 운룡의 모화산 독립군부대가 철원경찰서를 습격하여 일본 경찰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사건이 있었다. 조선이 완전히 일본에 합병된지 어언 25년이 흘러 이제는 조선이란 완전히 사라지고 일본제국만 남는 것으로 여겨지던 시점이었다. 백성들도 지치고 독립운동가도 지치기 시작했다. 영원히 일본국만 지상에 남고 조선은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다시는 일어설 것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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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인산 김일훈 32] “후손들에게 다시는 이런 고통 맛보지 않게 하리”
탄광 속 깊은 곳에는 송진이 몰려 있어 언제나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으므로 소방화 작업은 필수적이다. 탄광 가장 깊숙한 막장에서 조기통을 깔고 빅구로 채탄을 할 때는 광부들은 탄가루를 무한히 마시게 되므로 자연히 진폐증 환자가 생긴다. 그때 막장에서 일하던 광부 중에 나이는 운룡보다 20년 연배였지만 함께 어울리던 최씨 아저씨가 있었다. 운룡과함께 일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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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 김일훈 31] 18살 막노동꾼 신의(神醫), 진폐증 광부 치료
운룡은 묘향산 산판에서 나무를 베어 철도목을 깎아내는 일이나 백두산 계곡에서 사금(砂金)을 채취하는 일, 금광이나 무연탄 광산에서 채광하는 일 등 그때 그때 형편과 사정에 따라 닥치는 대로 막노동으로 양식을 구하고 때에 따라서는 동지와 어울려 일본군대를 습격하는 등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피신의 나날을 이어갔다. 운룡은 1926년 어느 날 평안북도 북신현면 묘향산 기슭에서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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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산 김일훈 30] 묘향산 독립운동 시절
당시 묘향산에서 제자를 기르며 독립투쟁을 벌이던 최승호 장군이라는 기인이 있었다. 운룡보다 20여세가 많았는데 전우치(田禹治)의 무술과 도술의 계보를 잇는 기인(奇人)으로서 천하장사라 할 만한 괴력과 신출귀몰하는 도력으로, 그 역시 수많은 일본군들을 때려눕힌 애국지사이기도 하였다. 그를 둘러싼 갖가지 소문 가운데 그가 모월 모시 만주의 모처에서 일행들과 밥상을 받아 놓고 식사를 하기 직전에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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